우리 그렇게
우리 그렇게 사랑하기로 해요
방금 처음 만난 사람들처럼
사진도 말도 어떤 입술도 없이
태양은 날마다 새롭고 치자잎도 아침마다 새로워요
새들은 경쾌하고 당신 목소리엔 신경 쓴 부드러움이
생크림처럼 묻어있죠
조금은 우쭐대도 좋아요
그래도 귀엽게 봐줄 거라는 걸 알죠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온통 신기한 것 뿐이에요
크흠크흠 헛기침도, 안 그런 척 새침도
우린 둘 다 눈이 동그란 고양이들이에요
기억이 없다는 건 좋은 거예요
기억은 심장을 리트머스 종이처럼 젖어버리게 하죠
나는 햇솜처럼 당신을 볼 거예요
고물고물 힘차게 고무락대는 애벌레처럼
막 눈 뜬 어린 송아지처럼
하루는 그날 분의 햇빛과 눈물로 충분하죠
그러니 떠올리지 못한다고 슬퍼 말아요
바람에 커튼이 날리듯
나뭇잎에 달린 이슬 이마에 똑 떨어지듯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눈부시게
우리 그렇게 사랑하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