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호 Mar 04. 2024

눈밝은 애인아_ 19

우리 그렇게

우리 그렇게



우리 그렇게 사랑하기로 해요

방금 처음 만난 사람들처럼

사진도 말도 어떤 입술도 없이

태양은 날마다 새롭치자잎도 아침마다 새로워요

새들은 경쾌하고 당신 목소리엔 신경 쓴 부드러움이

생크림처럼 묻어있죠


조금은 우쭐대도 좋아요

그래도 귀엽게 봐줄 거라는 걸 알죠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온통 신기한 것 뿐이에요

크흠크흠 헛기침도, 안 그런 척 새침도

우린 둘 다 눈이 동그란 고양이들이에요


기억이 없다는 건 좋은 거예요

기억은 심장을 리트머스 종이처럼 젖어버리게 하죠

나는 햇솜처럼 당신을 볼 거예요

고물고물 힘차게 고무락대는 애벌레처럼

막 눈 뜬 어린 송아지처럼


하루는 그날 분의 햇빛과 눈물로 충분하죠

그러니 떠올리지 못한다고 슬퍼 말아요

바람에 커튼이 날리듯

나뭇잎달린 이슬 이마에 똑 떨어지듯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눈부시게

우리 그렇게 사랑하기로 해요

이전 25화 눈밝은 애인아_ 1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