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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밝은 애인아_ 19

우리 그렇게

by 김소형

우리 그렇게



우리 그렇게 사랑하기로 해요

방금 처음 만난 사람들처럼

사진도 말도 어떤 입술도 없이

태양은 날마다 새롭고 치자잎도 아침마다 새로워요

새들은 경쾌하고 당신 목소리엔 신경 쓴 부드러움이

생크림처럼 묻어있죠


조금은 우쭐대도 좋아요

그래도 귀엽게 봐줄 거라는 걸 알죠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온통 신기한 것 뿐이에요

크흠크흠 헛기침도, 안 그런 척 새침도

우린 둘 다 눈이 동그란 고양이들이에요


기억이 없다는 건 좋은 거예요

기억은 심장을 리트머스 종이처럼 젖어버리게 하죠

나는 햇솜처럼 당신을 볼 거예요

고물고물 힘차게 고무락대는 애벌레처럼

막 눈 뜬 어린 송아지처럼


하루는 그날 분의 햇빛과 눈물로 충분하죠

그러니 떠올리지 못한다고 슬퍼 말아요

바람에 커튼이 날리듯

나뭇잎에 달린 이슬 이마에 똑 떨어지듯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눈부시게

우리 그렇게 사랑하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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