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호(不好)의 취향(기간제 교사의 교단일기)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이 문장 하나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해본다.
그리고 추가로 몇 개의 질문을 되뇌어 본다.
내가?
여름을 좋아했었나?
나에게도 계절의 선호가 있었던가?
나는 계절의 순환을 보며 희망을 믿는 사람은 못되었다. 봄의 끝에는 오직 겨울, 쇠락만이 있었다.
‘찬바람 불면 시험이야.’
날씨가 추워지면 늘 긴장이 되었다.
임용 시험을 공부할 때는 시험의 합격 여부에 따라 다음 해 고대하던 직장인이 되느냐 다시 수험생이 되느냐가 정해지기 때문이었고,
기간제 교사가 되자 마음먹고 난 다음부터는 1년 동안의 거취를 고민해야 할 때가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수험생을 벗어나 일을 해보자는 마음을 먹었을 때, 한 광역시에서 공고가 나는 모든 학교에 지원을 한 적이 있었다.
공고는 동시에. 며칠 만에. 마감되는데, 무경력자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면 모든 학교를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 없던 나는 콜택시 회사에 전화를 걸어 반나절 기사를 붙여 달라 부탁을 했다. 원서를 내고 택시에 올라타고, 다음 학교 행선지를 말하고, 또 원서를 내고 택시 뒷자리에 올라타고. 30여 군데 되는 학교에 원서를 다 내갈 때쯤 택시기사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학교에 뭐를 조사하러 다니시나 보죠?”
“네.”
서류 뭉치를 들고 짧게 내리고 타고를 반복하는 내 모습을 반나절 지켜보며 택시 기사가 내린 내 직업에 대한 결론이었다.
어떤 조사인지 다음 질문이 이어질 것이 뻔해 재빨리 창문을 열고 대화를 차단했다.
차라리 학교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제삼자이고 싶었다.
투피스 정장에 코트를 입고
간혹 녹지 않은 눈길을 하이힐로 곡예 걸음을 하며 학교를 빠져나오는,
나의 겨울 모습은 늘 그랬다.
계절의 선호(選好) 대신 불호(不好)만 있던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수험생도 구직자도 아닌 삶을 살아보며
비가 올 때 한 두 방울 맞는 것은 두려워도 이미 젖어버린 상태로 옴팡 맞으면 웃음이 난다. 여름은 그런 계절이다. 그렇게 손쓸 수 없는, 계절의 진한 농도가 좋다.
늦여름, 퇴근 후 아이와 짧은 산책을 한다. 워킹맘의 죄책감이 어린이집을 하원하고 차마 집으로 바로 발길을 돌릴 수가 없다.
하루 종일 누군가의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작 내 아이와는 대화를 아꼈던 것이 못내 마음이 쓰인다.
아이 손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같이하고, 아이 시선이 머무는 데로 카메라를 들어 사진에 담아 본다.
OO아, 엄마가 좋아하는 여름이 지고 있어.
사실 엄마는 여름을 좋아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어.
시작은 아마도 OO이가 태어나고부터 일거야.
땀을 뻘뻘 흘리면서 뛰어노는 너의 생명력을 볼 때 ‘사람의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니라, 여름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올봄에 엄마와 걸으며 민들레 꽃을 찾고, 하얀 홀씨를 날려본 기억이 좋은 너는
산책할 때마다 민들레 꽃을 찾아.
처음 맺은 좋은 기억이 인생의 전부인 순수한 내 아가야.
늦은 여름, 아이들 손이 닿지 않는 덤불 속에 남은 귀한 홀씨를 찾아 봄처럼 날려보았어.
엄마가 마음이 바빠 어떤 하루는 너를 눈에, 마음에 많이 담지 못했어.
민들레꽃을 찾지 못하고 아쉽게 맺은 산책길 같은 날이지.
그런 죄책감이 드는 날은 조금 더 과장된 목소리로,
‘엄마는 OO이가 제일 좋아’를 말해주면
처음 듣는 놀라운 소식인 양 숨을 ‘헙’들이마시고
‘나도’라고 말해주는 네가 정말 귀엽고 고마워.
엄마가 너를 바라보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엄마를 그렇게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구나. 엄마의 이 억지스러운 고백을 받아주고, 용서까지 해주다니, 넌 정말이지 천사구나.
엄마가 늘 네게 미안하고, 그 미안함보다 더 흠뻑 너를 사랑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