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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안 Jan 25. 2022

휴직 권하는 아내.

제 꿈도 육아휴직 입니다만.

아들이 중학생이 되던 해에 2000만 원을 들고 이혼한 어머니는 아이 둘을 데리고 나와 일 년에 300만 원 하는 사글셋방에 자리를 잡았다. 유년의 어느 한 시점부터 본인이 가장이라 생각해야만 했던 아들, 내 남편은 집에 남은 돈을 계산하며 공부만 했다.


스물다섯, 졸업도 하기 전에 쫓기듯 입사를 했다.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명과 암 같은 사람이라, 쓸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회사에 다 쏟고 집에 와서는 어질러진 집을 정리하며 하루를 마무리해왔다. 게임도 일처럼 성실하게 하는 걸 보고, 조금 편하게, 쉽게, 대충 살라며 잔소리를 한다. 그렇지만 본인 성격이 그렇게 생겨먹지 못한 것을 어쩌겠냐며 기어코 바지런히 움직인다.


“자기는 회사에 똥 치우는 전담반이야? 어떻게 또 인사이동이 있어? 시즌마다 어쩜 이렇게 바쁜 부서로 다니냐고.”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에게 ‘잘한다. 잘한다.’ 하며, 목구멍까지 일을 밀어 넣는 회사가 원망스러웠다.


“휴직하자. 육아휴직.”


우리 인생에 반년이나 일 년은 굉장히 짧은 시간이라며.


그 시간이 당신의 매운맛 육아 고충이 되든, 일복 많던 10년의 안식년이 되든, 그것이 우리 가족 모두의 희생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명심하며 최선을 다해서 쉬라고.


젖먹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나는 다시 간헐적 근로를 하게 되었다.

모유를 먹이는 둘째는 엄마와 한 몸이었다가 갑작스레 어린이집을 가게 돼 동네가 떠나가게 울었고, 첫째 아이는 첫째대로 엄마가 머리도 예쁘게 묶어주지 않고 출근하는 것이 불만이었다. 오죽하면 잠꼬대도 ‘엄마 오늘 회사 안 가?’로 시작했을까.


내 꿈도 육아휴직이었다. 


현행법상 기간제 근로자도 유급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기간제의 출산 휴가 또는 육아휴직을 잠깐 검색해보면 비난적(?) 여론을 댓글로 확인할 수 있다. 정규직의 휴직을 위해 고용한 기간제 근로자가 출산휴가(또는 육아휴직)를 쓰면, ‘기간제를 위한 기간제를 써야 한다고?’라는 의문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가 보인다.


기간제 교사가 겪는 차별은 ‘고용의 불안정함’ 하나면 된다고 생각하는 나지만, 당당하게 육아휴직이나 출산 휴가를 신청해 본 적은 없다. 임신하고 출산이 다가오면 넉넉하게 일을 그만두었고, 출산하고 엄마의 절대적 육아가 필요한 시기에는 어쩔 수 없는 고용 중단을 겪어야 했다.


우리 집에서 육아 휴직을 쓴다면, 그것은 정규직인 남편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남편의 육아 휴직이 시작되었다.


남편의 육아 휴직은 육아가 빠진 휴직이었다. 네시 반이면 퇴근하는 나와 같이 아이들을 픽업하러 가고, 아이들은 엄마가 일을 하고 오건, 쉬다 오건 간에 아빠가 주도적으로 육아를 하려 하면 ‘엄마가 엄마가!’를 외쳤다.


아빠가 휴직을 하고, 엄마가 일을 하는 것이 아이들이 원하던 바는 아니었으니 가능하면 아이들 뜻대로 하게 퇴근 후에 육아를 내가 주도하게 되었다.


휴직을 했다고 해서 집에서 마냥 뒹굴거릴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빠의 휴직은 우리 가정에 많은 복지를 누리게 해 주었다. 섹션을 나누어 집안 곳곳을 정리 정돈하고, 하루 두어 번 청소기를 돌리고, 요리를 하진 못하지만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해 장을 봐다놓았다.


남편의 휴직에는 ‘홧값’이 들지 않았다. 육아의 ‘홧값’으로 커피와 디저트와 각종 쇼핑에 돈을 지불하던 나는 시간이 없어 돈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첫째에게 겨우 해주던 학습지를 끊고, 마트 대신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고, 사고 싶은 것들의 규모를 조금씩 줄였다. 남편의 월급의 절반 정도를 받으며 그럭저럭 우리 가족이 살아갈 만했다.


다달이 기본적으로 드는 생활비가 높으면 높을수록 사람은 생존이 부담스럽고, 선택의 자유가 줄어들고, 물질의 고마움을 모를 것이라 믿고 있다. 임혜지,<고등어를 금하노라>


대신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제주도 한 달 살기 같은 것을 감히 꿈꿔보았으나, 아이들이 어리고 타지에서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한 달가량 제주도의 ‘감성 숙소’에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시간이 많으면 돈이 없고, 돈이 많으면 시간이 없다’는 인생의 아이러니였다. 대신에 우리는 지금의 경제 수준에서 고를 수 있는 가장 쾌적하고 합리적인 숙소를 정해, 가급적 평일에 여행을 다닌다.


핵가족 안에서 아이들을 사랑으로 기르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부모의 시간이 귀중하다고 생각했으므로 우리는 항상 돈 대신 시간을 선택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모험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간혹 휘청거렸지만 이 선택은 오늘까지 이어졌다. 임혜지, <고등어를 금하노라>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이 하원길에 질문을 하셨다.

“어머니 요즘 출근하세요?”

“아뇨? 계약 만료로 집에서 쉬고 있어요.”

“어머 그럼 어떡해요?”

“어쩔 수 없죠? (아빠가) 놀 때 저도 같이 놀아야죠.”


오늘, 우리집은 휘청거리는 백수가 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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