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에는 엄마가 없는 아이가 있다. 아이의 고민은 이랬다. 처음에는 친구들이랑 잘 지낼 수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이 자기를 떠난다고. 정말 그래 왔을 수도 있지만, 올해도 으레 그럴 것이라는 위축된 아이 모습이 영향을 미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OO아, 엄마가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선생님이 혹시 물어봐도 되니?”
“초등학교 때인데, 잘 기억이 안 나요.”
고등학생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은, 말하고 싶지 않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강해 무의식으로 밀어 넣었거나, 어쨌든 더 이상 물어볼 수 없는 대답이었다.
“그렇구나. 넌 선생님보다 한참이나 어른이네. 선생님은 엄마 아빠가 계셔서 아직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상상이 안 돼. 그러니까 넌 나보다 어른이야. 선생님보다 더 어려운 일을 겪어냈고, 지금 이렇게 씩씩하게 생활하고 있잖아.”
“선생님이 선생님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해 줄게. 초등학교 4학년 땐가 선생님 아버지가 명절에 뇌출혈로 쓰러지셨어. 나는 큰집에 가있느라 그 장면을 직접 보진 못했는데, 차례를 지내고 돌아와 보니 집안 분위기가 스산했어. 나중에 엄마가 쓴 병상일지를 보고 알았어. 아빠는 그때 동네 병원과 한의원에서 죽음에 가까운 절망적인 진단을 받고, 응급으로 대학병원에서 개두술을 하셨어. 원래부터 내향적이고 말이 없던 나는 그때 이후로 더욱 걱정이 많았단다. 밤이면 자주 어금니가 빠지는 꿈을 꾸었어. 나중에 꿈의 의미를 해석하는 글들을 읽어보니, 부모를 잃을 것 같은 불안이 이가 빠지는 꿈을 자주 꾸게 한다고 하더라. 아버지는 두 달여의 중환자실 생활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나서, 집으로 돌아오셨는데 그전과는 우리 가족의 삶이 많이 달라졌지. 병환과 큰 수술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은 물론이고, 아버지가 다시 아플지도 모르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선생님 어린 시절을 내내 지배했단다. 내가 지금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보니 ‘청소년의 우울증’ 원인 1,2위를 다투는 것이 부모의 건강문제와 경제적 문제더라. 그러니 선생님 청소년기가 어땠겠니.”
“그리고 선생님이 가르친 오빠 중에 이런 아이가 있었어. 아빠는 누군지 모르고, 유일한 가족인 엄마는 매일 술에 취해 새벽녘에 집으로 들어와. 그 오빠는 엄마가 없는 집에서 라면과 술로 끼니를 때우다 중학생이 위궤양이라는 진단을 받았어…….”
“그리고 선생님이 가르친 언니 중에는 이런 사람이 있었어…….”
“선생님은 너에게 다른 사람의 더 큰 상처를 전시하면서 너는 그래도 살만하지 않냐고 우월한 마음을 일으켜 주려는 것은 아니야. 다만 세상에는 드라마에나 나오는 이상적인 가정보다 훨씬 더 많은 불완전한 가족의 형태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 어쩌면 모두 다가 그렇게 불완전한 모습으로 살아갈지도 몰라. 때로는 친구들이랑 이야기할 때 다정한 엄마의 모습이, 잔소리하는 엄마랑 싸우고 철없이 신경질을 내는 모습이 부러울지도 모르지만 그 친구들에게도 말 못 한 아픔이 있을지도 모른단다. 유년시절의 선생님이나, 선생님이 가르쳤던 언니 오빠들도 그 수많은 불완전한 가족을 가진 사람들 중 하나야. 그러니까 고개 숙일 것 없어.”
사회복지사로 일을 했던 언니 덕분에 나는 대학생 때부터 학교 밖 청소년들을 만나고, 그들의 소식을 전해 들었었다. 대부분 불행한 가정사를 안고 있지만, 엄마가 부재한 경우가 많았다. 엄마의 빈자리가 훤히 드러나는 그 아이들의 일상들이 당시로서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생리혈이 묻은 팬티를 빨지 않고 옷장에 넣어둔다든가, 머리를 감을 때 정수리만 감고 뒤통수는 비누칠을 하지 않는다든가. 설거지를 하는 법을 전혀 모른다든가 하는 그런 것들. 엄마를 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생활하면서 배워왔던 것들을, 따로 어른이 시간을 내서 가르쳐주지 않으면 평생 겪어보지 못한 아이들. 어린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언니에게 질문을 했다.
“아니,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그런 건 안 배워도 상식 아닌가?”
“엄마가 생리혈이 묻은 팬티를 비벼 빠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까. 엄마가 머리를 뒤통수까지 손을 넣어 감겨 준 적이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없으니까.”
계약이 만료되기 일주일 전 OO이를 교무실에 다시 불렀다.
이따금 그 아이에게는 생리혈 냄새가 났다. 정확하게 말하면 생리 중에 한동안 씻지 않은 냄새가 났다. 교과시간에 만나고 조종례시간에 만나는 나에게 그런 것이 느껴지면, 교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부지불식간에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소한 것에서부터 무언가 다르다는 티를 내게 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OO아, 선생님이 떠나기 전에 꼭 해주고 싶은 말들이 있어. 혹시 집에 빨래는 누가 하니?”
“제가요.”
“옷장에는 빨래가 된 깨끗한 옷을 집어넣는 거야. 팬티는 하루에 한 번씩 갈아입고, 생리를 하는 날이면 두어 번씩 속옷을 바꿔 입어. 아침에 학교 오기 전에는 꼭 물로 씻고. 여름엔 하루에 한 번은 샤워해야 한다. 매일 빨래를 하기가 힘들면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교복을 여벌로 한 벌 더 사달라고 해. 그래야 네가 빨아서 입고 벗고 벗기 좋을 거야.”
“네.”
“항상 자신감을 가지고 지내야 해.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너를 좋아하고, 너는 그럴 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어. 아픔을 겪어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는 능력이 생겨. 넌 선생님보다 어른이라고 했던 말 기억나지?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지내야 한다.”
한동안 말없이, 엄마 마음을 대신 상상하며, 아이를 지그시 안는 것으로 못다 한 말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