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택배 문앞에 놓아드렸습니다.]
승태의 생일파티 당일 점심 때가 조금 지났을 때, 다정의 스마트폰으로 택배가 왔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리고 택배를 잘 놓아두었음을 보여주는 사진도 함께 도착했는데 그걸 보자마자 다정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사진이 다정의 집앞을 찍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정은 황급히 주문했던 곳으로 들어가 주소를 확인했다. 분명 승태네 집으로 주소를 바꿨다고 생각했는데 저장하는 과정에서 뭔가 잘못됐었나 보다. 문제는 이미 다정은 승태네 집에 거의 다와가는 상황이었고 다같이 모이기로 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정은 우선 서연에게 연락을 했다.
“서연아 너 혹시 어디쯤이야?”
“나 네가 찍어준 승태네 집에 거의 다와가. 넌 어디쯤이야?
“나도 다와가는데… 하 일단 알겠어.”
서연이 거의 다왔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혁준에게도 물어봤지만 같은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다정은 더 망연자실했다. 승태네 집에서 다정의 집까지 아무리 빨리 가도 약 30분 거리, 왕복이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릴 터였다. 그러나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승태에게 말을 하고 집을 갔다와야 하나? 아니면 어차피 생일 당일이 다음 주니까 그때 준다고 해야 하나? 두 가지 커다란 고민 중 어떤 걸 고를지 저울질하고 있는 사이 어느덧 버스는 승태네 집 근처까지 도착했다.
고민은 시간만 흐르게 할 뿐, 초조한 마음으로 승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승태는 파티 준비에 한창인 듯 분주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응, 다정아 어디쯤이야?”
“아, 나 다 와가는데… 집에 뭘 두고 와서 갔다 와야 할 것 같아…”
“뭔데? 애들도 곧 도착한다는데… 어! 혁준이 왔다!”
“되게 중요한 거야! 금방 갔다 올게. 미안해!”
황급히 전화를 끊고 반대편으로 달려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다행히 버스가 바로 도착해준 덕에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버스에 타자마자 다시 자책을 시작했다. 왜 대체 그걸 한 번 더 확인 안 해서 일을 이렇게 만드냐. 어휴 멍청아.
잠시 뒤에 승태에게 전화가 다시 와 그냥 와도 된다고, 얼른 와서 같이 먹자고 한 승태였지만 다정은 이미 버스를 탔다며 먹고 있으면 금방 다녀오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승태는 계속 괜찮다고 했지만 스스로 괜찮지 않았던 다정은 이렇게 실랑이 할 시간에 1m라도 더 집에 빨리 가서 커피 머신을 챙겨 승태네 집에 가는 게 더 낫다는 생각 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승태네 집앞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 시작 시간으로부터 1시간이 약간 지난 시간이었다. 왁자지껄한 소리가 안에서 들리는 것을 보니 한창 맛있게 먹고 있는 듯했다. 다정은 차오르는 숨을 고르고 승태네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 왔어!”
“다정이 왔어? 우와, 이게 뭐야?”
“하… 너무 힘들어… 이거 너 생일 선물이야.”
다정은 품에 안고 있던 커피 머신을 다정이 문을 열자마자 제일 먼저 뛰어나온 승태의 품에 안겨줬다. 묵직한 무게 때문인지 승태는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자세를 고쳐잡고 커피 머신을 선반에 올려놓은 뒤 다정을 있는 힘껏 끌어 안았다.
“진짜 너무 고마워! 나 이거 갖고 싶은 거 어떻게 알았어?”
“야야 숨막혀! 네가 얼마 전에 커피 머신 갖고 싶다고 했었잖아. 기억 안나?”
“아 맞다 그랬었지! 나도 까먹고 있었던 얘기인데 기억해줘서 너무 고마워.”
승태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다정을 바라보았다. 승태의 표정을 보고 다정 역시 만족스러운듯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니 이걸 너네 집 앞으로 배송하게 했어야 했는데 실수로 내가 주소를 안 바꾼 거야. 그래서 집까지 갔다 왔지.”
“그랬구나. 아니 다음 주에 줘도 되는데! 힘들었겠네.”
“그래도 되는데 파티가 오늘이잖아. 그래서 오늘 주고 싶었어.”
“아이구 우리 다정이 너무 이쁘네.”
승태가 다정의 머리를 양손으로 마구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서도 신남이 느껴져서 다정도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뒤에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서연이 다정과 승태를 보챘다.
“야 이제 좀 와라. 고기 좀 먹자.”
“아 맞다. 우리 너 올 때까지 고기 안 먹고 기다리고 있었어.”
“뭐? 왜 그랬어. 그냥 먹으라니까.”
“애들은 그냥 먹자고 했는데 내가 너 오기 전까지 손도 못 대게 했어. 잘했지?”
“아휴 그럼 내가 미안하잖아. 애들도 배고플텐데.”
“대신에 내가 간식으로 먹을 만한 거 줬어. 그래도 메인 메뉴는 주인공이랑 같이 먹어야지!”
“내가 무슨 주인공이야. 오늘 네 생일이잖아.”
“그러니까 네가 주인공이지. 와서 앉자!”
다정은 어휴 하고 한숨을 쉬면서도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승태에게 그만큼 자신이 의미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일에 자신 만큼이나 중요한 사람이 모종의 일 때문에 늦게 왔으니까 그만큼 기다려주는 그 마음. 내가 승태였어도 그렇게 했을지 다정은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 생각했다.
승태의 생일 파티는 그렇게 시끌벅적하게 이어졌다. 다정이 선물로 준 커피 머신을 적당한 위치에 세팅도 하고 승태가 고기도 정성스럽게 구워줬다. 물론 술도 아주 맛있었다. 이렇게 넷이 모이니 당연하게도 이야기는 대학교 때의 추억으로 이어졌다. 이제 서른을 코앞에 두고 있고 사회에 점점 찌들어 가고 있는 새내기 사회인들이었지만 모여 앉아 있는 이 순간 만큼은 여전히 대학생이었다.
“근데 너네 이렇게 사귀는 거 보니까 새삼스럽긴 하다. 대학교 때부터 그렇게 붙어다니더니.”
“뭐가 새삼스럽냐? 난 쟤네 저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네가 알긴 뭘 알아. 너 예전에 승태랑 다정이가 사귀면 네가 우리집 개라며.”
“내가 언제 그랬는데!”
“대학교 3학년 때였나 4학년 때였나… 아무튼 그랬었어. 기억 안 나냐?”
서연과 혁준이 또 티격태격하기 시작했고 승태와 다정은 흥미진진하게 그 모습을 지켜봤다.
“뭔데 뭔데. 그럼 혁준이 이제 서연이네 집 개야?”
“그렇다니까. 혁준아 가서 물어와!”
“뒤진다 진짜.”
서연이 장난감을 던지는 시늉을 하자 혁준이 서연을 잔뜩 째려보고는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승태와 다정, 그리고 서연은 그 모습을 보며 거의 바닥에 뒹굴듯 웃어댔다.
“어우 오랜만에 낮술 했더니 슬슬 취하는 것 같다. 확실히 예전 같지는 않아.”
“혼자 그렇게 술을 먹어대니까 그렇지. 근데 나도 좀 배부르긴 하네.”
“슬슬 조금씩 치울까 그럼?”
“그래 그러지.”
혁준과 서연이 배를 쓸어내리며 일어나 하나둘씩 치우기 시작했다. 중간에 혁준이 취한다면서 은근슬쩍 의자에 앉아 쉬려고 하는 걸 서연이 등짝을 때려 겨우겨우 일으켜 정리를 시키기도 했다. 승태와 다정도 곧바로 따라 일어나 일사불란하게 술자리를 정리했다.
해가 언제 진지도 모를 만큼 넷은 신나게 놀고 마시며 적당히 취기가 올랐다. 서연이 노래방을 가자고 하기도 했지만 혁준이 피곤한지 그냥 집에 가겠다고 했다. 서연은 몇 번 더 졸라봤지만 혁준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서연과 혁준은 천천히 짐을 챙겨 나왔다. 승태와 다정도 둘을 배웅하기 위해 따라 나왔다.
“승태 생일 축하한다. 너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안 헤어질 거 같네.”
“에이 쟤네도 똑같아. 승태 하는 짓 봐라 다정이가 바로 헤어지자 할걸?”
“꼭 그렇게 초를 친다. 우리 간다!”
“야야 밀지마! 승태 생일 축하해!”
“어휴 조심히 가!”
굳이 한 마디 더 보태서 분위기를 망치려는 혁준을 서연이 떠밀듯이 데리고 갔다. 쟤네는 나가는 순간 까지 시끄럽다며 다정이 웃어댔고 승태는 그런 다정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끼리 한잔 더 할래?”
승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정을 보며 말했다. 다정은 그 말을 듣고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렇게 승태와 다정은 집으로 돌아와 2차 술상을 차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