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택배차가 싫어요
새로 이사 온 단지의 택배 담당이 사촌 도련님이라는 사실을 애들 아빠에게 말했다. 배송 안내 문자 외에 안부 연락이 따로 왔노라고도 알렸다. 아는 척 말아주십사 냅다 이밍아웃을 할 수도, 그렇다고 연락을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어쨌거나 애들 아빠가 이 소식을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자기도 연락을 받았다는 답장이 왔다. 도련님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만날 일은 특별히 없을 테니 그냥 따로 얘기 안 하면 될 거라고 했다. 하필이면 그 택배사에서는 꼭 내 퇴근 시간 전후로 택배가 오는데, 앞으로도 한동안은 여기 살아야 할 텐데 정말 마주칠 일이 없을까. 뭐라고 써야 할까 망설이다 결국 답장을 못 보냈다.
계절도 바뀌고 새 학기를 맞는 시기, 도련님의 문자는 이어졌다. 도련님은 어느 날은 밀키트를 가져다줬고, 또 어느 날은 우리 세 식구의 봄옷을, 아이들의 운동화를, 새로 나온 만화책을 가져다줬다. 그러다 자꾸 문자 받기가 유독 민망했던 어느 날, 도련님께 때늦은 답장을 보냈다.
이사 와서 이것저것 시킬 게 많네요~
괜히 겸연쩍어 옛 도련님께 변명을 했다. 이제 연락 주고받을 일이 뭐 더 있겠나 싶었다. 그러다 현관 옆에 반품 상자를 두고 출근했던 어느 하루, 뜻밖에도 도련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허허 형수님~ 잘 지내시죠~?"
수화기 속 너머의 도련님은 여기 있는 이 상자가 그 반품건 상자냐고 물었고, 나도 적당히 웃으며 맞다고 잘 부탁드린다고 했다. 민망했다. 반품이 성공적으로 접수되었는데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분명 내가 사고 싶어서, 내가 필요해서 주문하는 건데 어째서 내 돈 쓰며 마음이 불편해질까.
그날 이후 나는 쇼핑할 때 택배사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속옷을 주문할 때도, 훈제란을 주문할 때도 택배사부터 확인했다. 단지 안으로 들어갈 때면 택배차가 있는지 두리번거리게도 되었다. 혹시 마주칠까 봐 신경 쓰였다. 아기다리 고기다리 내 택배가 온다는 뜻인데, 나는 택배차를 보면 이제 가슴이 벌렁벌렁 했다.
친정 단톡방에 이런 일이 다 있다고 알렸더니 식구들은 의외로 덤덤했다. 별일 아닌데 내가 괜히 신경 쓰나 싶었다. 친구랑 통화하다 우연히 택배 트럭이 지나가는 걸 보고서, 웃긴 일이 있었다며 옛 도련님 얘기를 했더니 친구는 신기해하면서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 보라고 했다. 가전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깔깔깔 웃음이 났다. 이게 치킨 쿠폰도 아닌 가전감이라니. 내 불편함의 크기를 이해해 준 친구가 고마웠다. 집으로 가는 길, 택배차가 보였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들어갔고,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멍하니 기다리다 도련님을 마주친 건 트럭이라고는 코빼기도 구경 못한 다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