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염치 없는 부탁
브런치북 <나의 발칙한 이혼 일지 1>에서 이어집니다.
<예의란 무엇인가>를 보낸 그날 오후 스타벅스에서 원래는 다정했어야 할 커피를 사이에 두고 남편과 마주 앉았다. 몇 년 만이었다, 단둘이 카페에 간 게. 그것도 하필이면 이혼 얘기를 꺼내고서야.
힘들어서 이제 그만하고 싶은 마음을 글이 충분히 전했으리라 믿었지만, 남편이 요청하여 마주 앉은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내 뜻을 알리고 동의를 구했다. 예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욕심은 어쩔 수 없이 둘둘 말아 쓰레기통에 넣었다고 한들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진흙탕 싸움 된다는 소송을 피하고픈 욕심마저 버리진 못했기 때문이다.
담담히 이어진 내 얘기가 그치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뜨더니 한참 후에야 돌아와 머뭇거리기를 잠시.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염치 없는 부탁이라는 거 잘 알지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나는 여보랑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긴장하면 항상 파르르 떨곤 하던 그의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염치 없는 줄 안다면서 왜 또 염치가 없으려고 할까. 이런 전개는 전혀 예상 못했다.
싫어!
싫어,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어느새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싫다는 말만 반복하는 앵무새가 되어 있었다. 구석자리에 앉았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누군가 망신살 동영상을 찍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든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도 제정신일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그때는 그저 너무 슬프고 답답하기만 했으니까.
그는 전에도 내가 몇 번 꺼냈고 자신도 꺼낸 적 있는 이혼 이야기가 모두 수사적인 의미라고 생각했단다. 나는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한번도 그 단어를 시늉으로 사용한 적은 없었다. 말은 무겁고, 이혼 역시 가벼울 수 없으니까. 그러니 그동안 내가 힘들게 꺼냈던 이혼 얘기를 단지 수사적 의미로만 받아들였다는 그의 말에 나는 다시 한 번 좌절했다.
절망이 깊어질수록 이혼이라는 동아줄은 더 간절해졌다. 기회를 또 달라는 말에 가슴이 너무 갑갑했다. 숨을 고른 뒤 목소리를 쥐어짰다.
그만하고 싶어.
여보, 나는 이제라도 살아서 행복하고 싶어,
그러니까 이혼합시다.
이거라도 해 주라,
나는 여보랑 같이 살면 살 수가 없어.
하지만 남편은 끝내 내가 원했던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흔쾌히 동의하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모진 말로 요구하면 들어 줄 거라고 생각한 내가 순진했던 걸까. 그가 많이 노력했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이제라도 나를 더 챙기려는 마음도 너무 잘 알았지만, 너무 오래 걸렸고 너무 늦었다. 늦었다는 게 이렇게 슬플 수 있는 줄 몰랐다.
남편에게도 나에게도 상처만 안긴 스타벅스에서의 커피 한 잔을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는 어머님 생신 축하를 위해 시댁으로 향했다. 전날 시댁에 맡겨둔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꿈에도 모른 채 우리를 반겼고, 나는 목구멍으로 밥이 안 넘어가는데 남편은 고기를 아주 잘 먹더라. (그래서 나도 열심히 먹었다.)
브런치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 그러니까 한두 달 전 도비가 법원에 서류를 제출한 뒤 친구들에게 이밍아웃을 하기 시작했을 때 회사에서 <나의 발칙한 이혼 일지>를 읽다 눈물이 났다는 한 친구가 이렇게 물었다.
“도비야, 내가 니 글을 읽고 느낀 건데, 너가 정말 너무 오래 참은 거 같애서 엄청 안타까웠어. 좀 더 일찍 이혼했으면 니가 덜 힘들었을까?“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생각인데 친구의 질문을 들은 내 입에서 이런 대답이 나왔다.
“맞아, 나는 정말 많이 참았고, 정말 힘들었어. 근데 그렇게 오랜 고생 끝에, 오랜 고민 끝에 아주 아주 힘들게 이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이제 내 결심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어.“
벗은 허물을 다시 입는 경우는 없다.
이혼을 결심한 도비의 사전에도 빠꾸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