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비 Mar 28. 2023

엄마, 결혼하지 마요!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걸까.


엄마, 결혼하지 마요!

아직 파스타를 먹고 있던 공주가 갑자기 외쳤다. 먼저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 그릇을 막 싱크대에 놔두던 참이었는데 이게 무슨 소리람.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했다.


”공주, 뭐라고? 그릇 놓느라 잘 못 들었어.“

“엄마 결혼하지 말라구요!”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갑자기 이게 다 무슨 소린가 싶고, 얘가 왜 이런 말을 하나 싶고, 아빠를 만나고 막 돌아와서 그런가도 싶고, 평온하던 머릿속이 공주 말 한마디에 금세 쑥대밭이 되었다.


“엄마가 결혼을 왜 해~ 벌써 했잖아, 공주랑 왕자도 낳아서 키우고.”

“아니, 결혼 한 번 하고 나서 또 결혼하는 거 있잖아, 그거 하지 말라고.”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고 하는 말이었다.


“재혼 말이야?”

“응, 그거.“

“할 일이 아마 없지 않을까? 엄마는 공주랑 왕자랑 살 거니깐. 근데 너가 그런 거를 어떻게 알았어?”


고아원이 고등학생 어쩌고냐고 물어보는 아이가 알 만한 단어는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서 공주에게 물었다.


“엄마, 그건 여기저기에서 나온다구~ 신데렐라에도 나오고 백설공주에도 나오잖아! 그거 안 하면 좋겠어!


그러네. 신데렐라랑 백설공주에 재혼이 나오네.  
istock 이미지. 귀엽게도 애원하던 공주를 닮았다.


엄마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은 후 그런 어떤 따사로운 마음이라는 가치에 별 소중한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미 조금 겪은 바, 애 둘 딸린 이혼녀를 만만하게 보는 우리 사회 어떤 이들의 결코 만만하지 않은 시선에 대해서도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애들 밥 먹이고 치우느라 바쁘고, 주말이면 애들 데리고 놀아주기 고단하고, 애들이 아빠 만나는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낮잠 자고 멍 때리거나 내 나름의 숨고르기를 하느라 하루가 짧다는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엄마는 공주랑 왕자 챙길 건데~ 하고만 말했다. 아이가 듣고 싶었던 말은 그게 아니었을까 하고. 이혼 한 달 차, 이전과 대단히 다르지도 않지만 아직도 적응하고 사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지내는데 열 살 먹은 내 공주는 엄마가 결혼할까 봐 걱정이라니, 새삼 아이가 많이 큰 것 같다.


이 와중에 왕자는 슬퍼서 밥을 못 먹겠다며 식탁에 앉아 엉엉 울다 흐느끼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빠랑 엄마가 같이 있는 걸 보고 싶다고 울었다. 아까 엄마가 물어 봤는데 아빠는 일이 있어서 같이 못 먹는다고 하지 않았냐, 다음에는 미리 날을 잡아 같이 먹으면 된다고 어르고 달랬다. 그래도 두 번째 보니 마음이 좀 덜 아팠다. 차차 그러려니 하게 되는가 보다, 이렇게.


이전 17화 딸과 이혼 드라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