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는 연장자를 성별과 상관 없이 ‘삼촌’이라고 부른다. 나는 어쩐지 그게 선생님이나 선배님같은 호칭보다 믿음직스러우면서 동시에 인간적이어서 좋았다. 어른을 우상화하지 않는 낮은 담장같은 표현이라 좋았다. 해가 바뀌며 서른 두살이 된 내가, 어떤 방법을 써도 어른이 아닐 수 없을만큼 나이를 먹은 내가 긴장을 풀 수 있는 마법같은 호칭 같아서 지금은 더 좋다. 지난 초봄에 나는 K삼촌, 그리고 L삼촌과 함께 1박 2일간의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엄밀히 말하면 출장이었지만 왜인지 놀고 먹기만 하다 온 기억 뿐이다. 좋은 어른들과 함께라서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출장은 제주 4.3과 관련된 지역을 답사하는 일정으로 계획되어 있었는데, 우리는 제주시의 어느 식당에서 멜튀김과 국밥으로 배를 먼저 채운 뒤 본격적인 이동에 나섰다. 운전대를 잡은 K삼촌은 어머니대까지 제주에서 나고 자라셨고, 본인은 제주에 세컨드하우스를 가지고 있어 지리에 빠삭했는데, 셋 중 가장 막내인 나에게 가보고 싶었던 곳이 없냐고 물어왔다. K삼촌은 세상만사에 시니컬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편견이 없는 사람이다. 구태여 상대방 의중을 떠보는 일도 없고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믿는다. 그래서 솔직한 성격의 내가 불나방처럼 내 마음을 꺼내들고 들러붙게 하는 재주가 있다. 나는 내내 사진으로만 보고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바다가 보이는 카페를 조심스럽게 입에 올렸다. 슬로보트였다.
평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카페 안에는 이미 사람이 가득 차 있어서 원하던 통창 앞 자리는 맡지 못했다. 대신 바다내음을 물씬 맡을 수 있는 바깥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는데, 엉성하게 포장된 길과 바다를 막는 둑에 그려진 소라나 조개 그림, 이따금씩 지나가는 떠돌이 개들을 힐끔거리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제법 제주에 온 것 같아 오히려 좋았다. 카페 안에서 통창 너머로 바다를 보는 일이 책의 표지를 보는 것과 같다면, 바깥에 나와 앉아 있는 일은 책 속을 들여다보는 일인 것 같았다고 하면 지나친 감상일까?
두 삼촌이 열 살 정도의 터울, 그리고 L 삼촌과 내가 또 비슷한 터울이었으니 우리는 의도치 않게 각자가 삼, 사, 오십대를 대표하는 것처럼 역할을 떠맡게 된 셈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이를 잊은듯이 서로의 이야기를 꺼내보였다. K삼촌을 만나게 된 것은 처음으로 참여했던 독립영화의 촬영감독님을 통해서였다. 영화 촬영이 준비단계에서 무산되면서 낙동강 오리알이 된 나에게 일자리를 소개시켜 주고 싶다며 어느 제작사의 연말 파티에 초대해주신 일이 계기가 되었다. 파티에서 안면을 트고 나서 며칠 뒤 K삼촌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셨고, 마침 누군가 필요한 자리에 단기 스탭으로 들어가 일을 하게 되면서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L삼촌은 K삼촌이 또 다른 일거리로 나를 부르며 꾸린 팀의 일원이었다. 나이로도, 경력으로도 무엇 하나 그들의 리그에 낄 만한 재목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낮추던 나를 두 사람은 엄연한 직업인으로, 그리고 감히 그들과 동등한 동료로 대해주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요새 꼰대가 많아서 젊은 사람들 살기 힘들다 하지만, 꼰대 아닌 사람도 그 나머지를 차지하는 것이 결국 사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먹고 사는 일에 회의감을 느낄 즈음 운명은 나에게 이런 귀인들을 한번씩 안겨준다. 그러면 또 아직 살만하다는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유난히 커다란 눈송이가 내 손등에 내려앉는다. 구름에서부터 천 미터 이상의 거리를 떨어져내린 눈이다. 그사이 얼마나 여러 차례 결속했기에 이렇게 커졌을까? 그런데도 이토록 가벼울까. 이십 그램의 눈송이가 존재한다면 얼마나 커다랗게 펼쳐진 형상일까.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나는 제주를 배경으로 쓰인 한강 작가의 소설에서 누군가의 의지나 의도와 상관 없이 결국 어느 자리에건 아로 새겨지는 역사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개인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는데, 어른이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켜켜이 쌓인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흔히 살아온 삶은 얼굴에서 드러난다고들 하는 것처럼.
좋은 어른은 ‘처음’을 잊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인 즉슨, 스스로 좋지 않은 어른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도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은 아직 있다는 것이다. 바로 처음의 기억을 두드리는 일이다. K삼촌은 제주 박사다. 어느 카페의 원두가 맛있는지도 알고, 어느 밥집이 진짜 로컬들만 가는 집인줄도 다 알고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껏해야 SNS에서 본 사진들을 저장하는 게 전부인 초짜 여행자가 가고 싶다는 카페의 주소를 군말 없이 내비게이션에 찍는 그녀는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바닷가 테이블에서 K삼촌은 (내가 보기에)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바리스타가 내려준 드립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는데, 나는 내내 눈을 힐끔거리며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침내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삼촌이 건조하게 말했다. 여기 커피 잘 내리네. K삼촌은 정말이지 언제나 처음같은 사람이다.
스물 세 살 때부터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꽤 좋은 어른들을 많이 만났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어느 정도냐면, 내가 때때로 일을 하다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온 것은 좋은 어른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좋지 않은 어른을 견딜 수 없었던 거라고 생각했을 만큼이다. 물론 나의 얕은 책임감을 회피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할 수도 있다. 분명 나에게도 잘못은 있다. 좋은 어른은 역으로 자신을 좋은 어른으로 만들어줄 상대자가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 집 도어락 비밀번호를 바꾸려다 집 밖에 내몰린 일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함께 사는 친구가 있었거나, 이사를 도와준 친구가 안에서 문을 열어줄 수 있었기 때문에 걱정해본 적이 없는 일을 근 7년만에 다시 하려니 머리가 지끈거리고 귀찮았기 때문에 충분히 확인하지도 않고 문을 닫아버린 것이 문제였다. 아무리 새로운 비밀번호를 눌러도 문은 열리지 않았고, 눈 앞은 캄캄해졌다. 급하게 열쇠수리공을 불렀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열쇠공은 안타깝게도 번거롭고 귀찮은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짧은 통화에서부터 느껴지는, 좋은 어른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에 솔직히 운이 나빴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한가지 방법을 선택했다. 불필요한 절망을 거뜬히 피해갈 수 있는 방법. 육백원 짜리 비타오백 한 병. 한시간 쯤 뒤, 약속한 시간이 되자 1층에서부터 열쇠공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올라오는 열쇠공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이거 드시면서 하세요, 하면서 손에 쥔 병을 건넸다. 그렇게 시작해 몇 마디 주고받다 보니 중간중간 버럭 짜증을 내기도 하고, 마지막까지 땀을 흘리며 투덜대던 열쇠공이 짐을 정리하다 처음에 받았던 비타오백 한 병을 다시 발견하고는 마음이 완전히 누그러져서 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기까지 했다. 아주 잠깐은 열쇠공의 좋은 표정을 본 것도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처세가 필요한 일에서는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좋지 못한 어른 앞에서 처세는 커녕 입 꾹 다물고 그들과 영영 헤어질 날을 기다리기에 바빴다. 이 일만 끝나면 다시 볼 사람들이 아니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 나와 상관도 없는 사람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애쓰지 말자. 온통 이런 생각들 뿐이었다. 사실 그건 나 스스로를 괴로움으로 내모는 길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좋지 못한 어른이 되는 길이기도 했다.
고래 묘사만 잔뜩 있는 챕터들이 유독 슬펐다.
자신의 넋두리에 지친 독자들을 위한 배려인 걸 아니까.
이 책을 읽으며 내 삶을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영화 <더 웨일> 중
누군가와 영영 헤어지는 일도 간단한 건 아니다. 일단 같은 배를 탄 이상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하던가 그대로 남는 것 중 택일하는 수밖에 없는데,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거센 파랑에 몸을 던지는 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아무리 괴로워도 배에 남아 있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애석하게도 악연은 필연일 때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한, 또 좋은 어른을 만나기 위한 길은 손을 내미는 일인 것이라 생각한다. 소설 모비 딕을 읽다보면 엄숙한 식사 자리에서는 깍듯이 존칭을 지키는 선원들이 갑판에 나서면 너나할 것 없이 격식을 잃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그들이 서로를 삼촌이라 부르며 함께 폭풍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말은 거칠어도 그건 결국 서로를 살리려는 목적 아래 벌어지는 일이었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물고 뜯는 전쟁터같아 보여도 이토록 진심을 다하는 구명의 순간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이처럼 사람 사이에 천천히 행간을 읽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순간이 있다. 탈진한 그들에게 생수 한 병 건네며 주고받는 눈인사. 우리는 그 순간에 느끼는 짧은 다행스러움을 붙잡고 항해를 계속해 나갈 뿐인 것이다.
제주의 슬로보트에서 나는 삼촌들의 모습을 읽으며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느리게 흘러가는 순간에 깨달은 배려의 마음을 잊지 않고 싶다고 생각했다. 만약 예상치 못한 거센 파랑을 만나도, 그렇게 만난 파랑 속에서 지금은 온화한 삼촌들이 거칠게 변하더라도 나는 삼촌들의 넋두리를 기꺼이 듣고 싶다고, 나에게 기꺼이 넋두리를 뱉어주는 그들을 보며 오히려 다행이라 여기고 싶다고, 그리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만큼 나도 좋은 어른으로 쌓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