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의 지진은 새로운 계절을 알리는 신호라고 울란은 말했다. 2023년 8월 29일 새벽 4시. 답답하고 뭔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꿈을 꾸다가 침대가 흔들리는 걸 느끼고 눈을 떴다. 상황을 판단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동안 한국 집의 보일러실에 빗물이 새는 통에 기본적으로 내 재난 상상력은 집 폭발 정도의 수준으로 상향조정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 빈번하다는 지진인 것 같았다. 다만 문제는 길어도 너무 길었던 지속시간이었다. 현실은 언제나 상상보다 한 발짝은 앞서 있기 마련이니. 체감상 1분 정도는 침대가 좌우로 계속 흔들린 것 같았다. 진동이 잠잠해졌을 때 쯤 미닫이로 된 숙소 문을 열었다. 밖에서 울란을 비롯한 홈스테이 호스트 식구들 목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온 동네 들개와 닭들이 우는 소리도 어둑한 풍경을 채웠다.
깜풍사리 홈스테이에 묵고 있던 팀은 나와 옆방 커플, 그리고 어제 들어온 3층 모자까지 세팀 뿐이었다. 벽 너머로 약간씩의 기척이 느껴졌다. 호스트 식구들에게서 대피하라는 말이 없어서 일단은 문을 열어둔 채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여행 카페에도 들어가보고 혼자 여행 온 사람들의 오픈채팅방도 살폈다. 모두가 불안에 떨며 가깝고 먼 이들의 온기를 찾고 있었다. 점점 활성화되는 채팅방과 소모되는 데이터가 스마트폰을 달구면서 사람들은 간접적으로나마 그 온기를 느꼈을 것이었다. 몇분 쯤 흐른 뒤 마침내 제대로된 정보가 들어왔다. 롬복 섬 쪽 먼 바다에서 7.1 규모의 지진이 났다고 했다. 지진 발생 시 대처 요령 등을 가볍게 읽어본 뒤, 건물에 균열이 생겼을 때 탈출할 수 있도록 숙소 문은 열어놓고 무너진 건물 잔해 아래 갇혔을 때 식수를 섭취할 수 있도록 머리맡에 물통을 두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왜 무너질지도 모르는 건물을 탈출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왜 잔해에 파묻힌 채로 살아남아 보겠다는 생각만 했을까 싶다. 100년이 넘도록 한 가족이 쭉 살아왔다는 건물의 역사가 나를 지켜줄 거라고 멋대로 믿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아침이 밝았다. 공포심으로도 칼로리 소모가 되기도 하는지,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눈이 떠졌다. 새벽 요가 수업에 다니느라고 며칠간 6시 반에 기상을 했는데 9시의 아침식사시간에 스태프 청년이 숙소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부랴부랴 몸을 일으켰다. 두 번째 노크소리가 들렸을 때에야 눈곱도 떼지 못한 차림으로 겨우 커튼을 걷고 손을 들어 스태프 청년에게 인사했다. 비어 있던 다른 옆 방에는 멋지게 태닝을 한 여자아이 둘이 새로 들어와 강아지 쵸쵸와 놀고 있었고, 거리에서는 이미 하루를 시작한 이들의 바이크 소리가 힘차게 들려왔다.
그저께부터 마을에 정전이 와서 숙소 와이파이가 불안정했다. 숙소를 관리하는 야무진 젊은 엄마 울란에게서 왓츠앱 메시지가 왔다. 기사를 불렀으니 오후 쯤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어차피 요가 수업도 오후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이참에 요가원을 오가며 눈여겨 보던 작은 카페에서 오전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짐을 챙기고 출발하기 전에 마당에서 울란을 만났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다가 마침 잘 됐다 싶어서 지난 새벽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그거 지진 맞지? 울란이 긍정의 맞장구를 쳐 주면서 이번 지진은 유난히 길었고,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자기도 가족들과 함께 마당으로 나왔다고 했다. 너도 방 밖으로 나왔니? 울란이 묻는 말에 나는 아니, 그냥 방 안에서 문만 열어놓고 있었어, 하는데 울란은 혹시라도 이런 일이 또 생긴다면 그 때는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했다. 갑자기 심각해지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동시에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이렇게 덧붙였다. 발리에서는 새로운 계절이 오기 전에 꼭 한 번씩 지진이 나곤 해.
요가원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아담한 카페, 코피토코는 자리를 잡고 앉으면 유리창 바깥의 분주한 풍경이 생동감과 여유를 동시에 느끼게 해 주는 곳이다. 발리의 카페 어딜 가나 그랬지만, 커피나 디저트가 맛있기보다는 공간이 주는 교류의 감각이 안에만 고여 있던 에너지를 밖으로 끌어내준다. 코피토코에서 나는 그간 밀려있던 블로그 포스팅을 시작했다. 친구와 함께 있는 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아이패드로 전송해 하나하나 훑어보니, 지난 일주일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랬다. 한달살기를 계획한 발리 여행이었지만, 오랜만의 해외여행이라 두려움도 조금 있었다. 그래서 마침 퇴사 후 쉬는 중이던 친구를 꼬셔 여행의 시작을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지진이 나기 바로 전 주에 발리로 함께 왔던 친구는 일주일의 짧은 휴가를 마치고 먼저 한국으로 돌아간 뒤였고, 남겨진 나는 일주일을 휴가답게 즐겼으니 3주 동안 최대한 무언가가 남을 수 있도록 일기든 뭐든, 써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팬데믹이 종식된 이후 첫 해외여행이었다. 장소는 신중하게 골랐고 기간은 최대한 길게 잡았다. 여행 없이 살았던 지난 3년간의 갈증을 한번에 해소하겠다는 의지로 충만했다. 그리하야 발리에 한달을 살기로 결심한 뒤에는 한편의 단편소설을 완성시키겠다는 목표마저 세우고 말았다. 그러나 현실은 상상에 미치지 못하기도 한다. 친구가 떠난지 며칠이 지나도록 통 글이 써지지 않았다. 이게 다 장소의 아이덴티티와 영감을 흐리는 거리의 백인들 탓이라고 푸념했지만 그 또한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기에, 그것이라도 붙들고 두드려보는 게 이 여행의 목적이 아니었던가, 하고 스스로를 달랬다. 익숙치 않은 것들은 글로 써서 남겨야 했다. 비일상적인 체험 뒤에는 어떤 계시같은 스토리가 나에게 임할 수도 있기에. 그런 기대로 예열을 하는 게 내 글쓰기 작업의 대부분이었기에. 그러나 수백장의 사진을 정리하다 지친 나는 짧은 블로그 일기 쯤에서 감상을 마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 순간 여행을 앞두고 참여했던 글쓰기 합평 수업 때 지적받은 부분이 가슴을 스쳤다. 선생님은 언제나 고백할 듯 고백하지 않는 나의 문단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고. 자극이 있으면 행동 반응이 있어야 한다고. 평생을 행동보다는 생각에만 잠겨 살아온 나에게 무언가에 반응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었다. 대체 뭘 더 써야 하나? 글을 쓰겠다고? 나 답지 않은 글이라도 미친 척 쓰겠다고? 하다못해 미련한 다짐같은 것이라도 해야할까?
Virginia Woolf, Sylvia Plath, Anne Sexton, why was it that so many writers had committed suicide? Nadira laid those books aside and then put them into the storage box.
“But they’re all Mother’s favorite books!” Arya’s voice was shrill.
“I know, but I get depressed reading them. I’ll just leave them here.”
…”My guiding Principle here is that I want to put distance between myself and any artist whose life clouded by depression. I want to see the sun. I want to see life as it really is.”
- <The Longest Kiss>, Leila S Chudori
우붓의 책방에서 구입한 인도네시아 작가의 소설 ‘The Longest Kiss’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좋아하던 것에서 더 이상 행복을 찾을 수 없는 이의 고백이 흐른다. 좋아하던 영화가 일이 되었을 때 나에게서 멀어진 것처럼,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이제껏 나를 위로해주던 책들이 나를 채찍질하기 시작한 것처럼, 나는 나디라처럼 나를 행복하게 하던 것들을 하나 둘 잃어가는 중이었다.
발리에서 처음 사귄 인도네시아 친구는 택시 드라이버 오카다. 숙소 예약 플랫폼을 통해 만난 그는 발리 섬의 동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살면서 매일 이른 새벽 택시를 끌고 큰 도시로 나와 일하는 성실한 청년이었다. 반려견은 도기, 반려묘는 키티라고 부르는 심플한 성격에 나와 친구는 무한한 신뢰를 느꼈다. 첫만남 이후로도 우리는 두 번이나 더 오카의 택시를 이용했는데, 이후 짱구나 스미냑같은 번화한 지역에서 만난 발리인들과 달리 오카는 그 무엇도 함부로 재단하지 않았고 장소든, 사람이든 본질을 들여다보기까지의 여유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추천해주는 관광지나 공예점 따위를 모조리 지나치고 곧장 숙소로 갈 것을 부탁하는 나와 친구에게 오카는 단 한 번도 여행은 그렇게 게으르게 하는 게 아니야, 여기서 너희는 이러이러한 것들을 꼭 경험해야 해, 하고 훈수를 둔 적이 없었다. 덕분에 우리는 그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우리 식의 여행을 사랑할 수 있었고, 행복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 좋아하는 방법을 알아갔다.
오카와의 시간들을 복기하며 코멘트를 써내려가다보니 어느 새 블로그 일기는 배로 불어나 있었고, 요가 시간이 가까워졌다. 부랴부랴 아이패드를 접고 요가원으로 걷기 시작했다. 수업 내내 요가 선생님은 완벽하지 않아도 되니 자신의 호흡에 귀 기울이라고 반복적으로 말했다.
‘목적지를 정하면, 도착할 수 없게 된다.’
가지고 있던 지도에 쓰여 있던 말.
나는 백색 지도를 보고 있다.
주머니에 구겨넣자 주머니가 터져 버렸다.
…
발이 더 무거워졌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너는 무서워하면서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 <생일 편지> 중 일부, 안미옥
얼마 전 일주일의 휴가를 함께 했던 친구에게서 시 구절이 날아왔다. 읽자마자 내가 생각나서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안미옥 시인의 ‘생일 편지’였다. 나를 이렇게까지 들여다봐 준 친구가 고마우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끝까지 걸어가기 위해서 무서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일까.
지금껏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한껏 긴장해 있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성공은 지진이나 벼락처럼 한순간에 찾아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것 같았다. 여유도 그렇게 찾아올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날들은 불행했다. 그래서 멋대로 그런 날들을 모조리 새벽 취급했다. 해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 따위를 곱씹으면서. 그러나 새로운 계절은 불쑥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지진이 난 다음날에도 어제처럼 변함없는 거리를 보면 새로움이란 그저 물들듯이 번지는 변화의 연속인 듯 했다. 때문에 심기일전 따위의 말로 비장하게 맞이하려는 노력은 에너지 낭비였다. 서로 매일같이 안부를 묻고, 문은 열리기 쉽게 두고, 지나치게 긴장하지 않는 게 중요했다. 새로운 계절은 앞으로도 계속 찾아올 것이기 때문에. 지진이, 새로운 계절을 알리는 신호가 언제 찾아와도 괜찮을 수 있게 매일을 성실히 쌓아올리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심각해지지 말기로 했다. 지진이 나도 아침은 온다. 밝아오는 새로운 계절은 우리가 이미 몇 번이고 겪어본 계절에 다름없고, 동시에 우리가 지나온 모든 계절은 새로웠다. 나는 익숙한 사람처럼 여유롭게, 그리고 처음 만난 사람처럼 반갑게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맞이하기로 했다. 나의 글은 언제나 거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매일과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