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의 부속섬인 마나가하로 들어가는 보트에서는 가는 길 내내 투명한 물밑을 내려다볼 수 있다. 아무리 열길 물속이 사람 마음보다 선명하다지만 섬을 둘러싼 물밑은 지나치게 투명해서 섬이 섬처럼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우리가 흔히 비유를 위해 가져다 쓰는 섬이라는 단어에는 고립이라던가 고독이라는 감정이 따라붙기 마련인데, 마나가하로 가는 물길은 목적지에 닿기 위한 희뿌연 과정이라기보다는 멋진 에메랄드빛 카펫이 넓게 펼쳐진 어떤 장소다. 아무도 없거나 혹은 아무도 오고갈 수 없는 곳. 나에게 섬이란 그런 의미였지만 마나가하에서는 없던 길을 내어서라도 섬과 육지 사이의 거리와 그 사이를 잇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투명한 물빛이 나를 환상같은 상상으로 이끌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마침 수십년 전 장 그르니에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에세이에서 섬에 관한 보편적인 이미지에 물음표를 던졌다. 시원한 공기며 사방의 수평선으로 자유롭게 터진 바다. 섬 말고 어디서 만날 수 있겠느냐며.
섬들을 생각할 때면 왜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일어나는 것일까? 시원한 공기며 사방의 수평선으로 자유롭게 터진 바다를 섬 말고 어디서 만날 수 있으며 육체적 황홀을 경험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섬 말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섬에 가면 ‘격리된다(isole).’ ─섬( Ile)의 어원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섬, 혹은 ‘혼자뿐인’ 한 인간. 섬들, 혹은 ‘혼자씩일 뿐인’ 인간들.
- <섬>, 장 그르니에
팬데믹이 덮치기 직전이었다. 2019년 겨울, 나는 오래도록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 채 열대의 섬 사이판으로 2박 3일간의 짧은 여행을 떠났다. 때는 크리스마스를 2주 앞둔 12월 초였다. 그때까지 많은 여행을 다녀봤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남들 다 가는 휴양을 위한 여행은 난생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겨울에 떠나는 열대의 섬이라니. 추운 나라만 고집하던 나에게 있어 얼마나 전복적인 선택인가. 그해는 나에게 여러모로 의미있는 해였다. 매번 2순위로 미뤄두기만 하던 꿈에 한발짝 가까워지는 해였고, 그 가까워진 거리에 대한 희열만으로 육체와 정신의 한계를 처음으로 극복해 낸 시간이었다. 좌절이나 무력감은 이제 나와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고 생각했고, 오렌지빛 태양과 파란 하늘 아래 웃음 지어야 하는 열대의 텐션이 부담스러웠던 지난 날은 벗어던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천진난만한 기분으로 사이판 행 항공권을 결제했다. 사실 가고싶었던 곳은 하와이였지만 이미 운명이 한해동안 1순위의 소망을 이뤄주었으니 여행지는 2순위로 만족해도 좋았다.
공항에서 보딩 시간을 기다리던 나는 당시 만나기 시작한지 일주일도 안 된 남자친구에게 통화로 안부를 전하는 중이었다. 맞은편 대기의자에 혼자 웅크리고 있는 친구가 통화 내내 영 신경이 쓰였다. 내가 먼저 졸라서 같이 가게 된 여행이었다. 회사 일로 바쁜 친구에게 항공권은 내가 살테니 너는 동행만 해달라며. 스물 한 살에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나 20대 초중반 내내 꿈을 이루지 못해 슬프다는 투정을 질리도록 들어주고 잠시 멀어지기도 했다가 또 누구보다 가까워지기도 하기를 반복하던, 나에게 가장 인간적인 의미에서 관계의 끈으로 이어진 친구였다. 이제는 고향 친구보다도 더 소울메이트다워진 친구는 갓 사귄 남자친구만큼이나 소중히 챙겨야 하는 사람이었다. 통화를 이만 끝내야 할 것 같다고, 친구가 혼자 멀거니 앉아 있다고 미안한 목소리로 말하자 당시 남자친구는 서운한 티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나도 혼자 있는데. 잠시 침묵이 흘렀다. 눈 앞에는 여전히 친구가 무료한 표정으로 몸을 구기고 있었다. 침묵의 시간만큼 생각의 끈이 길어졌다. 어렵게 낸 휴가는 기껏해야 2박 3일이었다. 여행이 끝나면 또 각자의 삶으로 돌아갈 터였다. 멀리 있는 그가 혼자 있을 모습을 아무리 떠올려보려 해도 지금 나를 위해 시간을 내서 앞에 앉아 있는 친구보다 선명히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눈 앞의 외로움과 먼 곳의 외로움은 어떻게 다를까? 그와 결별 후 한참이 지난 뒤 그때를 떠올리다 문득 궁금해졌다. 멀어진 거리만큼 나는 마음을 더 적극적으로 전해야 했던 걸까? 바다 건너 섬처럼 멀어진만큼 내 마음이 외따로 떨어질 것을 경계하면서? 아니면 그의 마음이?
마나가하 섬에서 우리는 우리만의 작은 카페를 차렸다. 친구와는 종종 상암동의 평화의 공원이나 수성동 계곡같은 곳에서 돗자리를 펼치고 챙겨 온 음식이나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사이판에서도 우리의 패턴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전날 새벽에 공항에 도착해 임시숙소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마나가하 섬 보트 탑승장으로 가는 셔틀을 타기 전에 마트에 들렀다. 제주도 어딘가의 해안도로를 닮은 길을 따라 땀을 흘리며 걸어 도착한 마트에서 우리는 각각 딸기 샌드 크래커와 초코 과자, 음료 등을 사가지고 왔었다. 챙겨 온 이케아 그물백에서 이동장의 고양이처럼 고개를 내밀고 있는 주전부리를 모래사장 위 돗자리 카페에 펼쳐 놓았다. 눈앞에 펼쳐진 이국의 바다 덕에 프라이빗한 카페에는 오션뷰라는 프리미엄 옵션까지 추가된 셈이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수평선까지 바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가까이서 봐도 뿌옇기만 한 고국의 바닷물을 떠올리자 어딘가 뻥 뚫린 듯 시원한 감각이 몸을 휘감았다. 모처럼의 바다 여행을 대비해 장만한 수영복을 입었고, 친구에게 빌려 쓴 고글과 함께 초등학교 때 이후로는 거의 처음 바다수영을 했다. 각자 물놀이에 정신없이 빠져 있다가 내가 먼저 지쳐 물 밖으로 나왔다. 머지 않아 뭍으로 나온 친구가 섬을 돌아다녀볼까, 하고 말했다.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다 백숙을 먹던 어린시절처럼 우리는 투박하고 유치한 그래픽이 난무하는 매점을 찾아 들어갔다. 트로피컬한 오렌지색, 노란색 음료를 각각 시켜 놓고 우리만의 두 번째 카페를 차렸다.
사실 마나가하에서 친구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보통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여행지에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마련인데, 찍은 사진은 대부분 남자친구에게 보내기 위한 인증샷 정도밖에는 없다.
I hope you get through the summer all right.
I know sunny weather depresses you,
Just be careful going out alone at night.
- 영화 <News From Home(집에서 온 소식)> 중
샹탈 아커만의 영화 ‘News From Home(집에서 온 소식)’에는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뉴욕이라는 도시의 풍경과, 그런 이방인에게 저 멀리 고향으로부터 온 어머니의 편지를 낭독하는 목소리가 동시에 흐른다. 그녀의 영화는 주로 대상과 거리를 두고 있는데, 얼핏 지루할 수 있는 장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영화의 말미에는 어느샌가 관찰하던 대상과 정이 들어버린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낯선 도시 뉴욕에서 마주한 행인들은 처음에는 차가워보이지만 점점 나 자신이 거리에 덩그러니 놓여진 카메라가 된 기분이 들면서 때때로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는 행인들과 눈이 마주치고,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그들의 일상을 궁금해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짐자무쉬의 초기작 <영원한 휴가>에서 오마주할 정도로 영화사에서 큰 의미가 있는 장면인데, 뉴욕을 떠나는 배에서 멀어지는 뉴욕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는 긴 시선은 마나가하 섬을 떠나며 보트 위에서 바라본 멀어지던 섬의 모습과 겹쳐지는 듯 했다. 들어갈 때의 섬과 나갈 때의 섬은 분명 달라 보였다. 열대의 만성 행복을 연극같다고 생각하던 나였는데 그 행복이 섬을 둘러싼 투명한 바다같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자 진심은 거리나 시간같은 물리적인 장벽따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인에게 제때 연락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었고 친구가 옆에서 외로움을 느낄까봐 눈치볼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처음 만난 섬에서, 잠깐 사이에 정이 들어버린 그 섬에서 그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버린 거다. 나는 마치 마나가하 섬이 어머니가 부친 편지에서처럼 나에게 안부를 묻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열대의 날씨가 너의 기분을 가라앉히더라도 좋은 시간 보내다 가기를 바란다고.
이튿날 공항까지 가는 길에는 크게 사고가 날 뻔했다. 택시 기사가 좁은 도로가에 움푹 패인 구덩이를 피하려고 급하게 핸들을 꺾었는데, 차체가 얼마나 크게 요동을 쳤는지 기사 본인도 놀라 가슴을 졸였을 정도였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건 불안이었다. 무사히 도착한 사이판 국제공항 곳곳에는 후덥지근한 공기와 이질적인 느낌으로 각종 크리스마스 장식이 놓여 있었다. 알록달록한 장식들을 보고 있자니 아이로 돌아간 듯 기분이 들떠서 또 한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번엔 설렘이었다. 거리는 언제부터 진심의 척도가 되었을까. 바다 건너 열대의 섬에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도 뉴욕에서 맞이하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와 다를 바 없는 설렘을 가져다주는데.
팬데믹으로 거리두기가 본격화 되고부터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일단 미뤄야 할 일이 되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일상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는데, 내가 하는 일은 팬데믹과는 상관 없이 진행되어야 하는 업종의 일이었고, 때문에 어차피 일이 바빠서 가까운 사람들을 만날 시간도 없었다.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고, 그러는 동안에 남자친구와는 이별을 했고, 일을 하면서 함께 고생하다보니 가까운 친구가 몇 늘었다. 거리와 상관 없이 전해질 진심은 전해졌고 매일 얼굴을 보려고 노력해도 전해지지 않는 진심은 전해지지 않았다. 우리 각자는 모두 외딴 섬이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바다를 얼마나 투명하게 가꾸느냐에 따라 우리 사이에는 거리가 중요할 수도 있고, 거리가 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나가하의 작은 돗자리 카페에서 친구와 나눈 대화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진심을 나누는 친한 친구 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