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생마르탱 운하와 보살핌의 끼쉬, 카페 르 비스트로

by 최의연

영화 <아멜리에>에서 주인공 아멜리에가 물수제비를 뜨던 생마르탱 운하를 따라 걷다 두 블럭 쯤 안쪽으로 들어오면 자끄 봉세르장이라는 이름의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그 언저리 대로변에 위치한 모퉁이 카페 르 비스트로는 나에게 보살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공간이 되겠다. 가는 길 중간에 통유리로 된 베이커리 리베르떼를 만날 수도 있는데, 잠시 한눈을 팔아도 괜찮은 경험일 것이다. 거기서 갓 구운 바게트 하나 뜯어먹으면 기가 막힌다. 겉은 파삭하고 속은 쫀득한데, 이게 바게트구나 싶다.


슬프게도 카페 르 비스트로에서 남겼던 사진은 지금 벽돌이 된 아이폰4S 속에 갇혀있다.(10년 된 아이폰4S의 비밀번호를 아직도 기억해내지 못해서 그 안에 담긴 채 잊혀진 파리의 기록들을 되찾지 못하는 중이다.) 거기에는 나를 살뜰히 보살펴주던 셰어하우스 룸메이트 언니의 배려가 담겨 있는 어느 저녁들의 기록이 담겨있다. 아멜리에를 떠올리며 함께 숟가락으로 깨트리던 크림브륄레도, 너무 맛있어서 갈 때마다 시켰던 끼쉬도.


657b1cf006ea0.jpg?imgSeq=10313 - 유일하게 남은 카페 르 비스트로에서의 사진. 다 먹은 끼쉬 접시다.


그렇다. 또 파리 얘기다. 자기연민의 늪에서 헤매고 있던 교환학생 시절의 나는 마치 내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듯이 우울을 씹었지만, 사실 내 주위에는 항상 위성처럼 친구들이 맴돌고 있었다. 예의상 모두 가명으로 대체하도록 하겠다. 베트남계 프랑스인 제니, 모로코인 야스민, 일본인 요시, 그리고 그만큼 가깝지는 않았지만 다정했던 친구들. 야스민과 함께 갔던 피라미드 역 근처의 모로코 음식점도 기억나고, 제니의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서 포장해주셨던 포와 베트남 떡도 떠오른다. 감기 몸살에 걸린 나를 위해 레몬티 맛집을 소개해줬던 요시는 동해 너머에서 잘 살고 있을까. 생각난다. 모로코 음식점에서 야스민은 나에게 모로코어 한 문장을 알려주기도 했다. 칸 시롭 아 타이. 나는 차를 마십니다. 아,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흐를 것만 같다. 사람 귀한 줄 몰랐던 어리석은 지난 날들이여. 그 친구들과는 연락이 끊긴지 오래다.


몇해 전 자칭 타칭 선무당이라는 지인의 지인에게 술자리에서 속성 사주풀이를 받아본 일이 있다. 놀랍게도 그녀가 대뜸 내게 한 말은 나는 인복이 있는 사주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냥 한 만큼 돌려받는 거라고. 솔직히 충격이었다. 내 삶이 이제껏 인복에 멱살 잡혀 온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주변 사람들의 보살핌이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렇다면 나는 대체 어떤 동력으로 살아온 것인지 의문이 생긴 것이다. 내가 스스로를 구했나? 아닐텐데. 타인의 보살핌을 빼고는 생각할 수 있는 이유가 없는데. 그렇다면 비법이 뭐였을까. 사람들이 나를 보살피게 만들 수 있었던 비법은. 마침 집 책장에 꽂혀있던 에세이에서 내가 구하던 답에 꼭 들어맞는 구절을 찾았다. 하필 제목도 <짝 없는 여자와 도시>다.


우정이라는 결속을 만들어내는 것은 오히려 우리 자신의 감정적 무능 - 공포, 분노, 치욕 - 을 인정하는 솔직함이다. 함께 있을 때 자신의 가장 깊숙한 부끄러움까지 터놓고 직시하는 일만큼 우리를 가까워지게 만들어주는 것도 없다.

…우리가 원하는 건 상대에게 알려졌다는 느낌이다, 결점까지도 전부. 그러니까 결점은 많을수록 좋다. 내가 털어놓는 것이 곧 나 자신이라는 생각, 그것은 우리 문화의 대단한 착각이다.

- <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답은 솔직함이었다. 보살핌에는 솔직함이 선행되어야 한다. 보살핌은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베풀어지는 법이니까. 셰어하우스의 살롱에서 오열하며 아빠와 통화하는 나를 목격했던 룸메이트 언니는 어느 날 저녁, 나를 데리고 카페 르 비스트로로 향했다. 파리의 카페는 비스트로와 식당, 그리고 때로는 담배 가게와도 명확히 구분지을 수 없는 어떤 커다란 카테고리를 포괄한다. 우리가 향했던 곳은 식사와 주류도 함께 제공하는 비스트로 겸 카페였는데, 처음 방문한 날에는 와인 한 잔과 크림브륄레를 시켰던 기억이 난다. 언니는 내 기분을 돋워주려고 내게 작은 티스푼을 쥐어주며 아멜리에처럼 표면을 두드려 깨 보라고 시켰다. 탁탁, 때리면 어느 순간 파삭, 하고 부서지며 속에 품은 부드러운 크림을 드러내던 디저트. 마찬가지로 스스로 허문 벽 덕분에 내 속내가 드러났고, 그래서 언니가 나를 속 시원히 보살필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솔직해지는 일은 의외로 어렵다. 슬프면 슬프다, 화나면 화난다 말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운가 싶겠지만, 우리와 솔직함을 갈라놓는 것은 언제나 자존심이라는 공공의 적이다.


<아멜리에>에는 주인공과 같은 아파트의 1층에 사는 유리 인간 레몽이 등장한다. 레몽은 뼈가 으스러질 것처럼 약해 집에 갇혀 지낸다는 소문에는 아랑곳 않는 듯한 모습으로 르누아르의 그림에 배경처럼 등장하는 한 소녀를 집요하게 관찰하고 그리고 또 그린다. 그가 소녀를 관찰하는 이유는 소녀의 표정에서 도무지 속내를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레몽이 원하는 것은 소녀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이다. 정작 솔직하지 못한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웃들을 피해 칩거하는 레몽 자신처럼 보이는데도 말이다. 유리 인간이라는 별명은 뼈가 아니라 부서질 듯한 자존심을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매년 한폭씩 추가되는 같은 그림들은 완성된 개개의 집합이라기보다는 일련의 과정처럼 보인다. 영화의 막바지, 풍차 카페 신사 손님의 대사는 솔직함을 탐구하는 유리 인간의 여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실패는 삶에 초안을 그리는 일이에요. 삶은 상연되지 않을 연극의 긴 리허설일 뿐이고요.”

- 영화 <아멜리에> 중


소녀의 표정을 관찰하는 레몽의 시선은 보살핌이고, 그런 소녀의 진심을 꿰뚫는 아멜리에의 여정은 솔직함을 탐구하는 긴 리허설이다. 마침내 아멜리에가 소녀의 진심을 읽었을 때, 그 진심은 곧 아멜리에의 진심이기도 하다. 이미 타인을 보살피는 일에 익숙했던 아멜리에에게는 자존심이라는 벽이 존재하지 않았고, 그래서 아멜리에는 비로소 자신을 보살피는 길로 들어설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사랑을 찾아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레몽의 보살핌에 힘입어.


어제는 밤늦게까지 친구와 통화하며 삶은 끝나지 않을 과정의 연속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건 어떤 날에는 잔인한 말로 들리면서 또 어떤 날에는 위로의 말로 들리기도 한다. 나는 어쨌든 우리가 과정 속에서 완벽하지 않은 채로도 서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게 축복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필요할 때 보살핌을 건넬 수 있다는 것까지도. 다만 마음에 걸리는 점은 이런 거였다. 보살핌이라는 행위조차도 아름답기만 한 여정은 아니지 않을까? 모든 감정이 그렇듯 노력이 필요할 테니. 진정으로 상대의 안위를 빌며 보살펴주기 위해서는 결국 어느 한쪽이 희생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다 보면 벽에 부딪히는 순간은 꼭 온다. 내가 그렇게 나를 보살펴주던 파리의 친구들과 결국 멀어진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들의 희생이 미안했거나, 나의 노력할 수 없음을 견딜 수 없었거나. 그렇다면 룸메이트들의 보살핌은 기꺼이 받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나는 비비언 고닉에게서 또 한 번 실마리를 얻었다.


우정에는 두 가지 범주가 있다. 하나는 서로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관계고, 다른 하나는 활기가 있어야만 같이 있을 수 있는 관계다. 전자는 함께할 자리를 미리 마련해두지만, 후자는 일정 중에 빈 자릴 찾는다.

…거리는 누군가의 징역에서 벗어나 또 다른 누군가의 약속으로 탈주하려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이 도시가 그 여파로 어지럽게 동요하는 듯이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결국 관계에서 활기의 열쇠는 솔직함이다. 나는 몇 번인가 파리의 친구들에게 내 속내를 털어놓으려 해본 적이 있었지만 프랑스에서 나고 자랐거나 언어가 통하는 친구들은 나의 부적응을 이해할 수 없었고, 가까우면서도 지나치게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던 일본인 친구도 나의 고독에 완전히 공감하지 못했다. 나는 그 친구들의 맑은 눈동자 앞에서 차마 자존심을 내려놓고 속을 드러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사이의 벽은 채 허물어지지 못했던 거다. 나의 크림브륄레를 깨트리기에 파리 친구들의 티스푼은 너무 예쁘고 말랑하기만 했다.


카페 르 비스트로에는 그 후로도 두어번을 더 갔는데, 첫 방문을 제외하고는 항상 끼쉬 한 접시를 시켜서 배불리 먹었던 기억이 난다. 베이컨과 브로콜리, 그리고 여타 재료들이 포슬한 계란과 치즈 반죽 사이에 질겅질겅 씹히며 허전한 속을 채워줬다. 잘린 단면 사이로 솔직하게 드러난 재료들을 보며, 적어도 그걸 먹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은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최근에 10년지기 친구가 무기력증을 호소하며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다고, 그래서 운동도 산책도 나갈 수가 없다고 했다. 한번도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던 친구다. 매일 아침 가까운 천변을 한시간 씩 산책하는 게 어떻겠냐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그리고 나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손에 들고 친구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오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그깟 무기력 쯤 잊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속이 훤히 드러나니 나도 속 시원하게 보살펴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를 기꺼이 데리고 카페 르 비스트로로 향했던 언니의 마음이 시간을 뛰어넘어 번져오는 순간이었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카페 르 비스트로의 정확한 위치를 기억해내기 위해 구글 로드뷰로 시간여행을 해봤다. 다행인 점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파리라서 카페 르 비스트로도, 리베르떼도, 여타 다른 가게들도 대부분 그 자리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가감없이 솔직했던 지난날의 흔적이 화석처럼 영영 박제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흔적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건 이제 나에게 별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아름다운 초안이다. 구글 로드뷰라는 모양새가 좀 아쉽긴 해도, 어쨌든 레몽의 클로젯 안에 쌓여있던 20년간의 캔버스처럼 나에게도 매년 한 장씩 기억의 화폭이 쌓여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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