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들어간 티카페에서 루이보스 밀크티를 마시기로 했다. 그때 나는 쌀쌀해진 11월의 가을 낙엽을 밟으며 갈색 벽돌 건물들이 즐비한 브릭레인 거리를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영국 런던이었다. 주문한 밀크티는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함께 시킨 레드벨벳 케이크와 잘 어울렸고, 며칠 뒤 공항으로 향하는 길에 내 캐리어 안에는 포트넘 앤 메이슨의 루이보스 티백이 한가득 든 틴케이스가 달그락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 홀로 여행에는 나름의 루틴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지역의 빈티지 매장을 둘러보는 일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빈티지 의류점들을 배회하는 중이었다. 영국 드라마 ‘스킨스’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펑키한 차림의 앳된 소녀는 남자친구에게 연청색의 트러커 재킷을 입혀보며 조잘대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틈틈이 지켜보다 품이 커도 지나치게 큰 헤비울 카디건 하나를 두고 열 번도 넘게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소매를 두 번이나 접어 올려야 간신히 손가락이 보이던 그 카디건은 결국 옷장 붙박이 신세를 면치 못할 게 뻔하다는 결론과 함께 제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숍을 나선 뒤 황망히 거리를 배회하다 덮쳐오는 추위를 피해 코너에 위치한 작은 카페로 몸을 숨겼다.
당시 런던에는 내가 좋아했던 오빠가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머무르는 중이었다. 나는 런던에 체류하던 며칠 동안 한 번도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SNS에도 나의 여행지를 암시하는 태그 하나조차 걸지 않았다. 행여나 자기를 보러 온 거라고 착각할까 봐 괜히 염려한 건지도 모른다. 여자친구가 있는 줄도 모르고 호감을 드러냈다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머쓱해진 내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어서였는지도. 어쨌든 런던은 이미 다녀온 경험이 있었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 꼭 다시 들러보고 싶었던 도시였다. 런던을 다시 방문하기로 한 건 순전히 독립적인 내 선택이었다는 말이다. 구구절절 핑계가 길어진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대뜸 연락해서 운명을 시험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충동이 결여된 내 평정심은 문학적인 결과를 낳지 못했다. 다만 나는 사랑에 있어서 내 감정이 소중한 만큼 남의 감정도 지켜줘야 한다는 철칙을 어기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이와 같은 예외를 제외하고는, 단언컨대 20대의 나는 사랑 앞에서 자존심 따위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경주마 같은 인간이었다. 마음에 들면 무조건 연락했고, 얼쩡거렸고, 귀찮게 했다. 주변 사람들이 먼저 눈치를 채고 뒷말을 해도 멈추지 않았다. 사랑에 있어 솔직한 건 죄가 아니라고 착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타인의 마음이라는 건 내 자존심을 버린다고 해서 쉽게 쟁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마침내 또 다른 사랑을 쟁취해 내는 데 성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건 그래서였을 것이다. 약간의 아쉬움도 감수해야 하고, 기다림이나 애매모호함을 즐길 줄도 알아야 관계의 호흡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건 나중 일이었다. 끝만큼이나 시작도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어쩌면 나는 나의 시선에 매몰된 채 상대방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개의치 않았는지도 모른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나는 그 오빠의 시선이 다른 누군가를 위해 아껴지고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지 않았을까.
김금희 작가의 단편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는 차가운 마음으로 한낮의 종로를 배회하던 필용이 옛사랑 양희의 기억과 갑작스러운 사고처럼 맞닥뜨린다. 그 옛날 양희가 썼던 희곡의 제목을 쫓아 마침내 진짜 그녀가 실연 중인 연극 무대를 찾아낸 필용은 그날부터 매일 양희를 보러 한낮의 산책을 나선다. 그렇게 필용에게서 양희로만 향하는 시선은 한동안 계속된다.
필용이 양희를 볼 수는 있어도 양희가 필용을 봐서는 안 되었다. 시선은 일방이어야 하지 교환되면 안 되었다. 교환되면 무언가가 남으니까 남은 자리에는 뭔가가 생기니까, 자라니까, 있는 것은 있는 것대로 무게감을 지니고 실제가 되니까.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십수 년 전 양희는 종로의 맥도널드에서 필용에게 고백한 적이 있다. 나 당신을 사랑하는 것 같다고, 오늘은. 필용은 집요하게 묻는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사랑하냐고, 오늘도. 그러나 필용이 원하는 것은 양희의 진짜 마음이 아니라 양희의 입에서 나온 대답뿐이다. 필용은 양희의 시선과 대화하지 않는다. 필용이 사랑을 확신하는 증거는 양희 입에서 나온 말 몇 마디가 전부다. 그리고 필용 또한 느끼기 시작하던 양희를 사랑하는 마음은, 마찬가지로 양희 입에서 나온 ‘사랑이 없어져버렸다’는 말과 함께 끝나버린다.
따뜻한 우유를 부으면 맑은 갈색을 띤 루이보스 티의 표면이 구름 번지듯 뿌옇게 흐려진다. 나는 이제 내 얼굴이 결코 비치지 않을 그 연갈색 찻잔 속을 들여다보며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사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 일이 불편했다. 거울에 비친 나는 타인의 시선으로 보는 나와 같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 사이에 있는 나를 거울로 비추어보는 행위가 어색하고 부끄러운 것이다. 이따금씩 지하철 역사 안에 위치한 전신거울을 무심코 들여다보면 인파 속 나는 무대에 서 있는 나와 다를 바 없다고 느낀다. 그 커다란 거울 안에는 심지어 나 말고도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비추어지고 있으니. 행여 그들 중 누구 하나와 거울을 통해 눈이라도 마주치면 나는 황급히 시선을 피해버린다. 나는 그 거울을 지나치며 생각한다. 타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그래서 나는 양희의 시선은 읽지 않고 입에서 나온 말들에만 모든 마음을 집중하는 필용을 보며 과거의 나를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만이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거다. 양희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을 들여다보며 그 사랑을 확인하려는 것보다야 이해하기 편한 방법이니까.
지난 연애는 가면을 쓴 채 임하는 소꿉놀이와도 같았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서로가 서로의 시선을 읽지 못해 마음은 자꾸만 어긋났다. 나는 상대방의 마음보다 입에서 나온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의지해 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말과 마음의 속도는 달라서 나는 결국 준비되지 않은 채로 끝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전날에도, 그 전전날에도 말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방의 마음은 오래전부터 달라지고 있었을 것이다. 짧은 연애놀이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어찌 되었든 나는 연애가 지속되는 동안 가면을 닮아가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 다행인 일이었다.
‘너무 한낮의 연애’는 같은 작가의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에서 마치 연극 무대의 커튼콜처럼 이어진다. 나는 그전에 ‘너무 한낮’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왜 한낮이었을까, 게다가 왜 하필 ‘너무’ 한낮이었을까. 혹시 ‘너무한’ 낮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다행히 산문 속 작가의 문장 몇 줄로 오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얼어버리면 한낮에도 우리는 아주 추운 마음으로 걸어 다닐 수밖에 없는데, 나는 그런 한낮을 원하지 않는다.
… 남자는 어딘가에 두고 온 물건 따위가 생각났을까. 아니면 이번 정류장에 꼭 내려야 만날 수 있는 어떤 얼굴이 생각났나. 그런 거였으면 좋겠지만 실제로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란 그런 상상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아주 날카롭고 차가운 것들, 이기기 힘든 것들, 지출해야 하거나 버텨야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얼어버리지 않았으니까 여전히 이런 한낮을 맞을 수 있다.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중 사랑하죠, 오늘도, 김금희
브릭레인에서도 연극은 펼쳐지고 있었다. 프리티 쿠파를 운영하는 노부부는 영국인이 아니었고,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보다 영국적인 꽃무늬 찻잔 세트에 영국의 대표 차 브랜드 포트넘 앤 메이슨의 루이보스 티를 우려서 내어 주었다. 그네들이 준비해 준 차림을 보고 내가 서툰 영어로 “pretty!”라고 감탄하자 그들도 마찬가지로 서툰 영어로 화답했다. “You’re pretty, too!”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주인과 눈을 맞췄다. 너와 나의 시선이 교환되어 낯선 우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연극이 아닌 실제였다. 인상을 찌푸리며 브릭레인 거리를 걷던 나를 보며 우연히 마주치고픈 어떤 얼굴을 떠올리고 있으리라 상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나치는 이의 생각 따위를 상상하는 사람은 예전에 멸종해 버렸는지도 모르고. 런던은 대도시였고, 거리는 분주한 인파로 가득했다. 대도시에서는 행인 하나하나의 사연을 상상하기란 힘든 일이다. 나는 요즘도 지하철 역에서 환승하거나, 인파를 뚫고 출구로 향할 때에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사물로 느낀다. 그들은 내 앞길을 가로막는 귀찮은 장애물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더 신기한 일이다. 고국의 행인보다도 낯선 존재였던 런던 티카페의 주인 부부가 나에게 한낮으로 남았으니. 우리는 아직 얼어버리지 않은 모양이다.
세상은 형편없이 나빠지는데 좋은 사람들, 자꾸 보고 싶은 얼굴들이 많아지는 것은 기쁘면서도 슬퍼지는 일이다. 그런 사람들을 사랑했다가 괜히 마음으로 거리를 두었다가 여전한 호의를 숨기지 못해 돌아가는 것은 나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사랑하죠, 오늘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은 채 끝나지도 않았지,라고.
-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중 사랑하죠, 오늘도, 김금희
12월의 첫날과 함께 겨울이 왔다. 추운 날 길을 걷다 보면 하루 끝에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누군가가 있었으면 싶을 때가 있다. 오늘 나는 인파를 보며 생각했다. 이 모든 이들이 누군가가 될 가능성이 있는 거라면 나는 어김없이 닥칠 앞으로의 오늘을 기꺼이 겪어내겠다고. 우리가 아직 얼어버리지 않았기를 바란다고. 구글에 검색해 보니 프리티 쿠파는 폐업한 지 오래인 듯했다. 리뷰는 114개에 평점은 평균 3.6점. 친절하고 영어가 서툰 부부가 운영했지만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박한 평가가 주로 많다. 대부분의 리뷰는 가격에 관한 것이라 형편없이 나쁘긴 하지만 몇몇 이들에게는 프리티 쿠파의 노부부가 보고 싶은 얼굴로 남아 있는 듯하다. 우리는 지난 연애에도 이처럼 형편없는 별점을 부여할 때가 많지만 결국은 그런 거다. 한낮을 한낮답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종종 우리를 얼어버리지 않게 했던 지나간 오늘의 마음들인 것이다. 필용은 끝나지 않은 오늘을 결국 어느 한낮에 거리에서 마주치지 않았던가. 그 끝나버린 줄 알았던 오늘이 얼어있던 필용을 다시 움직이게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주고받는 시선들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 자리에 남는 무언가를 핫팩처럼 가슴에 품고 살자는 말이다. 이루어졌든 이루어지지 않았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매일매일 누군가에게, 그게 누구든, 지금은 사랑하죠, 오늘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우리 마음은 얼어버리지 않을 테니. 그 얼어버리지 않은 마음으로 살아가다 보면 누군가와 시선이 온전히 마주치는 순간을 주저하지 않고 제대로 누릴 수 있을 테니.
루이보스 티백이 들어있던 포트넘 앤 메이슨의 틴케이스는 꽤 오래도록 내 책상 위를 지키고 있다가 지난여름 세월의 녹물을 끌어안은 채 재활용 봉투 속으로 떠나갔다. 아쉽지만 괜찮다. 나는 이제 꼭 포트넘 앤 메이슨이 아니어도 루이보스 티를 잘 마실 수 있다. 어떤 루이보스 티라도 사랑할 자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