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에 커피가 기분 좋은 여가로 자리매김하게 된 계기는 확실하다. 2016년 11월, 나는 6개월 남짓 다녔던 첫 직장을 관두고 핀란드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를 핀란드로 결정하게 된 것은 아마도 그로부터 1년 전 아이슬란드 여행을 다녀온 뒤로 추운 나라에 대한 환상이 커져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핀란드라고 하면 으레 영화 카모메 식당을 떠올리고들 하던 때였지만, 나에게 핀란드는 그보다는 하마를 닮은 트롤, 무민에 대한 인상이 더 강했다. 그러니까 실상 여행의 목적은 탐페레 시에 위치한 무민 박물관에 방문하는 일이었다. 공항에 도착한 뒤 곧장 시내로 이동해 탐페레행 기차에 탑승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오후였고 알코올중독자를 조심해야 한다는 어느 블로거의 당부를 모범생처럼 지키며 나는 다음 날 아보카도 토스트가 맛있다는 카페에 방문할 일을 고대하며 잠들었다. 에어비앤비로 만나게 된 서글한 인상의 모녀 호스트가 마련해 준 이부자리는 여독을 풀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해가 밝자마자 옆방에서 자고 있던 모녀가 눈을 뜨기도 전에 나는 한국에서 챙겨 온 오트밀색 코트를 곱게 차려입고 시내의 카페로 향했다. 나보다도 더 이른 아침을 이미 맞이하고 있던 카페 안은 커피메이커의 훈훈한 열기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핀란드의 카페와 식당에서는 흔히 뷔페식으로 진열된 커피메이커를 볼 수 있다. 값을 지불한 뒤 원하는 만큼 커피를 따라 마시고 내열 유리로 된 커피 팟을 제자리에 두기만 하면 된다. 에스프레소 머신도, 멋진 라떼아트를 선보이는 바리스타도 보이지 않지만 일상에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는 커피의 따스한 기운을 느끼는 순간 이보다 커피를 사랑하는 나라도 없겠구나, 하는 확신이 온몸을 휘감는다. 브런치나 식사를 함께 제공하는 곳은 대부분 그런 식이지만 카페가 메인인 경우에는 서버가 직접 커피를 전달하는 곳도 많다. 카페 퓌니키가 그랬다. 일주일 남짓 탐페레와 헬싱키에 머무르며 크고 작은 카페들을 많이 들러봤지만 그중에서도 카페 퓌니키는 잊히지 않는다.
핀란드 제2의 도시 탐페레에는 퓌니키 전망대라는 관광명소가 있다. 버스를 타고 무민 박물관이 있는 정류장 근처에서 내려 낙엽이 만연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신촌동 연대 후문 뒤쪽 산길을 닮은 익숙한 풍경이 이어진다. 길의 끝에는 마치 내륙의 등대처럼 전망대가 아담하게 솟아 있다. 전망대 1층에는 관광객, 그리고 산책 나온 동네 사람들을 위한 카페가 마련되어 있는데, 시나몬 가루가 묻은 도넛은 카페의 명물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블랙커피를 함께 곁들여 먹으면 쌀쌀한 숲길을 걸어오느라 식어버린 몸이 금방 훈훈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핀란드의 대표적인 디저트로 시나몬롤을 떠올리지만, 내가 경험한 핀란드의 디저트는 어릴 적 엄마가 만들어주던 꾸덕한 믹스 도넛이 생각나게 하는, 투박한 모양의 갈색 도넛이다. 한국에 돌아온 뒤 몇 년이 지나도록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유튜브로 레시피를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물론 품이 많이 든다는 핑계로 만들지는 않았다.
언제부턴가 핀란드라고 하면 우울증 환자가 많은 나라, 자살률이 높은 나라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무민 시리즈조차도 비극 속에서 태어난 동화라는 사실로 미루어보면 그 나라의 정서라는 게 본디 무거운 성질일 수도 있겠구나 싶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에 둘러싸인 핀란드를 살아내고 있던 작가 토베 얀손은 종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일종의 현실을 품은 상상의 세계를 만들었다. 종전 후에도 개인으로써의 토베 얀손에게는 우울감과 고립감이 찾아들었다. 오랜 작업 중에 슬럼프에 빠졌을 때나 동성 연인과의 관계를 인정받지 못할 때였다. 활자와 그림으로 유토피아를 만들어낸들 현실은 그대로 현실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현실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부러 시간과 돈을 들여 행복을 좇아 여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외려 아름다운 무민밸리의 그늘을 본 순간 핀란드라는 나라에 더 큰 호기심을 품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그늘은 자석처럼 나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가까웠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멀어졌다. 아니, 오히려 먼바다로 밀려나기를 택한 쪽은 나였다. 20대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던 나는 관계에 서툴렀고, 완벽하지 못할 거라면 무로 돌아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다 자라지 못한 어른이었다. 커피를 마실 줄 알면 무얼 하나. 프랜차이즈의 싸구려 커피에는 헤이즐넛 시럽을 꼭 넣어야 했고, 디저트를 시키지 않으면 커피를 마시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어설픈 흉내쟁이였을 뿐이다. 커피를 마시는 일은 나에게 여가가 될 수 없었다. 어른이니까 마시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쓰면 때때로 뱉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몰랐다. 그래서 견디거나 완전히 끊는 선택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쓴 커피를 삼킬 때처럼 관계 속에서도 내가 완벽하지 못함이 드러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커피는 견뎠지만 관계는 끊었다. 정작 문제는 관계도 사람도 아니었다. 때로는 초라함을 견디기도 해야 하는 사회초년생이라는 자리가 서글펐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있음에도 실체 없는 부정적인 시선들에 주눅 들어 2순위의 선택지를 집어드는 나의 주저함도 못마땅했다. 상상 속의 나는 완성형인데, 마주 앉은 사람들 눈동자에 비친 나는 형편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어느덧 여행은 지난날을, 지난 나를 버리기 위한 도피 수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주변인들이 있었기에 이만큼이나 자랄 수 있었다는 것은 모르고. 그늘 속에서는 빛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걸까. 나는 그토록 도망치고 싶던 관계에서 도망칠 수 없었고, 도망쳐서도 안 되는 거였다.
토베 얀손의 단편소설 ‘두 손 가벼운 여행’은 무거운 짐으로부터, 일상으로부터, 관계로부터 벗어나 여행을 떠나는 이의 설렘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잠깐의 자유는 곧 다시 파도처럼 돌아오는 사람들에 의해 물거품이 된다.
나는 앉아서 ‘여행의 개념’, 그러니까 떠나온 것에 매이지도 책임도 지지 않으며 앞으로 올 일을 준비할 수도 미리 알 수도 없는 여정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커다란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 여러분은 이제 내가 여행을 떠난 이유를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내 피로, 언제나 동정을 느끼는 경향 때문에 생기는 피로와 혐오의 깊이를 짐작하실 수 있는지?
… 가끔 인간이 가진 걱정들은 모두 비슷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 실제로 눈앞에 대재앙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내가 관찰한 바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불행한 일들이 아주 단조롭게 계속 반복되는 것 같다. … 쓸 만한 대답이 없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 그냥 들을 뿐이다. 게다가 사실은 아무도 가능한 답에 관심 없는 것처럼 보이고, 그저 말을 계속할 뿐이며, 또 와서 같은 일에 대해 다시 말하고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 <두 손 가벼운 여행>, 토베 얀손
답 없는 질문들로 가득한 관계라는 그물은 지루하다. 당장 손에 잡히는 무언가가 필요한 이들에게 그물을 푸는 과정은 귀찮고 쓸데없는 시간낭비고 불필요하게 거동을 방해하는 커다란 여행용 짐 같은 것이다. 그물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은 여행을 떠나 본 뒤에야 깨닫는다.
헬싱키로 숙소를 옮기고 나서 유명하다는 부두의 오두막 카페, 레가타에 들러보았다. 시나몬롤을 꼭 먹어보아야 하는 곳이라고 했다. 내부 조명은 어두웠고 해가 저문 밤이었기 때문에 창가에 앉아서도 밤바다 풍경은 잘 보이지 않았다. 검은 눈동자의 친절한 직원도, 따끈따끈한 시나몬롤도 맛이 좋았지만 왜일까, 그곳에서 마셨던 커피 한 잔은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무언가에 쫓기듯 카페를 나와 트램을 타러 걸어가는데, 중년의 프랑스인 부부의 대화가 들려왔다. 일본인일까? 나도 모르지. 나를 두고 하는 게 분명한 말. 나는 부부와 독립적인 존재였지만 그 독립성, 아니 소외감이 쓰라렸다. 좀 전까지도 낭만이라고 생각했던 밤의 찬 공기가 순간 매서운 칼바람처럼 나를 스쳤다. 밤의 그늘이 나를 감쌌고 예고 없는 고독에 풍덩 빠졌다. 대화할 이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숙소 근처의 마트에 들러 충동적으로 맥주 두 캔을 집었다. 볼에 여드름이 난 무뚝뚝한 인상의 캐셔 청년은 더듬더듬 “Kiitos(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는 나에게 한순간 다정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해가 지면 거리를 돌아다니는 알코올중독자를 조심해야 하는 도시였다. 하지만 나는 무섭지 않았다. 그네들이 어떤 마음으로 고독을 한입 가득 머금고 삼키려 하는지, 때때로 찾아오는 칼바람에 익숙해질 수 있는 어른이라는 게 진정 있긴 한 건지. 혹시라도 마주친다면 나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따뜻하게 다독여주고 싶을 뿐이었다.
따지고 보면 핀란드의 커피는 이렇다 할 특징이 없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와 곁들여 먹는 시나몬롤이라던가, 도넛 덕분일 것이다. 시럽과 케이크를 먹으며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견뎌냈던 나는 시나몬롤과 도넛을 먹으면서는 저절로 커피 한 잔을 몽땅 비웠다. 식사를 하러 들어간 브런치 카페에서는 커피 팟에 담긴 커피를 두어 번씩이나 리필해 마시기도 했다. 차갑고 어두운 나라. 우울한 나라. 그러나 그곳에는 무민밸리도 있고 산타와 요정들이 사는 마을도 있다. 그늘 속에서는 은밀하고 멋진 대화들이 탄생하는 법이다. 그래서 어느 여행지보다도 마음이 따뜻했다. 누구나 눈처럼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나를 위해 길을 알려주거나, 계산을 해 주는 이들의 눈을 잘 들여다보면 다정한 빛이 내 얼굴을 밝히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잠깐이나마 엮이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자발적으로 그물에 걸려 해안가에 다시 밀려오게 된 것은 그 후로도 한참이나 뒤의 일이지만 커피를 여가로 즐기게 된 것도, 번거로운 그물 풀기의 즐거움을 처음 맛본 것도 그때부터일 것이다. 여행의 기억을 시럽처럼 품은 커피. 핀란드의 커피는 나에게 그랬다. 이다음에는 누군가와 함께 와서 언 몸을 녹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카페 퓌니키의 명물 도넛, 그 가운데 뻥 뚫린 구멍은 곁에 있는 사람으로 채우라고 비워 놓은 자리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