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펭귄 Oct 30. 2022

불안의 시작: 케빈에 대하여

특성화고 영상과 선생님과 학생의 방과 후 수업

현우: 쌤, ‘케빈에 대하여’는 ‘돼지의 왕’보다 더 불쾌하지 않나요?

소현: 불쾌한 건 맞지. 근데 결이 좀 다르잖아. 어떤 점에서 그렇게 느꼈어?

현우: 시각적인 면에서요.

소현: 구체적으로 얘기해줄래?

현우: 흰색에 빨간색을 끼얹는 연출이 많이 불쾌했어요. 어떻게 보면 순수함이 피로 물드는 거니까요. 아무리 케빈을 순수한 어린아이로 만들려고 해도 안 되는 것처럼, 에바가 계속 빨간 페인트를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걸 그렇게 시각적으로 표현한 거죠.

소현: 나도 비슷하게 느꼈어. 그럼 주인공 에바가 느끼는 주된 감정이 뭐라고 생각해?

현우: 고통이죠.

소현: 맞지. 또 무력감도 있을 테고. 영화 전반에 걸쳐 우리가 에바의 삶을 들여다봤을 때 그건 분명 고통일 거라는 점에 동의해. 근데 감독이 시각적인 연출을 통해서 전하고 싶었던 감정은 필히 불안일 거라고 생각해. 끊임없이 불안감이 에워싸는 느낌의 영상미를 보여줬던 것 같아.

현우: 네. 그런 거 같네요. 특히나 에바가 사건 이후에 편집증에 걸린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면서 다니는 걸 보면 불안감이 전해져요.

소현: 우리가 지난번에 인간의 불완전함이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는 영화를 보고 오자고 해서 이 영화를 보게 됐잖아. 그래서 나는 그 불안감에 중점을 두고 영화를 다시 봤어.

현우: 그럼 영화가 불안감을 통해 뭘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데요?

소현: 케빈이 엄마 에바의 불안감 덩어리 그 자체가 아닐까, 라고 생각했어.

현우: 왜요?

소현: 사실 처음에는 인간이 태초부터 악하냐는 너의 질문에, 단순하게 케빈이라는 존재가 태어나면서부터 에바의 삶이 무너졌다는 게 떠올라서 이 영화를 보자고 했던 거거든. 그런데 불완전에 대해 생각하면서 영화를 다시 보니까 케빈이 에바의 불안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왜냐하면 불안이란 건 온전한 나를 잃게 하는 감정이니까.

현우: 온전한 나요? 에바가 케빈을 낳고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건가요?

소현: 맞아요.

현우: 에바가 잃어버린 자신이 뭔데요?

소현: 자유로운 여행가였던 자신이지.

현우: 아, 그럼 잃어버린 게 맞는 거 같네요.

소현: 그치. 갑작스럽게 의도하지 않았던 생명을 잉태하기 전까지 에바는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잖아. 근데 케빈을 낳은 뒤부터 삶이 완전히 달라졌어.

현우: 네, 근데 이게 불안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소현: 불안은 온전한 자신을 잃게 하는 감정이라고 했잖아. 결국 불안이란 건 내가 뭔가 하고 싶은 것 혹은 해야 하는 게 있는데, 그걸 하지 않거나 못 하고 있을 때 발현되는 감정이야. 혹은 뭘 해야 할지 모를 때도 발현되지.

현우: 네. 그 감정은 이해가 되는데, 왜 케빈이 에바의 불안 덩어리라는 거죠?

소현: 우선, 내가 진짜 나라고 느끼는 때는 자유롭다고 느낄 때란 말이야. 반대로 뭔가에 얽매이면 자유롭지 못하고, 나답지 못하다고 느껴.

현우: 그렇죠.

소현: 그리고 그때 달려오는 감정이 바로 불안이고. 에바를 자유롭지 않게 한 존재가 케빈이었잖아. 하지만 케빈은 에바 자신에게서 나온 존재야. 그리고 케빈이라는 존재에 대한 책임이 에바에게 있어.

현우: 네. 에바가 케빈의 엄마니까요.

소현: 그럼 케빈을 불안이라는 감정에 빗대보자. 불안은 결코 떼어놓고 싶다고 떼어놓을 수가 없잖아. 케빈도 그렇지.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데,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고 마냥 사랑할 수도 없는 거지. 그래서 케빈을 에바가 느끼는 불안 덩어리라고 표현한 거야.

현우: 결국에는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떼어놓을 수 없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사이코적인 케빈으로 빗댄 거네요.

소현: 네. 전 그렇게 본 거죠.

현우: 그러면 현실에서 불안이라는 것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영화의 엔딩에서 에바가 아들 케빈을 끌어안은 것도 그런 걸 비유한 것 같네요.

소현: 이제 하나를 알려주면 두 개 정돈 아는구나.

현우: 세 개로 해주시죠….

소현: 두 개가 적당한 거 같아.

현우: 넵.

소현: 세수를 하는 에바의 얼굴이 케빈 얼굴로 교차편집되는 장면들도 그런 걸 빗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

현우: 네. 선생님, 그러면 선생님은 불안을 느끼세요?

소현: 당연하지. 사람인데 나도 불안을 느끼지.

현우: 어떤 때요? 

소현: 내가 뭔가를 제대로 못 하고 있을 때겠지.

현우: 이렇게 완벽하신 선생님이 못 하시는 게 있나요?

소현: 응. 이렇게 네가 비꼴 때마다 쥐어박고 싶은 감정을 억누르는 걸 잘 못 하겠어.

현우: 장난이에요~! 뭘 잘 못 하시는데요?

소현: 노력이지.

현우: 뭐에 대한 노력이요?

소현: 나한테 있어서 내가 진짜 나라고 느끼는 때는 창작을 하는 때거든. 내가 원하는 걸 써낼 때 희열을 느끼고 살아 있는 것 같아. 근데 나의 고질적 문제는, 내가 꼭 해야만 하는 게 아닌 이상 노력해서 창작하지 않는다는 점이야. 그 문제를 느낄 때마다 불안해지지.

현우: 선생님의 삶을 써 내려가지 않는 거네요.

소현: 네. 거기서 불안이 느껴지는 거죠.

현우: 그럼 궁금한 게 생겼어요.

소현: 뭔데요?

현우: 그러면 그 불안이 느껴지지 않게 실천을 하시나요?

소현: 음… 그나마 그 불안을 덜 느낄 수 있는 이유가 수업을 하기 때문이야. 항상 너희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쓰면, 내가 그 이야기를 더 정교하게 만드는 아이디어를 낼 때마다 희열을 느끼거든.

현우: 근데 그건 선생님의 글이 아니잖아요.

소현: 그래. 그러니까 불안을 느끼지. 근본적으로 내 이야기가 아니니까 실천을 한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

현우: 그래도 언제든 실천할 수 있잖아요. 하면 되죠.

소현: 네, 하면 되죠.

현우: 그럼 시나리오 쓰시면 제가 조감독 할게요.

소현: 좋죠~!

현우: 영광이시죠?

소현: 그래. 너도 불안을 느끼는 때가 있니?

현우: 저도 불안을 느낄 때가 있죠.

소현: 언젠데?

현우: 선생님은 시간이 의미 없이 사라졌다고 느낀 적 있으세요?

소현: 많지.

현우: 저는 그걸 인지할 때마다 너무 불안해요. 제가 너무 의미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소현: 그래서 넌 지금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잖아.

현우: 하지만 이미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제가 방황하면서 공백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더 불안해하는 거 같아요. 점프해버린 2년을 채우기 위해서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시간을 제 걸로 소비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불안해져요. 자는 게 아까울 정도예요.

소현: 하루에 몇 시간 자는데?

현우: 4시간이요.

소현: 깨어 있는 동안 계속 실천하고 있는 거야?

현우: 아니요. 저도 사람인데 쉬기도 하죠. 근데 남들이 노력해온 걸 따라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쉬는 게 불안해지죠.

소현: 역시 불안은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게 맞네. 지금 네 얘기를 들어보니까 불안이라는 큰 범주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포함되는 거 같아.

현우: 그쵸. 그러면 인간은 불안을 떼어놓을 수 없잖아요. 항상 불안, 두려움이 함께 하는데 그 감정을 지니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 있을까요? 저도 지금은 이렇게 열심히 하지만, 언젠가 제 자신을 잃을 때가 있을 텐데 불안과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저를 지킬 방법이 있을까요?

소현: 그 불안이라는 감정의 시작은 결국 우리 자신이잖아. 누가 우리에게 주는 게 아니야. 그걸 만드는 건 나 자신이지. 그리고 온전히 내가 견뎌야 하는 몫이야. ‘케빈에 대하여’에서도 에바가 길을 가다 느닷없이 누군가 뺨을 때리는데도 에바는 그걸 온전히 자기가 당해 마땅한 몫이라고 생각하잖아. 신고해주겠다는 행인한테 괜찮다면서 자기 책임이라고 말하지. 만약, 에바가 자신이 그런 대우를 받도록 만든 게 자신이 아닌 케빈이라고 생각했다면, 케빈을 원망했다면, 어땠을 거 같아?

현우: 케빈을 끌어안는 그런 엔딩 장면이 나오지 않았겠죠.

소현: 영화적 관점이 아닌 에바의 삶의 관점에서 보면?

현우: 음… 비관적인 삶을 살겠죠.

소현: 맞아. 그래서 항상 인식이 중요하지 않을까? 불안하다는 건 어찌 생각해보면 진짜 좋은 신호라고 생각해. 어쨌든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걸 안다는 거니까. 나는 안 돼, 하고 자신을 아예 외면하고 놔버릴 수도 있잖아. 그러니 더 비극적인 건 불안하지조차 않은 상태겠지. 불안을 느낄 때마다 그 이유가 뭘지 생각해보면서, 네 말대로 계속해서 실천해나가면 되지.

현우: 선생님, 그러면 다음번에 영화 ‘피아니스트’를 보고 얘기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거기서 주인공은 상황적으로 불안에 처해있잖아요. 그렇게 절망적이고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신을 잃지 않는 방법에 대해 얘기해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소현: 좋아요. 다음 시간에 얘기해봅시다.

이전 09화 악의 평범성: 돼지의 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