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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펭귄 Oct 30. 2022

악의 평범성: 돼지의 왕

특성화고 영상과 선생님과 학생의 방과 후 수업

현우: 쌤, 돼지의 왕 보고 왔는데요. 제 말이 맞던데요?

소현: 뭐가?

현우: 학생들을 동물에 비유한 거요. 결국 교실이라는 사회 자체가 하나의 동물원인 거예요.

소현: 거기에 동의가 됐어?

현우: 네.

소현: ‘파수꾼’ 때 네가 말했던 소속감을 증명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애들이 ‘돼지의 왕’에서 개로 표현이 됐잖아.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돼지로 표현됐고. 그런 동물의 구분에도 동의가 됐던 거야?

현우: 네. 방관하는 아이들은 먹이사슬에서 가장 힘없는 돼지일 뿐인 거죠.

소현: 나는 이 영화를 통해서 두 가지 측면을 얘기해보고 싶어. 첫 번째로, 먹이사슬의 상위 포식자나 가장 힘없는 위치에 있는 아이들이나 동물로 표현되긴 마찬가지다, 라는 것, 또 하나는 그렇다면 모두가 동물일 뿐이라고 표현된 이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하는 점이야.

현우: 쌤, 그럼 우선 학교 사회는 동물원이라는 걸 인정하시는 건가요? 드디어 제 의견을 존중해주시나요?!

소현: 내가 지금까지 너의 의견을 존중해주지 않았나?

현우: ….

소현: 일단 내 개인적으로 학교 사회는 그보다 더 다차원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분명 동물로 표현하고 있으니 동의하지. 인정하고 말고 할 것 없이 우리는 이미 그렇게 만들어진 그 세계를 들여다보는 입장이잖아.

현우: 드디어…!

소현: 개나 돼지나 동물이긴 마찬가지잖아.

현우: 네.

소현: 그 차이를 두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현우: 의미가 있죠.

소현: 어떤 의미가 있어?

현우: 개는 육식동물로써 힘을 상징하잖아요. 동물원 같은 교실 속에서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송곳니를 가진 개로 비유된 거죠.

소현: 그렇게 비유된 건 맞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야. 다시 말해서, 그렇게 구분이 되어 봤자 모두가 인간이 아닌 동물에 비유되고 있잖아, 매우 비극적이게도. 나는 그 점에 주목한 거야.

현우: 그렇네요. 모두 인간인데 모두 동물로 비유됐네요. 하지만 개와 돼지의 명확한 역할이 있어요.

소현: 뭔데요?

현우: 개는 사냥이라는 본능에 충실하고 자신보다 강자 앞에서는 매우 연약해져요. 그리고 돼지는 생존 본능에 충실하고, 폭력에 방관만 하기 때문에 매우 이기적인 거죠. 같은 동물이라는 점에서 둘의 역할이 분명히 나누어져 있어요.

소현: 네, 맞아요. 거기에 동의합니다. 네가 방금 얘기한 그 분명한 역할 구분도 당연히 느꼈지. 근데 같은 얘기지만, 결국 모두가 동물로 표현됐다는 점이 나는 불쾌하게 느껴졌어. 넌 그렇지 않았어?

현우: 전 불쾌하기보다 그냥 공감됐어요.

소현: 그랬구나. 결국 같은 맥락이라고 보거든? 공감이 됐다는 건 동의한다는 거고, 내가 불쾌했던 건, 우리가 다 그런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거야. 사실상 의무교육을 거친 우리는 학교 사회를 경험했잖아. 그 학교 사회 속에 존재하는 인물들을 모두 동물로 표현했다는 건 결국 모든 인간을 동물과 마찬가지라고 표현한 거야. 나도, 너도, 모두가.

현우: 네, 생물학적으로 동물이 맞잖아요.

소현: 그건 그런데, 아무래도 동물로 비유한 건 생물학적으로 그렸다기보다 본능적인 걸 그린 거 같지?

현우: 네.

소현: 내가 불쾌한 감정이 들었단 건 그걸 인정했다는 뜻이기도 해. 영화가 우리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부여된 인간성의 결핍을 보여줬던 거라고 할 수 있어.

현우: 그 결핍이 뭐예요?

소현: 그게 바로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거지. 내가 이 영화를 보자고 한 이유기도 하고. 간접 경험을 통해서 인간의 불완전함을 찾아보자고 했으니까.

현우: 네. 인간이 동물로 비유된 게 불완전하다는 건가요?

소현: 영화에서 생존 투쟁과 그로 발생하는 폭력성을 동물로 비유한 건데, 애초에 인간을 동물로 비유할 수 있다는 자체가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라는 거지. 인간이 완전하다면 본능만 있는 동물로 비유될 일조차 없을 거 아니야.

현우: 그렇죠.

소현: 결국 영화를 통해서 우리가 인식해야 하는 건 우리 모두 동물로 치부되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거기에서 불쾌감이 비롯되는 거고, 분명 감독은 그 불쾌감의 촉발을 의도했다는 거지.

현우: 네.

소현: 자 그럼, 뭘 위해서? 두 번째로 하고 싶은 얘기가 이거야. 그 불쾌감을 유발해서 관객이 얻는 게 뭘까?

현우: 사회가 악하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소현: 그치. 모두가 폭력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아? 돼지로 그려진 아이들마저도. 선이 없어.

현우: 방관한 애들도요? 걔들은 딱히 폭력을 쓰진 않았잖아요.

소현: 영화의 화자인 종석이 돼지들은 자신이 돼지인지조차 모른다, 그것도 모르고 먹힐 준비를 하면서 열심히 살을 찌운다, 그런 식으로 얘기했던 거 기억나?

현우: 네.

소현: 근데 과연 정말 그럴까? 되게 재밌는 장면이 있어. 개로 표현되는 일진 무리들이 철이한테 호되게 깨지는 장면에서, 말 그대로 철이는 돼지들의 왕으로 표현된 거잖아. 일진들이 다 깨지고, 마지막 애 하나가 선생님한테 일러바치려고 교실을 나가려고 하니까 방관하던 아이들이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

현우: 네. 일진 애를 막아서잖아요.

소현: 그래. 그 장면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종석이 말대로 정말 돼지로 표현된 애들이 자신이 돼지인 걸 모를 리 없다는 거야. 그리고 얼마든지 기회가 된다면, 일진들처럼 개가 되길 마다하지 않는다는 거야. 다수의 무리가 소수를 제압한다는 관점에서, 다분히 폭력적인 장면이었어. 결국 모두가 폭력적인 본성을 갖고 있는 거야. 그리고 선택지가 없어. 돼지가 될 것인가 개가 될 것인가, 이 둘 중 하나일 뿐이야.

현우: 그렇게 보니 이제 불쾌하네요. 저는 개도 싫고 돼지도 싫은데….

소현: 그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야. 우린 인간이길 포기하면 안 돼. 그럼,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가 해야 할 건 이왕이면 개가 되기 위해 노력하자, 이런 식이면 안 된다는 거야. 정말 최절정의 비극만 있는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악이 얼마나 평범한 것인가를 깨닫는 거라고 생각해.

현우: 음, 그럼 인간이 태초부터 악하다는 말씀이에요?

소현: 폭력적인 본성은 동물들에게는 그저 생존 수단일 뿐이야. 그러니 생물학적으로 동물인 인간도 그러한 본능 자체를 곧 악이다, 라고 규정할 수 없지. 하지만 역설적이게 또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서 생존을 위해 발현되는 그 폭력적인 악은 지극히 평범하다는 거야.

현우: 생존이란 게 학교라는 사회에서의 생존을 말하는 건가요? 학교에서 악이 시작된다는 건데.

소현: 학교에서 악이 시작된다기보다, 기본적으로 내재된 본능이 무리가 생기면 드러난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인 거 같아. 생존을 위한 투쟁이 지나치면 폭력이 되고 악이 되는 거야.

현우: 그러면 악은 필연적인 거네요.

소현: 이상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걸 모두가 인식하고 개도 돼지도 아닌, 인간이길 선택하는 게 가장 베스트라고 봐. 이미 내재하는 악을 막을 방법은, 그 악을 인식하고 저지르지 않는 거니까.

현우: 악이 평범하다는 걸 알고, 항상 그걸 경계해야 한다는 거죠?

소현: 정확해. 네가 말했듯이 우린 동물이고, 이 세상은 악으로 가득해. 희망이 없어. 이게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세상이란 말이지. 이 세상이 얼마나 지저분한 동물의 소굴인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봐라, 이게 바로 세상이다. 그게 끝이잖아.

현우: 네.

소현: 그래서 이걸 보고서 불쾌에서 끝나거나, 돼지가 되기보단 개가 되길 택하겠어, 따위의 생각으로 끝나면 인간으로서 무책임한 게 되는 거야.

현우: 네. 그러면 우리는 항상 불완전하고 결핍돼 있고 폭력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어서 악이 일상에 도사리고 있다는 거네요. 

소현: 그렇지. 그리고 악을 똑바로 보지 못하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악에 동참하는 게 되는 거야. 아무것도 택하지 않겠다는 건 돼지든 개든 동물이 되길 택하는 거랑 같은 거지. 

현우: 네. 항상 그 악을 경계해야겠네요.

소현: 응. 폭력, 방관이 평범하다고 그게 옳은 건 아니니까. 평범하지 않길 택하는 게 좋겠지?

현우: 선생님 그러면, 인간의 악행이 평범하다는 건데, 태초에 인간이 만들어질 때부터 악했던 건가요? 이미 불완전한 존재니까?

소현: 그건 내가 이렇다, 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인 거 같아. 내가 세상과 인간을 창조한 게 아니니까. 다만 인간의 불완전한 한 부분이 악으로 드러난다는 얘기야. 인간의 불완전함이 또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는 영화를 보고 오자. ‘케빈에 대하여’ 알아?

현우: 아, 그 오프닝이 토마토 축제인 영화요?

소현: 맞아. 다음엔 그 영화로 얘기해보자.

현우: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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