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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펭귄 Oct 30. 2022

대화: 굿 윌 헌팅

특성화고 영상과 선생님과 학생의 방과 후 수업

소현: 좀 시답잖은 밸런스 게임을 해보자. 윌이 가진 과거와 천재성으로 살기 vs 지금의 나로 살기. 뭘 택할 것 같아?

현우: 천재성이요.

소현: 왜?

현우: 천재적인 지능을 가지고 있으면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잖아요. 윌도 굳이 돈을 벌기 귀찮아서 안 버는 거지, 맘먹으면 억만장자까지 할 수 있을걸요?

소현: 고아로 자란데다가 입양과 파양되기를 반복했고 게다가 아동 학대까지 당했던 삶이었잖아. 그래도 윌의 삶을 택할 거 같아?

현우: 그러지 않을까요?

소현: 왜?

현우: 어차피 인생은 고통이라는데, 세계적인 브레인들인 하버드생들을 모두 제칠만큼 천재라면 그런 삶을 살아볼 만할 거 같아서요. 어차피 한 번 사는 거, 고통이 크더라도 천재로 한번 살아보고 싶네요.

소현: 나도 잠깐 스쳐 지나가는 생각으로는 똑같이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이 삶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다면 나는 그냥 나로 살기를 택할 것 같아.

현우: 왜요?

소현: 윌 인생도 숀 교수를 만났기 때문에 내면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거잖아. 숀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볼 기회도 없었을 거야. 나도 너랑 1대 1 방과후수업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지 않을까 싶은 거지.

현우: 선생님도 지금 성장을 했다는 건가요?

소현: 그럼. 나는 사실 처음 방과 후 시작할 때만 해도, 내가 일방적으로 너한테 가르침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어. 근데 수업을 하면서 점점 아, 나도 현우한테 배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그러면서 아직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도 느꼈고. 또 배움은 평생이고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

현우: 그럼 제가 선생님을 가르쳐드린 거네요.

소현: 그래. 맞는데, 넌 나한테 뭘 가르친 거 같아?

현우: 연애하는 법이요?

소현: …. 네가 가르쳐준 연애하는 방법이 뭐였지? 그새 또 까먹었네.

현우: 이상형을 줄이고 야망을 좇는 거요.

소현: 그러면 이왕 가르쳐준 거, 이것도 좀 알려줘 봐. 만약에 내가 그런 이상형의 사람을 만났어. 그럼 어떻게 내 애인으로 만들어?

현우: 고백하고 하늘에 맡겨야죠. 왜냐하면 이상형을 만났다는 건 쌤이 그 이상형의 모습이 됐다는 거니까요. 고백하면 선생님이 할 건 다 한 거고, 상대방의 선택에 맡기는 거죠.

소현: 맞네. 진짜 또 한 방 먹이는구나. 그러면 고백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현우: 선생님은 고백해보신 적 없으세요?

소현: 없는데.

현우: 그러면서 저한테는 무작정 고백해보라고 하신 거예요?

소현: 나는, 뭐, 내가 하기 전에 알아서들 하던데?

현우: ….

소현: 나중에 고백하는 법 강의 좀 해주면 되겠네. 연애하는 법도 연애하는 법인데, 그보다는 내가 다시 재밌는 무언가를 하고 싶게 만든 게 내가 너한테 진짜 고마운 점이야.

현우: 전 당연한 말을 했을 뿐인걸요.

소현: 게다가 네 덕에 나도 수업 준비하면서 다시 영화 분석하게 된 것도 고맙지. 그래서 나는 그냥 나로 사는 게 좋은 것 같아. 

현우: 그럼 선생님은 지금 삶에 만족하시는 건가요?

소현: 아니. 나는 죽으면 나태 지옥에 떨어지겠구나, 하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내 삶에 만족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절대 당당하게 그렇다고 못 해.

현우: 나태하기 때문에요?

소현: 응. 나는 어릴 때부터 생각해온 게 있는데, 사람마다 자신이 뛰어넘고 싶은 자기 모습이 있다는 거야. 그건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또 누구도 내가 알리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나만의 모습인데, 그게 각자의 생에서 언제고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은 거지. 나한테는 열심히 하지 않는 게 바로 그런 모습이었어. 심지어 다른 사람들은 내가 뭐든 되게 열심히 하는 줄 알아.

현우: 선생님은 왜 나태하세요?

소현: 지금 현실이 괜찮다고 합리화했던 거겠지.

현우: 지금까지의 현실이 괜찮지 않아요?

소현: 괜찮지 않아.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이고 멋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니까.

현우: 그러면 이상적이고 멋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아가면 되잖아요. 되게 간단한 건데요.

소현: 맞아. 그래서 나도 그렇게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어.

현우: 그러면 이제 나태하지 않은 거잖아요. 

소현: 그래도 아직 나태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자신이 없어. 특히 너를 보면서 더 그렇게 느껴. 넌 진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만큼 꽉 찬 하루를 보내잖아. 그러는 넌 지금 너의 일상이 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일상이야?

현우: 아니요. 이상적이지 않으니까 이상적인 모습으로 나아가는 거죠.

소현: 그러니까. 너도 그런데, 내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지.

현우: 그래도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선생님만의 이상적인 삶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거죠.

소현: 그건 그렇지. 그래도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고 싶어질 때가 있잖아. 넌 어떻게 극복해?

현우: 환경에 안주하고 싶을 때가 없어요. 어딘가에 안주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한 장소만 바라보고 산다는 거니까요.

소현: 오~ 끊임없이 한계를 깨부순다~?

현우: 음, 저는요, 나중에 제가 어딘가에 안주하고 있다면 그건 지구일 거예요.

소현: 그게 무슨 말이야?

현우: 더는 이 지구에서 제 한계를 깰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말하는 거죠.

소현: 그럼 너는 뛰어넘고 싶은 너만의 모습이 없는 거야?

현우: 있죠. 재능을 가지는 거요.

소현: 네가 생각하는 재능이 뭔데?

현우: 별다른 노력 없이도 잘할 수 있는 거잖아요.

소현: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재능은 어느 정도 소질이 있고 감각만 있어도 재능이라고 할 수 있잖아.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라고. 윌 같은 천재성은 다시 태어나야 가능한 거지만 넌 충분히 재능이 있잖아. 그냥 천재성을 갖고 싶은 거 아니야?

현우: 천재하고 재능의 차이가 뭐예요? 재능이 있기 때문에 천재가 되는 거 아니에요?

소현: 천재는 재능으로 극복할 수 없는 거고, 재능은 얼마든지 계발이 된다는 게 다른 점이겠지.

현우: 그래도 저는 재능을 갖고 싶어요.

소현: 이미 가진 걸 가지지 못했다고 생각하네.

현우: 제가 무슨 재능이 있는데요?

소현: 열심히 하는 것도 재능이고 아무런 기초가 없던 상황에서 지금의 실력까지 만든 게 재능이지, 뭐가 재능이겠어.

현우: 갑자기 떠오른 말이 있는데요. 재능이 없음에도 꿈을 좇는 건 재능이래요.

소현: 넌 네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고?

현우: 네.

소현: 난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현우: 왜요?

소현: 난 너랑 반대로 내가 지금까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았거든. 근데 그게 착각이야. 아니, 정확히는 누구에게나 재능이 있는 것 같아. 내 재능이 별것 아닐 뿐이지. 그리고 너처럼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 하루 3시간만 자면서 고통을 이겨낸다는 건 진짜 재능이야. 난 그런 쪽에 재능이 없잖아. 나태 지옥에 빠질 게 두렵다니까. 결국 너처럼 하는 사람들이 어쭙잖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뛰어넘는 거야. 

현우: 그러면 선생님이 생각하는 제 재능이 뭔데요?

소현: 영화를 잘 찍는 거지. 그리고 현장에서 연출자로서 스텝들을 잘 통솔하는 거지. 그건 나도 잘 못 해. 그래서 나는 일찌감치 연출자라는 꿈은 접었어. 아니, 펼친 적도 없어. 너는 누가 봐도 연출자에 제격인 사람이야. 그게 네 재능이야.

현우: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하네요.

소현: 제발 너의 재능을 좀 믿어 봐. 널 그만 의심하고.

현우: 뭐, 결과가 말해주겠죠.

소현: 이미 경험했잖아. 청소년 영화제에서 상 탔잖아. 그것도 첫 단편영화로. 어떤 증명이 더 필요한 거야, 대체! 너는 좀 너 자신에게 관대할 필요가 있어. 난 나 자신한테 너무 관대했기 때문에 우리 둘이 섞이면 아주 완벽할 것 같아.

현우: 선생님, 세상에 완벽한 건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거잖아요.

소현: 그치. 그래서 끊임없이 욕망해야 된다고 했었지. 야망은 누가 이뤄주는 게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힘이 되는 존재가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니. 나도 너의 야망론 덕분에 다시 시작할 용기가 생겼는데. 가장 먼저 생각난 영화가 ‘비긴 어게인’이었어. 다음 주에는 그 영화로 마지막 수업을 해보자.

현우: 네. 밥이라도 한 번 사주세요.

소현: 대학 합격하고 시원하게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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