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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펭귄 Oct 30. 2022

한계를 깨고 승리하는 인간: 트루먼 쇼

특성화고 영상과 선생님과 학생의 방과 후 수업

현우: 쌤이 트루먼이라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소현: 난 일단 출연료를 정산해달라고 할 거야.

현우: 출연료 한 얼마 받을까요? 20년 넘게 출연해온 건데.

소현: 24시간 내내 일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최저시급으로 쳐도 최저시급 오른 가격 다 적용하고, 야근 수당 적용하고, 또 시청률이 좋았으니까 인센티브도 시청률에 따른 가격 산정해서 넉넉히 받아야 되고 휴가비도 야무지게 챙겨서 받아야지. 그다음에 밖에 나가서 CF를 엄청 찍어.

현우: 트루먼 쇼 내에서도 광고비 받은 것도 정산받아야죠.

소현: 맞네, 맞네. 역시 똑똑하네! 참, 퇴직금도 챙겨 받아야 돼. 그래야 좀 인생이 덜 억울할 거 아니야.

현우: 갑자기 트루먼 쇼에 들어가고 싶네요. 한 30년 살면 나중에 꽃길만 걷겠네요.

소현: 근데 또 그렇지도 않다? 어딜 가도 전 세계 사람이 내 얼굴을 아는 거잖아. 돈이 아무리 많아도 결코 사생활을 온전히 보호받을 수 없겠지. 그렇긴 한데, 그 정산받은 돈으로 또 다른 트루먼 쇼를 만들어 버리는 거야. 그럼 괜찮을 수도?

현우: 선생님이라면 어떠실 거 같아요?

소현: 뭐가?

현우: 트루먼도 30살에 쇼에서 나왔고 선생님도 30이잖아요. 쌤이 지금까지 살아온 햇수만큼 쇼에 갇혀서 살다가 이제 막 쇼에서 나오고 억만금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어떤 감정이 들 것 같아요?

소현: 감정이라. 일단 그 문밖을 나서는 그 순간은 엄청나게 희열이 있을 것 같고, 그다음엔 두렵겠지.

현우: 왜요?

소현: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세상이잖아. 쇼 안에서는 매일 똑같이 아침 인사를 하고 옆집 개가 달려들고 같은 곳에서 매일 신문을 사고 똑같은 업무를 하는데, 그 무엇도 정해진 게 없으니 덜컥 겁이 나겠지. 넌 어떨 거 같은데?

현우: 저도 쌤하고 같은 생각이긴 한데요, 전 두렵다기보다 우울할 거 같아요. 

소현: 왜 우울할 거 같은데?

현우: 트루먼은 쇼 내의 환경에 적응돼 있잖아요. 그렇게 30년을 살아온 트루먼이 막상 사회에 나가면 적응을 못할 것 같아서요. 감옥에서 30년을 산 장기수도 출소하고 나서 자살하는 경우가 있다잖아요. 30년간 살아온 환경을 깨고 또 다른 환경을 맞이한다는 게 많이 힘들 것 같아서요.

소현: 그 얘기 들으니까 드는 생각인데, 어쩌면 그 새로운 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트루먼이 다시 쇼로 돌아가고 싶을 수도 있지 않을까?

현우: 그니까요. 저라면 다시 돌아가고 싶을 것 같아서 한 얘기였어요.

소현: 근데 절대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이제 모든 시청자가 트루먼 쇼가 끝났다는 걸 아니까. 결국 부딪히는 수밖에 없어. 그러면 진짜 공황 상태에 빠질 거 같은데?

현우: 그래도 저는 트루먼이 이겨낼 수 있다고 봐요. 이미 한 번 자신의 한계를 깬 거잖아요.

소현: 그치. 트루먼한테 있어서 한계를 뭐로 정의할 수 있을까?

현우: 자기 자신이죠.

소현: 어떤 점에서?

현우: 트루먼이 한계를 깨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소현: 자기 확신이지.

현우: 자기 확신을 바탕으로 한 두려움 극복이죠.

소현: 응. 표면적으로는 통제받는 상황이 한계라고 보일 수 있지만 결국 진짜 깨부숴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이니까.

현우: 자신의 한계를 정하는 건 자신이잖아요. 트루먼도 거대한 바다라는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정하게 된 거죠. 바다는 눈으로 보면 끝이 안 보이지만 막상 배를 타고 나가면 끝에 도달하잖아요. 저는 그게 바로 한계를 나타내는 거라고 생각해요. 

소현: 근데 진짜 트루먼이 한계를 정한 게 맞을까? 트루먼의 바다에 대한 두려움은‘트루먼 쇼’ 피디 크리스토퍼가 쇼 밖으로 못 나가게 하려고 인위적으로 만든 트라우마였잖아.

현우: 선생님, 트라우마는 남이 심어주는 게 아니잖아요. 그 트라우마를 받아들이는 게 자기 자신이니까요. 크리스토퍼는 트루먼에게 극심한 공포를 선사한 것뿐이지 결국 그 공포심을 트라우마로 받아들인 건 트루먼 자기 자신인 거죠.

소현: 오~ 똑똑한데~! 그러면 사람들한테는 한계가 없는 거야?

현우: 그쵸.

소현: 나도 그걸 알지. 이론은 박사야, 아주. 누구나 그걸 머리론 알지만 실천하는 게 어렵지. 혹시 너도 이론만 박사인 건 아니야?

현우: 아닌데요.

소현: 근데 왜 자꾸 불안해해?

현우: 제가요? 그 불안은 한계에서 나오는 게 아니에요. 게다가 전에 얘기한 적 있잖아요. 불안은 원초적이고 필연적인 거라고요. 누구나 불안을 느낄 수 있죠. 심지어 자신의 한계에서도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불안을 짊어지고 실천하면 한계에서 나오는 불안은 아니라는 거죠.

소현: 궤변이네, 궤변이야. 불안을 자신의 한계에서 느낄 수 있다는 전제 자체가 한계는 존재한다는 거잖아. 그냥 너 스스로 한계 짓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극복하면 되잖아.

현우: 아니죠. 저는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하니까 한계가 아닌 거죠.

소현: 그러면 그보다는 누구나 한계를 맞닥뜨리지만 못 넘을 한계는 없다, 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한 거 아니야?

현우: 뛰어넘으려고 한다는 자체가 그걸 자신의 한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더 정확한 거 같아요.

소현: 내가 듣기에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거 같은데. 그러면 다시 잘 정리해서 얘기해 봐봐.

현우: 한계라는 건요, 자신이 뛰어넘지 못하고 어딘가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게 한계에요. 하지만 그걸 뛰어넘으려고 하는 순간 그걸 한계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그러니까 제가 한계가 없다고 한 말은,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하는 순간 한계는 사라진다는 거죠.

소현: 그러니까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실천하면 무한해진다는 얘기네?

현우: 무한해진다기보다 한계를 뛰어넘으면 또 다른 한계가 나오겠죠. 하지만 또 다른 한계마저 뛰어넘으려고 한다면 그건 한계가 아니라 장애물이 돼요. 

소현: 너는 방금 뛰어넘을 수 있으면 한계가 아니니까 한계는 없다, 라고 말을 했잖아. 그럼 애초부터 한계가 없다는 말이잖아. 너의 논리에서는.

현우: 네.

소현: 그럼 무한하다는 거잖아. 근데 왜 또 그건 아니라는 거야? 그래놓고 또 한계가 있는데 장애물로 변질되는 거래. 이게 무슨 말이야?

현우: 인간은 무한해요. 하지만 유한하다고 생각하는 건 스스로 한계를 정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계속해서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하는 자체가 한계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뛰어넘으려고 하는 거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그걸 한계가 아닌 장애물이라고 말한 거고요. 그래서 저는 한계가 없다고 말한 거예요.

소현: 알겠어. 그러면 넌 지금 네가 느끼는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하고 있으니 한계가 아닌 장애물을 넘을 뿐이라는 거네.

현우: 네. 쌤은 쌤이 한계가 없다고 생각하세요?

소현: 애초에 내 교육관이 모든 아이들에게 한계가 없다는 거잖아. 

현우: 쌤은 아이들이 아니잖아요.

소현: 나도 아이였던 때가 있잖아.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난 못 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 그래서 항상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았고 그걸 모든 아이들이 경험했으면 하는 거지.

현우: 그럼 지금도 ‘난 못 해’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살고 계신 거죠?

소현: 그치. 근데 한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너랑 비슷하면서 좀 달라. 나는 인간은 무한하다고 생각하거든. 인간이 한계를 대하는 태도를 정하는 거라고 생각해.

현우: 그것도 맞는 말인 거 같아요.

소현: 시지프 신화 알아?

현우: 네, 알죠.

소현: 카뮈가 말한 시지프 신화도 알아? 난 ‘트루먼 쇼’의 트루먼이 카뮈가 말한 시지프랑 닮았다고 생각했어.

현우: 그, 바위를 산 정상까지 올리는 형벌이잖아요.

소현: 응. 카뮈가 말한 시지프 신화는 좀 다르거든.

현우: 카뮈가 뭐라고 했는데요?

소현: 시지프가 바위를 산 정상으로 굴려 올려도 다시 떨어진 바위를 또 올려야 하고 그걸 영원히 지속해야 하니까 시지프한테는 어떠한 기쁨도 행복도 없을 거 같잖아. 그리고 그건 마치 우리 삶과 같지. 어떤 의미도 목적도 없는 것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삶이니까. 카뮈는 그게 부조리라고 했어. 

현우: 아, 카뮈가 말한 부조리 알죠.

소현: 근데 그런 시지프가 산 정상에 바위를 올려놓을 때, 찰나일지라도 기쁨을 느끼고 성취감을 느끼는 거야. 그리고 그건 영원한 형벌을 준 신들도 감히 통제할 수 없는 거지. 카뮈는 그걸 부조리에 대항해 승리하는 거라고 말해.

현우: 아, 그러니까 그게 한계를 대하는 태도라는 거네요.

소현: 맞아. 그리고 트루먼도 시지프랑 같은 거지. 크리스토퍼가 신처럼 트루먼의 모든 걸 통제하기 위해 세계를 창조했지만, 트루먼은 그 한계를 깨부쉈잖아. 거기까지 크리스토퍼가 통제할 수는 없었던 거지. 트루먼도 한계를 깨고 승리한 인물인 거야.

현우: 근데 시지프랑 트루먼은 다르지 않나요? 시지프는 바위를 정상으로 올려도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건데, 트루먼은 아예 그 세상 밖을 탈출하는 거잖아요. 그럼 시지프 신화로 치면 바위를 던져버려야 되는 건데, 시지프는 그럴 수 없잖아요.

소현: 트루먼이 밖으로 나가면 네버랜드가 펼쳐진다고 한다면 네 말이 맞아. 근데 트루먼이 깨부수고 나간 세상이 과연 쇼의 세상과 다를까? 거기서도 분명 한계에 부딪힐 거야. 그래서 삶은 그 자체로 부조리한 거고. 시지프가 받은 영원한 형벌과 다를 게 없어.

현우: 저도 선생님 말씀에 동의해요. 결국 한계를 정하는 것도 자기 자신이고 한계를 대하는 태도를 정하는 것도 자신이에요. 그러면 두려움을 극복하고 한계를 넘는 순간이 세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거죠. 세상은 인간에게 두려움을 보여주고 그 두려움에 굴복하는 건 인간이고 그것이 곧 한계라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트루먼 쇼’에서도 크리스토퍼가 바다라는 두려움을 보여주지만, 바다를 이겨내는 건 트루먼이잖아요. 어찌 보면 트루먼이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할 수 있죠.

소현: 맞아. 시지프 신화, ‘트루먼 쇼’, 그리고 우리 세상도 다 마찬가지인 거지. 그러면 다음 주에는 ‘포레스트 검프’보고 얘기해 보자. 우리가 한계는 자신이 정하는 거라고 했잖아. 포레스트가 스스로 한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한 생에서도 하기 힘든 성취를 여러 개 한 인물이니까. 

현우: 명작이죠. 다음 주에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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