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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방과 후 수업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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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앤펭귄 Oct 30. 2022

인간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간다1: 소셜네트워크

특성화고 영상과 선생님과 학생의 방과 후 수업

현우: 쌤, 저 그냥 입시 포기할까요?

소현: 왜 그래, 갑자기?

현우: 뭔가 요즘 다 마음대로 안 돼요. 이야기 쓰는 것도 너무 어렵고 힘들어요.

소현: 글을 안 써서 그게 스트레스가 되는 거 아니야?

현우: 쓰긴 쓰는데 마음에 안 들어요.

소현: 아, 요즘도 매일 시놉시스 쓰고 있어? 지난주에 몇 개나 썼는데?

현우: 쓴 건 10개 정돈 썼죠. 다 마음에 안 들어서 그렇지.

소현: 그럼 열심히 안 하는 거에 대한 스트레스가 아니네. 그냥 진짜 슬럼프가 온 거네.

현우: 네. 다 때려치우고 싶네요.

소현: 나도야. 나도 요즘 힘들다. 오늘 방과 후 수업도 때려치우고 싶다. 나 사실 며칠 전에 차였거든.

현우: 네? 누가 있었어요?

소현: 어. 있었어. 아주 잠깐이지만.

현우: 왜 차이셨는데요?

소현: 글쎄. 네가 항상 그랬잖아. 쌤 눈이 너무 높다고.

현우: 그랬죠.

소현: 그래서 네가 이런 사람을 만나라고 정해줬었잖아?

현우: 네. 외향적인 성격에 야망이 있고 선생님을 이끌어줄 수 있는 저보다 잘생긴 사람이요.

소현: 딱 그런 사람이었는데 차였어. 그래서 지금 좀 충격적이야.

현우: 쌤이 잘못하셨네요.

소현: 왜? 내가 왜 잘못했는데?

현우: 쌤의 이상형을 만났는데 쌤이 차이신 거면 잘못하신 거죠.

소현: 아, 그렇게 되나? 아니야. 그냥 안 맞은 것뿐이지.

현우: 뭐라 그러면서 찼는데요?

소현: 음…. 나보고 야망이 없대.

현우: 쌤 야망 없는 거 맞잖아요.

소현: 나?… 나 야망 없어?

현우: 쌤 야망 없죠. 무슨 야망이 있으신데요?

소현: 뭐…, 근데 야망 때문에 헤어진 게 아니야. 그 이유로 헤어진 건 아니고, 다만 헤어질 때 그 사람이 했던 말 중에 그게 가장 충격적이라서 지금 얘기한 거지.

현우: 그럼 뭐 때문에 헤어졌다고 생각하시는데요?

소현: 음…. 그 사람이 헤어짐을 이유로 댄 게 이런 거였어. 자기는 사랑을 주는 남자가 아니래. 네가 원하는 사랑을 줄 수가 없다고 헤어지자고 했어. 처음에 나를 좋아했던 이유가, 내가 야망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해서 강한 확신이 들었대. 근데 만나보니 나는 야망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받아야 되는 사람이래.

현우: 욕심쟁이네요.

소현: 내가?

현우: 네. 사랑만 받아야 된다는 게요. 쌤이 그러셨잖아요. 사랑은 똑바로 선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는 거라고요.

소현: 아니 나도, 사랑 줄 수 있지. 근데 그 사람이 안 된대잖아.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사랑 없이 연애를 할 수가 있어.

현우: 그럼 그 사람이 왜 쌤보고 사랑받아야 되는 사람이라고 한 걸까요? 아무래도 선생님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소현: 그게 무슨 말이야?

현우: 그 사람은 선생님한테 사랑받아야 되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쌤이 지금 그 이유를 모르잖아요. 그렇다고 선생님의 전 남친이 기분 나쁘라고 한 소리는 아닐 테고요.

소현: 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야망 있기보다 사랑받는 걸 더 좋아하는 게 맞다는 거야?

현우: 그쵸. 그 사람 입장에선 그렇게 보였겠죠.

소현: 아닌데…. 나 야망 있는데. 그리고 난 사랑도 얼마나 듬뿍 주는 사람인데. 너도 알지만 내가 학생들한테도 사랑을 많이 주잖아.

현우: 쌤이 사랑을 주는 건 잘 알죠. 근데 야망이 있는 건 잘 모르겠어요.

소현: 그래? 나 야망 있는데. 나도 내가 잘하는 걸로 성공하고 싶지.

현우: 그럼 쌤 야망이 뭔데요?

소현: 야망? 내 야망이 뭐였더라…? 그러네. 나 야망 없네. 지금 이 상황이 더 충격적이다. 그래, 나 야망 없었네….

현우: 거봐요. 쌤 야망 없잖아요.

소현: 그러게. 나도 분명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나도 내 생활에 안주하면서 그걸 잃어버렸던 것 같다.

현우: 지금이라도 야망을 다시 찾으면 되죠. 하지만 야망을 찾는 순간 사랑은 버려야 돼요. 야망을 좇으면서 사랑만 받을 것인지, 아니면 야망을 버리고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될 것인지 택해야 돼요. 현재 쌤은 야망은 없고 사랑만 받을 생각을 한 거죠. 그게 이별의 원인 아닐까요?

소현: 현우야, 너 되게 똑똑하다. 언제 이렇게 컸어?

현우: 다 쌤이 플래처 교수가 앤드류한테 하듯 가르쳐서 그렇죠.

소현: 내가 그렇게 인성 파탄자니?

현우: 장난이죠. 암튼 선생님은 지금 결정하셔야 돼요. 야망인지 사랑인지.

소현: 아, 너무 어려운데? 꼭 두 개 중에 하나를 택해야 되니?

현우: 네. 사람의 몸은 두 개가 아니잖아요. 어중간히 둘 다 취하려는 순간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거죠.

소현: 맞아. 둘 다 균형을 갖추는 게 진짜 어렵지. 당장 나도 둘 중 하나도 제대로 못 하는데.

현우: 사람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게 정상이죠 쌤. 그래도 균형을 맞출 수 있죠. 엄청 어려울 뿐이지. 그래서 둘 중 하나를 택하셔야 된다고 한 거고요. 쌤은 야망이에요, 사랑이에요?

소현: …야망이지.

현우: 그럼 야망을 먼저 이루세요. 그다음에 사랑을 주는 사람이 돼도 늦지 않죠.

소현: 점점 어려워지는 건 사실이야. 나도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았었는데, 그래서 네가 지금 이렇게 달려 나가는 걸 보면 멋있고 부럽지. 솔직히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10대인 너도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현우: 부러울 게 뭐 있어요. 쌤도 하시면 되죠. 선생님이 전에 수업에서 말씀하셨잖아요. 인생은 결핍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고요. 그때 이후로 제가 생각해봤는데 세상이 욕망과 권태로 이루어진 거라면 저는 욕망만을 추구하기로 택할 것 같아요.

소현: 왜?

현우: 쌤은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소현: 행복? 글쎄….

현우: 저는 욕망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인간을 움직이게 하고 새로운 걸 경험하게 하는 건 결국 욕망이잖아요. 뭔가를 추구한다는 건 살아가는 원동력이니까요. 그게 없으면 권태로워지는 거고, 살아갈 이유가 없어지는 거죠.

소현: 그치. 나도 잘할 수 있을까, 현우야?

현우: 그건 해봐야 아는 거죠. 저는 욕망이 행복이라면 후회는 가장 큰 고통이라고 생각을 해요. 후회를 하는 순간 과거에 머물게 되는 거거든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죠. 하지만 후회만 없으면 되는 거예요.

소현: 그래, 해보자. 내가 맨날 하는 말이었는데 내가 듣고 있네. 후회 없는 결정을 하면 된다는 거. 그래도 야망이 먼저인 건 확실한데, 사랑도 중요한 거 같아. 사랑이 있어야 행복할 거 같거든.

현우: 그게 불가능한 건 아니죠. 선생님의 이상형이 뭐였는데요, 야망이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쌤은 사랑이 중요한 사람이고요.

소현: 응.

현우: 야망이 있는 사람을 만나려면 먼저 야망이 있는 사람이 돼야죠.

소현: 원하는 이상형의 모습을 내가 갖추라는 말인가?

현우: 네. 멋진 사람을 만나려면 멋진 사람이 돼야죠. 그 이후에 사랑도 하면 되는 거고요.

소현: 그래. 고맙다. 그러면 욕망과 권태에 관련된 영화로 얘기해 보면 되겠다.

현우: 그건 좋은데요, 제 고민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소현: 응…?

소현: 패러디 글 써왔어?

현우: 네 써봤어요.

소현: 확실히 창작보다 덜 부담스럽지?

현우: 네.

소현: 그래. 글이 안 써져도 괜찮아. 이따 쓴 거 보여줘. 먼저 ‘소셜네트워크’ 다뤄보자.

현우: 좋아요. 쌤은 제 추천 영화 어떻게 보셨어요?

소현: 네가 지난주에 야망을 좇으라고 조언해주고 이 영화를 추천했잖아. 거기에 초점을 맞춰보면 내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영화지. 주커버그는 불도저 같이 달려나간 사람이잖아.

현우: 그쵸. 억만장자까지 됐는데.

소현: 그렇긴 한데, 주인공 개인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해보면 과연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현우: 특히나 마지막 장면을 보면 모든 사건이 끝나고도 행복해보이지 않는 주커버그 모습이 나오죠.

소현: 그래서 오히려 묻고 싶은 게, 어떤 의미로 이 영화를 추천한 거야?

현우: 선생님이 잃어버렸다던 야망에 대한 불을 다시 지펴드리기 위해서요.

소현: 근데 주커버그가 행복해 보이지 않잖아.

현우: 야망을 이룬 게 맞을까요?

소현: 난 아니라고 생각해.

현우: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소현: 진짜 야망이 페이스북의 성공이 아니라 사회적 유대감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창립 초기에는 하버드대학만의 커뮤니티 회장이 되겠다는 포부로 시작했고 중간에는 보스턴대학에 다니는 전 여친이 자신의 성공을 보게 하려고 했잖아. 그런 모습들을 보면 사회적 유대관계가 더 본질적인 목표였다고 생각해. 근데 그 목표를 이루는 데에는 실패한 거지.

현우: 저도 야망을 이룬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쌤 생각과 좀 다른 건, 페이스북의 성공이 주커버그만의 야망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루지 못한 거죠.

소현: 왜 주커버그만의 야망이 아니었는데?

현우: 중간에 숀 파커라는 사업가가 주커버그를 찾아오잖아요. 억만장자로 만들어주겠다면서 사업 아이디어를 제공하죠. 근데 주커버그는 억만장자에 대한 욕심보다는 그저 자신이 잘하는 프로그래밍으로 뭔가 만들어내고 그게 성공적으로 가동이 됐을 때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마이크로소프트가 비싸게 사겠다고 했는데도 무료로 풀었다고 하잖아요. 숀 파커를 만나기 전까지는 순전히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데에 만족감을 느끼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행복감을 느꼈던 거죠. 하지만 숀을 만나고부터 갑자기 자신의 목표가 변질된 거예요. 그게 자신의 원래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억만장자가 된 뒤에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 거죠.

소현: 그러면 야망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나랑 다르지 않네. 결국 같은 맥락에서 주커버그가 야망을 이룬 게 아니라고 보는 거니까. 그리고 페이스북의 성공 과정에서 두 번의 소송을 치르는 것도 본래 목표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어. 페이스북은 친구 맺고 싶은 사람들과 연결되는 서비스인데,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의 초기 아이디어를 제공했던 위클리보스 형제와도 소송을 하게 되고 창립 멤버인 왈도랑도 소송을 하게 됐으니까.

현우: 아이러니하네요. 사람들을 연결 짓는 사이트를 만든 사람이 되려 친한 사람들과 싸운다는 게요. 결국엔 주커버그 옆에는 친했던 친구들은 한 명도 안 남게 되잖아요.

소현: 심지어 주커버그를 억만장자라는 새로운 야망으로 이끈 숀 파커 때문에 페이스북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으니까, 숀도 주커버그와 진정한 유대를 맺는다고 볼 수 없지. 그저 서로 이익을 위한 관계였던 거야.

현우: 결국 주커버그는 돈은 많아도 야망을 이루지 못한 인물인 거네요.

소현: 그럼 야망이 뭘까. 사전적으로는 원대한 희망인데, 사실 주커버그의 억만장자 야망도 사전적 의미로만 보면 야망이 맞잖아. 원대한 희망을 이루고 나면 행복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진짜 야망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우: 행복하지 않으면 야망을 이뤄도 의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야망이 미래의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미래의 모습은 우리의 이상향인 거잖아요. 그리고 사람은 항상 이상향과 행복을 좇으면서 살고요. 인간의 이상과 행복이 합쳐져서 야망이라 불리는 거 아닐까요?

소현: 애초에 야망을 꿈꿀 때는 행복하기 위해서지 불행하기 위해서 야망을 꿈꾸는 사람은 없겠지. 근데 많은 사람들이 주커버그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것 같아. 중간에 진짜 자신이 꿈꿨던 목표가 변질되는 거야. 혹은, 정말 확실한 목표로 달려갔는데 막상 이루고 보니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고.

현우: 야망을 이뤘을 때 행복한 게 아니라, 야망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는 게 행복한 거 아닐까요? 목표는 우리의 삶에서 방향성을 제시하고 동시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 꿈꾸게 해주는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지난주에 욕망을 좇는 것이 곧 행복이라고 했던 거예요.

소현: 좀 비극적일 수도 있는데, 네 말대로라면 어쩌면 야망을 이루고 나면 필연적으로 권태가 찾아올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해. 욕망을 좇는 과정이 행복이라는 말에 완전 동의하거든. 근데 그렇게 되면, 욕망을 달성하고 났을 땐 더 이상 행복이 아닌 게 되잖아. 그래서 쇼펜하우어가 인생은 결핍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라고 했나 봐. 웃긴 건, 욕망하지 않을 때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으니 권태롭다는 거야. 그래서 꿈을 꾸는 게 힘들지언정, 죽을 때까지 꿈을 꾸면서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 게 돼.

현우: 그러면 쌤도 지난주보다 행복하시겠네요. 다시 꿈을 꾸시잖아요.

소현: 맞아. 네 덕분이지. 뭔가 이루고 싶은 게 생기면 엄청 설레게 돼. 너도 미술이나 운동보다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설렜을 거 아니야. 그게 처음으로 진짜 네가 하고 싶은 거였으니까.

현우: 그렇겠죠. 잘 안 풀려서 힘들어도 행복하다고 느끼니까요. 그래서 쌤은 새로 꾼 꿈이 뭔데요?

소현: 새로운 꿈이라기보다 다시 꾸는 꿈이야. 나도 글을 쓰고 싶어. 근데 나는 영화감독은 아니고 작가로. 꼭 시나리오 작가가 아니어도, 내 글을 세상에 남기고 싶은 게 어릴 때부터 내 꿈이었어.

현우: 돌아오는 겨울 방학 때 영화 찍으면 되겠네요. 쌤이 시나리오 쓰시면 제가 연출할게요.

소현: 좋네.

현우: 영혼이 없네요….

소현: 우선 네 입시부터 끝나고 생각하자.

현우: 네. 그 야망 포기하지 마세요.

소현: 그래. 너도 포기하지 마. 하고 싶은 게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인 거니까.

현우: 그쵸. 그리고 주커버그처럼 모든 걸 가진 것 같아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 야망이 되지 않으려면 방향성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야망은 누가 대신 이뤄주는 게 아니잖아요.

소현: 방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