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비긴 어게인

특성화고 영상과 선생님과 학생의 방과 후 수업

소현: 네가 나보고 야망이 없다고 했을 때 ‘비긴 어게인’이 떠올랐다고 했잖아. 왜 그랬는 줄 알아?

현우: 왜요?

소현: 네가 그때 내가 야망을 잊고 있었다고 하니까 그랬거든. ‘선생님, 다시 시작하면 되죠.’라고. 그래서 그날 이 영화를 다시 봤어. 그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어진 거지.

현우: 뭘 하고 싶으신데요?

소현: 글을 써야지. 우리가 지금까지 수업했던 걸 기록으로 남겨보고 싶어.

현우: 재밌을까요?

소현: 시작도 안 했는데 기부터 꺾는 거야?

현우: 아니, 선생님한테 있어서요.

소현: 난 너무 재밌을 것 같으니까 하는 거지. 일단 방과 후 수업하면서 내가 너한테 배우고 느낀 걸 기록으로 남기는 게 가치 있는 일이잖아. 그리고 너도 많이 도와줘야 돼.

현우: 네. 저야 좋죠.

소현: 우리가 다뤘던 영화들, 그 영화들로 나눴던 대화를 기록할 거야. 그리고 글의 최종적인 목표는 사제 간에 선생님만 가르침을 주는 게 아니라, 학생도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야. 너한테는 우리 방과 후 수업이 재미있었어?

현우: 재밌었죠.

소현: 그럼 됐지. 그날 ‘비긴 어게인’을 다시 보고 오랜만에 설렘을 느꼈어.

현우: 요즘 많이 외로우신가 봐요.

소현: …. 그게 아니라,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좋아하는 걸 할 때 느끼는 희열이 느껴졌다는 거야.

현우: 근데 아직 시작 안 하셨잖아요.

소현: 지금 너한테 말하고 있잖아. 이제 시작할 거라고.

현우: 네.

소현: 근데 영화를 다시 보니까, 그레타랑 댄 키스 신이 사라졌더라고.

현우: 키스 신이 있었어요?

소현: 내 기억에는 분명 있었거든. 그래서 찾아보니까 없앴대. 난 키스 신 버전이 훨씬 좋다고 생각하는데.

현우: 거기서 둘이 키스를 하면 이상할 거 같은데요.

소현: 왜? 나는 그 신이 사라져서 영화의 주제가 옅어졌다고 생각해.

현우: 그레타는 자신의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었잖아요. 하지만 남자 친구와의 이별 후 사랑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댄과 키스를 해버리면 다시 돌아가 버리는 거잖아요. 게다가 댄은 사랑하는 자신의 가족이 있고요. 이 영화는 주인공이 성장하는 영환데, 저는 키스 신을 안 봐서 모르겠지만 상상해보니까 살짝 별로일 것 같네요.

소현: 그래서 더 키스 신이 있는 게 주제가 부각되는 거라니까?  네 말처럼 키스 신은 그레타가 또다시 타인에, 사랑에 의지하려는 모습인 거지. 그레타가 댄에게 먼저 키스를 했는데, 댄이 거절하거든. 그레타가 사랑에 실패해서 자신의 길을 가다가 상실감을 채워준 댄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거겠지. 근데 거절당했으니 또다시 사랑에 외면당한 거잖아. 좌절할 법도 한데, 결국 그레타가 마지막에 혼자 자전거를 타고 미소를 지으면서 나아가는 장면으로 끝나. 어떻게 사람이 한 번에 높이 점프하듯 성장을 하겠어. 그레타의 성장에 있어서 또 한 번의 같은 시련에도 이번엔 진정으로 홀로 서겠다는 모습을 보여준 거야. 나도 그레타처럼 사랑에 의지하지 않고 나만의 야망을 이뤄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 이 영화가 좋았던 거지.

현우: 좋네요. 어딘가에 휘둘리지 않고 선생님의 야망을 꿈꾸니까요.

소현: 그래. 키스 신 버전을 구할 수 있으면 꼭 봐봐. 궁금한 게 있어.

현우: 뭔데요?

소현: 만약에 네가 데이브라면, 어떻게 했을 거 같아?

현우: 뭘 어떻게 해요?

소현: 데이브한테 두 번의 기회가 있잖아. 첫 번째로는 성공하고 그레타를 버렸는데, 그러지 않았을 수도 있지. 두 번째로는 다시 만나보자고 제안하면서 그레타가 선물한 음악을 그레타 작곡 버전으로 부를지 자신만의 버전으로 부를지 선택할 기회가 있었잖아. 데이브는 결국 자기 버전으로 불렀고.

현우: 일단 첫 번째는 데이브가 그냥 나쁜 놈이니까 논외인 거 같고요, 두 번째는 저만의 버전으로 부르죠.

소현: 아, 그래? 그럼 데이브도 사랑보다 자신의 야망을 택한 거네. 너도 사랑보다 야망을 택하는 거야?

현우: 그쵸. 그레타하고 같은 맥락인 거죠. 그러니까 그레타도 엔딩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미소를 띄는 거잖아요. 슬퍼하지 않고요. ‘라라랜드’하고 비슷한 결말이죠. 서로의 꿈을 존중해주니까요.

소현: 좀 다른 것 같아. 서로의 꿈을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 게 아니라, 데이브는 자기 야망이 더 소중하니까 헤어진 거잖아.

현우: 그레타도 비슷한 거 아닐까요?

소현: 헤어짐이 그레타의 의지가 아니었잖아.

현우: 그 헤어짐이 첫 번째 헤어짐을 말하는 거예요, 두 번째 헤어짐을 말하는 거예요?

소현: 아, 그러네. 두 번째 헤어짐은 그레타도 자기 야망을 좇은 거네.

현우: 그러니까요. 서로의 길을 향해 간 거죠. 서로가 잘하는 걸 향해서요.

소현: 그래도 그 둘의 이별은 좀 비겁한 이별이었던 것 같아.

현우: 이별에 비겁함이 어딨어요. 그냥 둘이 안 맞으니까 헤어진 거죠. 바람을 피운 건 비겁한 게 맞는데, 결국에는 좋게 끝났잖아요.

소현: 세상에 좋은 이별이 어딨냐. 이별은 무조건 상처가 되는 거야. 단 며칠 사귄 거였어도 얼마 전에 헤어진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잊어버렸던 야망을 되찾기까지 했잖아. 얼마나 상처가 됐으면.

현우: 이별은 상처가 아닙니다. 서로 종착지로 가는 길이 다를 뿐인 거죠.

소현: 종착지가 어딘데?

현우: 인연이란 말이 있잖아요. 언젠가 다시 만날 텐데, 만나러 가는 길이 다를 뿐인 거죠.

소현: 이해가 안 돼. 만나다 헤어졌으면 그냥 거기까지가 인연인 거지, 어떻게 만나러 간다는 거야?

현우: 선생님, 이별은요 필연적인 겁니다. 언제든 헤어져야 해요. 하지만 그 이별을 좋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냥 이 이별이 끝이고 다시는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언젠가 다시 만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소현: 오~ 많이 컸는데~! 결과적으로는 그게 맞다고 생각해. 어쨌든 지금까지의 이별들 덕분에 나도 더 성숙하고 발전했으니까. 결국 상처가 성장의 발판이 되는 거지.

현우: 그냥 가는 길이 다르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언젠가 다시 만날 장소에서 지금보다 더 멋지고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면 되잖아요.

소현: 그래. 반박할 수가 없다. 네 말대로 더 멋지고 성장한 모습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네. 이제 오늘로써 방과 후 수업은 끝인데, 뭐, 하고 싶은 말 있어?

현우: 선생님 그래서, 결국 사랑이 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