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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김소보로의 슬픔과 기쁨



 내 고향 대전에는 튀김소보로가 명물이다. 성심당에서 판다. 성심당빵집의 허다하게 맛있는 빵을 제치고 튀김소보로가 어쩌다 시그니처가 되었다.

 대전은 부모님이 계시니 가끔 간다. 명절에도 가고 부모님 생신에도 가고 방학에 부모님 찾아뵈러도 간다. 대전이 고향이라고 하면 혹시 튀소를 사다줄 수 있는지  사다 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받는다. 한 번은 대전에서 택배로 보내주었고 그 후 어떻게 시간과 여건이 되면  사가지고 들어와 공항에서 건네준 적이 있다. (나는 되도록 남의 부탁을 들어준다. 거절을 못한다기 보다는, 그런 일을 기쁘게 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해준다. 조금 힘들어도, 그 조금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번 육지 나들이는 제주->대구->대전->청주->제주였다.

돌아오는 대전->청주->제주에서 성심당 튀소를 사려면 약간 무리를 해야 했다.

튀소를 받은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는 너무 지난하므로 그냥 사다가 던져 주었으나, 실은 조금 귀찮고 번거로운 절차가 있었다.


 성심당 튀소를 사지 않는다면 깔끔 무난한 일정. 

친정집-> 걸어서 15분 서대전역->조치원역에서 친구만남. 친구랑 청주에서 시간 보내고 청주공항에 데려다 줌-> 제주공항->제주집


 성심당 튀소를 사간다는 일이 끼어든 순간.

1. 캐리어 등 튀소를 담아 들어올 운반도구 조달해야 함.

2. 어떤 품목을 몇 개 사서 누구누구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머리써야 함.

3. 걸어서 15분 서대전역을    버스로 30분 이상 대전역으로 기차변경. 

4. 본점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전역 점도 길게 줄 서서 대기하고, 다른 빵을 사려면 튀소대기줄과 다른 줄에 또 서야 하고.....

5. 사서 가방에 잘 쟁이고 애지중지 모셔서 잘 데리고 들어와야 함.

6. 공정하고 빠른 배부를 위해 또 추가의 정신적 시간적 에너지를 써야 함.

7. 그리고 끝으로 돈 타령. 이건 돈이 드는 일이다.


왜 나는 남들을 위해 이런 걸 기꺼이 자처하는가

이것은 오지랖 아닌가

돈 없다 돈 없다 타령을 하는데, 이런 거에 돈을 쓰니 당연히 돈이 없지란 자조의 마음.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원인이나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가봄.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자꾸 이거 저거 하는 게 문제.

역시 선택과 집중의 문제로 돌아감.

자꾸 남일에 나서고 싶고 도와주고 싶음-> 너나 잘하세요!


 그래서 요즘은 내 한정된 에너지로 할 수 있는 일들과 해야만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구분하려 애를 쓴다.

전제하고 말하지만 누구에게나 24시간은 동일하게 주어졌다고 이야기되며, 에너지가 샘솟는 것이 아니니 주어진 안에서 잘 배분해서 사용해야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처럼 계획적이지 않고 충동적이며 기분 체력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유사한 사람은 더 그렇다. 기분이 좋아서 할 수 있는 것 같았지만, 주저앉고 마는 일, 다 때려치우고 싶은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오늘의 제목은 슬픔과 기쁨이다. 여기까지는 슬픔이었다. (노래는 구와 숫자들의 평정심)

기쁨으로 하여 이 글을 시작되었다. 나는 프로청강러이다. 대학원생인데(평균적인 대학원생 치고도 아주 나이가 많다.....) 좋은 교수님을 만나, 내가 원하는 학부생들의 강의를 청강한다. 창피하기도 하다만 교수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오히려 우대하시면서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해 주신다. 배우는 기쁨과 애기들 보는 기쁨에 학부수업을 이번학기는 2개 듣는다.


 수업시간에 이쁜 애기들(엄마 미소... 나는 아무래도 엄마의 입장에서 애들을 보게 된다) 먹이고 싶은 마음에 성심당 그 긴 줄, 사가지고 들어오는 수고, 들고 학교에 가는 수고, 아이들에게 내밀 때의 부끄러움을 해냈다. 그런데 아이들의 반응이 놀라웠다. 그날 당장 수업시간 전에 옆 건물의 커피숍에 가서 차를 사다 준 아이가 시작이었고, 그다음에는 수업시간 전에 잘 먹었다고 개인인사를 하는 아이들, 처음 먹어봤다며 인생 첫 튀소라며 웃는 아이........ 초콜릿에 짧은 글귀를 써준 아이, 초코머핀을 사준 아이 등등.


 이런 기쁨 처음이야...... 나 포함 8명이라는 소수인원, 3~4학년쯤 되고 남자아이들은 군대를 다녀온 후라 어느 정도 나이가 있고 수업시간 분위기 좋고 등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요즘 아이들 각박하고 지들밖에 모른다는 건 너무 단편적으로 규정한 결과이다. 물론 내가 그거 믿고 학부 청강을 들어가기도 한다. 요즘 애들은 남에게 관심이 없고 누가 있는지 없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서 부담 없이 수업을 들어가기도 했다.


 정이 많이 들었고, 내가 2022년도에 이 수업을 들은 바 있었는데, 이 수업은 학습내용보다 누가 어떤 도시를 발표하느냐에 따라 수업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번에는 폐강을 면한 소수인원이 아주 즐겁게 거의 대학원 수준의 내용과 발표로 하여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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