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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 May 11. 2024

또박또박 만든 음식이란

휙휙도 아닌, 척척도 아닌

지난 토요일 아침, ‘작은새’라는 식당에 다녀왔습니다. 참 정겨운 이름이지요. 이곳은 제철 식재료로 매 계절마다 다양한 음식을 만드는 작은 식당입니다. 요리를 만드는 사람은 단 한 명. 수수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식재료를 썰고 그릇을 나르고 손님을 안내합니다. 영업시간은 아침 9시부터 낮 3시까지. 딱 필요한 만큼의 식재료를 준비해, 하루에 딱 적당한 수만큼의 메뉴를 만듭니다. 한적한 골목 깊숙한 곳에 얌전히 자리한 이 식당을 보면 마치 영화 <카모메 식당>, 드라마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는 날>에 나오는 식당이 절로 떠오릅니다.


5월의 야심찬 메뉴, 봄의 채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주먹밥 플레이트’를 먹으러 찾아갔지만, 제 앞에서 재료가 소진되어 토마토를 곁들인 ‘봄봄 달래 파스타’를 주문했습니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공간을 찬찬히 둘러보고 뒷자리의 아이 손님의 재잘거림에도 귀를 기울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또박또박’이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식당이라고요.



이곳에는 색연필로 손수 음식을 그려 넣고 메뉴 이름을 적어 만든 메뉴판, 달마다 제철 음식들이 형형색색의 일러스트로 그려진 달력이 있습니다. 마치 작은 초등학교 교실처럼 앙증맞고 즐거운 놀람과 배움이 녹아 있습니다. 한쪽에 놓인 수첩에는 그동안 만들어 왔던 음식들이 차곡차곡 아카이빙 되어있는데, 그 이름도 ‘초당옥수수리조또’, ‘포도파스타’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메뉴 한가득입니다.



계절을 앞서거나 뒤서있는 갖가지 음식들이 아닌, 지금 이 계절에 자연스럽게 수확되는 음식들을 즐겁게 고른다. 그 음식들로 낼 수 있는 조화롭고 맛있는 한 끼를 고민하고 새롭게 내어놓는다. 그렇게 한 사람이 오래 들여온 정성과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와, 새우다!“ 마침 감탄하는 뒷자리의 아이 손님의 담백한 외침처럼 저도 몰랐던 새로운 제철 음식들을 하나하나 공부하는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한 사람이 요리하는 식당이기에 35분 정도의 오랜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내내 조리대를 넘어 흘러드는 싱싱한 제철 식재료들의 냄새, 귀를 간지럽히는 조리 소리, 피아노 학원에서 들려올 법한 단순한 멜로디의 음악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이렇게나 시간을 들여 음식을 기다려 본 일이 얼마만인지요. 음식을 정성껏 만든다는 것은 수고로움이 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주문한 지 몇 분만에 휙휙 만들어져 나오는 식당의 음식, 척척 내어놓던 엄마의 음식을 먹어 오느라 눈앞에 차려진 요리 너머의 시간과 정성을 헤아릴 새가 없이 살아온 것 같습니다. 일상 속에서 때로는 느껴 봐도 좋을, 이유 있는 기다림을 배워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곳에는 휙휙도, 척척도 아닌 ‘또박또박’ 만든 음식이 놓입니다. 휙휙은 빠르고 날쌥니다. 척척은 힘 있고 시원스럽고요. 그렇다면 또박또박은 어떨까요? 또박또박하다는 것은 청순하고 정직하다는 뜻입니다. 글자를 처음 배운 어린아이가 한 획 한 획 또박또박 적는 글씨처럼, 피아노를 또박또박 치는 것처럼, 여유로운 사람이 발바닥을 땅에 잘 딛고 걷는 걸음처럼요.


이곳의 음식에는 무엇인가를 매번 새롭게 알아가는 초심의 청순함, 한 사람이 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속도, 지금 이 순간에 즐길 수 있는 것을 보듬는 계절의 정직한 맛이 깃들어 있습니다. 음식을 먹는 사람도 덩달아 아이처럼 새로운 제철 음식과 맛을 알게 되고, 마땅한 기다림을 배우는 마음이 됩니다.



소박한 공간과 소리, 맛있는 제철의 맛. 그 모든 것이 삼삼하고 포근하게 어우러져 마치 한 편의 소곡집을 듣는 듯한 아침 식사였습니다. 모든 메뉴를 도장깨기하며 무궁무진한 제철의 맛들을 하나하나 공부해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답니다. 조만간 봄이 다 가기 전에 다시 주먹밥 플레이트를 먹으러 찾아가야겠어요.


세상을 처음 알아가는 아이처럼 지금 이 순간 즐길 수 있는 풍경들을 음미해 보세요. 이번 주엔 5월의 제철 음식들을 즐기고, 늘 휙휙 그리고 척척 해냈던 동작들을 또박또박 해 보면 어떨까요? 그 안에 평온한 기다림과 정직한 즐거움이 찾아올 거예요.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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