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시 Jul 29. 2024

이름을 묻지 않는 모임

인맥이 아닌 인연을 만든다는 것

지난 토요일 아침에 Run & Coffee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평소 주말이라면 눈도 뜨지 않았을 아침 7시 반, 낯선 사람들과 함께 경복궁을 두 바퀴 달리고 커피를 마셨습니다. 달리기라곤 혼자 제멋대로밖에 한 적 없었던 탓에 처음 본 사람들과 호흡을 맞춰 함께 달린다는 것에 무척 설레는 동시에, 실은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도 무척 기대되었습니다. 새로운 인연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근거리는 예감도 들었습니다.


더운 여름의 열기 속 러닝을 마치고, 10명 남짓한 일행들과 아침부터 여는 카페로 향했습니다. 각자 마시고 싶은 커피를 주문하고 어쩌다 자연스레 대화를 튼 사람 한두 명과 삼삼오오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특별히 다 같이 빙 둘러앉는다거나 이 사람 저 사람 이름을 묻는 시간 따로 없이 무척 담백한 대화만이 도란도란 흘렀습니다.


“슬슬 마무리해 볼까요?“


2시간 남짓의 Run & Coffee 모임은 그것으로 끝. ‘반가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이런 인사들을 하며 각자 사뿐한 발걸음으로 돌아서 제 갈 길로 걸어갔습니다. 서로 SNS 계정을 교환하거나 하는 일 없이, 심지어는 서로의 이름조차도 묻지 않은 채로 헤어졌습니다. 좋은 인상과 취미를 가진 이 사람들과 조금 더 알아가고 싶었기에 아쉬움을 살짝 감추고 저도 버스를 타러 향했습니다. 그 길을 걸으며 가는 방향이 같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실은 저 자기소개도 준비했어요.“ 한 분이 킥킥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빙 둘러앉아 서로 소개도 하고 소감 토크도 할 줄 알았거든요.“, “저도요.”


결국 그 분과도 이름도 나누지 못한 채 헤어졌습니다. 홀로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아, 아쉬움이 남았던 건 나만이 아니었구나’ 그런 생각에 웃음이 나는 한편, 갑자기 ‘이것도 이대로 좋다’라는 홀가분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문득 4년 전, 친구와 함께 떠났던 제주 여행이 떠오릅니다. 우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저희 둘과 같은 방을 쓰게 된 언니들을 만났습니다. 각자 홀로 떠나 온 여행객들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공용 공간의 탁자에 둘러앉은 우리들은 우도 막걸리와 함께 늦은 밤이 지나도록 깊은 수다를 떨었습니다. 처음 본 사람과 함께하는 대화 특유의 간지럽고 화기애애하며 한없이 다정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름 친밀해지고 유대감이 쌓였다 생각한 친구는 이 인연을 집에 돌아가서도 이어가고 싶은 마음에, 한 언니에게 연락처를 물어봤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언니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되도록 연락처를 나누지 않는다며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의 추억은 여기에 둠으로써 더욱 특별한 추억으로 남겨두고 싶다고요. 친구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으면서도 조금은 서운했다며, 그 이야기를 저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저도 덩달아 서운하면서도 동시에 언니의 마음을 알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여행지나 한 차례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진 소중한 인연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특별한 추억을 나누고서도 별 다른 사이로 더 이어지지 못하고 그쯤에서 마무리된 인연들도 여럿 있습니다. 그중엔 아쉽게 돌아선 사람도, 서로 그쯤이 딱 좋다고 생각하여 깔끔하게 갈 길을 떠났던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그것대로 좋지 아니한가, 이러한 마음이 드는 것은 인연이란 꼭 나의 휴대폰 속 연락처 목록으로 소유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나눈 시간 자체를 소중히 간직함으로써 유용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부터 새로운 만남을 가질 때 내심 이런 기대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을 새로 알게 될까, 어떤 새로운 인연을 얻게 될까, 하고요.


‘얻는다.‘


그러한 기대를 하고 마는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SNS든 전화번호든 인덱스에 차곡차곡 쌓아야 할 것 같은 수집욕 같은 걸까요. 그리고 끝내 그 어떤 유의미한 ‘교환’이 일어나지 않았을 땐 속으로 아쉬움이 들 때도 종종 있습니다. 저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커넥션이 있을 줄 알았는데(웃음)”하고 말했던 러닝 모임에서의 마지막에 만났던 분의 말처럼요. 어쩌다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좋은 사람을 알게 되어 더 깊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연을 ‘만든다’라거나 ’얻는다‘는 개념에 익숙해져 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인맥이 곧 힘인 현대 사회를 살아가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인연을 얻지 못한‘ 만남이라고 해서 과연 소득 없는 만남일까요?


‘사람들 사이에 이어지는 관계‘를 의미하는 ‘인연(因緣)‘. 알고 보니 ’인‘이라는 단어가 ‘사람 인(人)‘이 아니라 ’인할 인(因)’입니다. 반면 ‘인맥(人脈)의 ‘인’은 ‘사람 인(人)’입니다. ‘사람’에 초점을 두면 인연을 만들었는가 아닌가의 여부를 따지게 되지만, 진정한 인연을 만든다는 것은, 만나게 된 연유나 상황을 소중히 바라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러닝이라는 공통된 관심사가 있다는 이유 하나로 한날한시에 같은 곳에서 만나게 된 이 Run & Coffee 모임처럼요.


새로운 사람을 사귀기 위한 만남이 아니라 ‘함께 달리고 마신다’라는 특별한 순간에 온전히 몰입하다 때가 되면 산뜻하게 헤어지는 만남, 그런 인연도 소중한 것 아닐까요? 그 순간뿐이기에 더욱 기억에 남고 애틋해지는 인연들이 있습니다. 만약 그때 제주도에서 만났던 언니와 인스타그램을 서로 맞팔했다면, 그래서 인스타 스토리를 통해 매일 같이 사적인 일상을 하릴없이 넘기는 사이로 남았다면 과연 그 한여름밤의 꿈같던 여행의 여운이 순수하게 이어졌을까요?


인연은 꼭 ‘가져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연을 무리해서 인맥으로 만들지 않아도 충분합니다. 어떤 우연하고 소중한 연유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였다 헤어진다. 그러한 만남의 줄거리로서 이미 애틋하고 특별한 것입니다.


그곳에 남겨두어 비로소 추억이 되는 인연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좋은 기회로 무언가를 함께 했을 때 그 사람과 이어질 앞으로의 어느 날이 아니라 그 순간 함께 보고 느끼고 있는 현재의 풍경에 오롯이 집중해 봐도 좋지 않을까요?


스쳐 지나가더라도 정말 인연이 될 사람과는, 장담컨대 언젠가 반드시 또 만나게 될 테니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