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2003)' 속 사랑의 시각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 작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제는 무엇일까요? 모르긴 몰라도 모든 장르의 예술을 통틀어 ‘사랑'만큼 많이 쓰인 주제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감정의 추상적인 속성을 예술가들은 작품 안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형상화할까요?
여러 장르 중 가장 대중적이라 할 수 있는 영화에서 살펴보면,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클로저(2004)'에서는 이러한 사랑의 추상적인 속성을 그대로 표현하기도 하고,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2014)'는 감성의 영역인 사랑을 이성의 영역을 이용해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방식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사랑을 시각화하는 데 있어서 가장 공감이 되었던 작품을 한 편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바로 이누도 잇신 감독, 츠마부키 사토시와 이케와키 치즈루 주연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입니다.
국내에서도 ‘조제’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츠네오와 조제(쿠미코)의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대학생인 츠네오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우연히 조제를 만나게 되고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또 많은 연인이 그러하듯 이별을 맞이하죠. 너무나도 평범한 사랑 이야기 같지만, 이 작품은 사랑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감정들 즉, ‘사랑의 무게’를 시각화 해 표현해 줍니다.
다리에 장애를 가진 조제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혼자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츠네오는 조제를 유모차에 태워 이동하거나, 차에 태워 이동하기도 하고, 직접 업기도 합니다.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는 온 세상이 아름답고 무엇하나 힘든지 모릅니다. 츠네오도 조제에게 호감을 느낄 때는 그 무게가 전혀 힘들지 않고 너무 즐겁죠. 그렇게 사랑이 시작되고 일 년이란 시간이 흘렀을 때 둘 사이에도 변화가 생기고, 츠네오는 조제의 유모차를 더 이상 고치지 않고 버리게 됩니다. 마치 조제의 무게를 감당하던 츠네오의 사랑이라는 감정도 추진력을 잃은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동생의 조언과 코지가 빌려준 차로 여행을 떠나는 장면은 주변의 조언과 도움으로 다시 한번 사랑을 이어가는 모습과도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조제의 무게는 이전과 달리 너무나도 확실하게 느껴지죠. 사랑의 무게는 그대로인데 그걸 감당할 사람에겐 여러 변화가 생긴 것입니다.
이렇듯 영화는 츠네오의 감정의 변화를 유모차와 자동차 그리고 직접 업는 것으로 표현해 줍니다. 결국 츠네오는 그 무게를 내려놓고 이별을 택하게 됩니다.
이별하고 오는 길, 길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는 츠네오를 보면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따라서 무거운 짐은 동시에 가장 격렬한 생명의 완성에 대한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