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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넼 Aug 25. 2021

쳇 베이커, 그의 삶이 음악이었음을...

음악과 같은 삶, 음악과 같은 영화 '본 투 비 블루'

  대중들에게 알려진 '본 투 비 블루(born to be blue)'라는 제목의 예술 작품은 크게 두 작품이 있습니다. 먼저 로버트 웰스(Robert Wells)와 멜빈 하워드 토메(Melvin Howard Tommé), 두 아티스트가 1946년 쓴 재즈 음악입니다. 널리 알려진 곡들로 구성된 목록인 재즈 스탠더드 넘버(jazz standard)인 만큼 여러 연주자에 의해 연주되고, 많은 청자들에게 사랑받아온 유명한 곡입니다. 두 번째로 2016년 개봉한 로버트 뷔드로(Robert budreau) 감독 연출, 에단 호크(Ethan Hawke) 주연의 재즈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의 삶을 다룬 영화가 있습니다. 제목도 앞서 언급한 음악에서 따온 것이죠. 두 작품의 공통점은 웨스트 코스트 재즈와 쿨 재즈를 대표하는 재즈계의 제임스 딘, 트럼페터 ‘쳇 베이커(Chet Baker)’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 버전으로 리코딩된 노래 본 투 비 블루지만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버전이 감미로운 트럼펫 연주와 보컬을 자랑하는 쳇 베이커의 버전입니다. 영화 본 투 비 블루는 쳇 베이커의 삶을 다룬 영화이기에 말할 것도 없고요. 그렇다면 두 작품의 공통점이 제목과 쳇 베이커 두 가지밖에 없을까요? 저는 한 가지를 더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바로 두 작품의 형식입니다. 


Born to be blue 라는 제목의 두 작품, 그리고 쳇 베이커


  예술 작품에 있어서 형식이란 무엇일까요? 누군가는 창작자와 감상자를 가두는 감옥처럼 느낄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절제된 아름다움과 균형, 리듬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이렇듯 예술 작품의 형식이 전달해주는 조화와 균형, 리듬감을 형식미라고 하며, 형식미는 문학, 음악, 회화, 건축 등 예술 전 분야에 있어서 중요한 미학적 가치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또한 서로 다른 작품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 유사한 패턴의 발견은 색다른 이해와 즐거움을 줍니다.


그렇다면, 본 투 비 블루라는 제목의 두 작품은 그 형식에 어떤 유사성이 있을까요?


  먼저 음악 본 투 비 블루는 ‘겹두도막 형식’입니다. 겹두도막 형식은 재즈를 대표하는, 대중음악에서도 흔히 쓰이는 음악 형식이지요. 네 마디로 이루어진 A섹션과 그와 다른 네 마디의 B섹션이 AABA형식으로 서른 두 마디를 이루고 있는 형태입니다. 그래서 노래를 들었을 때 하나의 큰 주제 안에 A와 B라는 작은 두 주제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두 작은 주제가 하나의 큰 주제 안에서 반복되는 형태가 영화 본 투 비 블루에서 그려지는 쳇 베이커의 삶에서도 나타납니다.


겹두도막 형식의 'Born to be blue'


  먼저 영화에서 플래쉬백과 대사로 전해주는 쳇 베이커 과거의 모습이 있습니다. 군 제대를 하고 트럼펫 연주자로서 당대 최고의 뮤지션이었던 찰리 파커에게 인정받은 후 뉴욕으로 와 버드랜드에서 공연 하지만, 마일즈 데이비스에게 “인생을 더 살아보고 오라”고 혹평을 받게 되고, 계속 해오던 약물 중독으로 수감되기까지의 모습 말이죠. 이후 영화 관계자에 의해 감옥에서 나오지만, 약을 끊지 못한 그는 약을 사려고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앞니를 모두 잃게 됩니다. 앞니를 잃는다는 것은 트럼펫과 같은 관악기 연주자에게 매우 치명적인 일이었고, 쳇은 자신의 전부였던 음악을 계속하지 못하게 되자 다시 약물에 의존하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약물이라는 두 번의 A섹션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새로운 주제 즉 사랑으로 인한 B섹션이 시작됩니다.


  음악을 계속할 수 없게 되면서 홀로 남겨져 망가져가는 쳇 베이커. 그의 옆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제인의 사랑과 헌신으로 다시 음악을 시작할 용기를 얻습니다. 그리고 제인은 어린아이 같이 흔들리는 쳇을 붙잡아주고, 다독여 줍니다. 사람들에게 무시받으면서도 결국 음악에 대한 열정과 제인의 사랑으로 재기에 성공하게 되는 쳇. 결국 그렇게 원하던 버드 랜드에서의 공연을 다시 성사시킵니다.


제인과의 사랑으로 약물을 이겨내고 다시 기회를 얻지만...


  이렇게 해피 엔딩으로 영화가 마무리되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그에겐 다시 A섹션이 반복되고 맙니다. 쳇을 사랑하고 믿기에, 자신의 꿈을 위해 버드 랜드 공연에 함께하지 못하게 된 제인. 자신을 여기까지 이끌어준 제인 없이는 버드 랜드라는 중요한 무대에서, 그리고 마일즈 데이비스라는 거성 앞에서 연주할 수 없었던 쳇은 다시 약에 손을 대게 됩니다. 약의 기운으로 완벽한 연주를 선보이며 마일즈에게 인정받지만, 오디션을 미루고 온 제인은 쳇이 다시 약물에 손댄 것을 눈치채고 결국 그를 떠나게 됩니다.


  작품 안에서 그려지는 쳇 베이커는 인생의 큰 주제인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약을 선택했고, 약에 의한 결과로 약을 선택했으며, 약을 대체할 사랑을 선택했으나 사랑의 부재로 다시 약을 선택하게 됩니다. 마치 처음 언급해 드렸던 AABA의 형식처럼 말이죠. 영화에 등장하는 제인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실제로 죽기까지 쳇 베이커는 약을 끊지 못했습니다. 소원대로 유럽 투어를 떠나지만 결국 약물로 인해 유럽에서 어두운 말년을 보내게 됩니다.


결국 약물로 인해 어두운 말년을 보내게 된다.


  어떠신가요? 단편적인 모습을 통해 이야기를 한 것이지만, 이렇듯 예술의 형식과 패턴은 다른 예술에 적용해서 볼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인생과 삶 가운데서도 그러한 패턴을 찾아볼 수 있죠. 마치 영국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했던 “예술이 인생을 흉내 내는 것 이상으로 인생도 예술을 흉내 낸다.”는 말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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