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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넼 Aug 14. 2021

저주를 풀어드립니다.

회전목마의 어원을 통해 본 '하울의 움직이는 성'

  여러분은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지브리의 작품은 빼놓지 않고 볼 정도로 좋아하는데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한 가지를 이야기하자면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시각적 연출과, 히사이시 조의 청각적 연출이 그들의 작품을 보는 이로 하여금 작품 속의 세계로 온전히 몰입하게끔 만들어주기 때문이죠. 이러한 두 사람의 시너지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그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인 ‘인생의 회전목마’라 생각하는데요. 아마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도 이 ‘인생의 회전목마’라는 음악은 많이들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지브리의 미야자키 하야오(좌)와 히사이시 조(우) 두 사람의 시너지가 극대화 된 작품, 하울의 움직이는 성(중앙)


  이 곡은 인생의 회전목마라는 제목처럼 서정적이고 대중적인 멜로디의 모티프가 고조되고, 또 잔잔해지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형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음악적 형식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돌고 돌아 결국 만나게 되는 하울과 소피의 인연이라는 작품의 내용과 굉장히 잘 들어맞는데요. 제목과 멜로디, 음악의 형식이 영화의 주제와 내러티브를 전달하는데 아주 탁월하게 작용했기에, 이 곡의 제목을 모르고 볼 때와 알고 볼 때의 감상의 깊이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만큼 이 작품에서 회전목마는 작품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인 것이죠. 더 나아가 회전목마의 어원을 통해 작품을 본다면 더욱더 풍성한 감상이 가능해진다는 거 알고 계신가요? 


  회전목마는 곡의 영어 제목처럼 메리-고-라운드(merry-go-round)로 번역됩니다. 그러나 같은 뜻을 가진 단어로 캐러셀(carousel)도 있죠.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로 소형 전투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는 이 단어는 그 기원 두가지를 살펴보면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먼저는 중세 유럽과 중동의 기마병들이 말을 탄 병사들의 모형을 줄에 매달고 모의 전투 훈련을 했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왕인 태양왕 루이 14세가 즐긴 마술 발레입니다. 어두운 밤, 광장에서 횃불을 든 기마병들이 음악에 맞춰 펼쳤다고 전해지죠. 

  두 기원을 통해 본다면 회전목마의 상징이 소나 양과 같은 다른 가축이 아닌 ‘말’인 이유를 알 수 있겠죠? 말은 그 어느 가축 보다도 전쟁과 관련이 깊은 가축이기 때문입니다. 첫 기원은 애초에 전투 훈련을 위한 것이고, 두 번째 기원의 주인공인 루이 14세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막대한 재정수입을 바탕으로 수많은 전쟁과 건축 사업을 통해 프랑스의 영광을 구현하고자 했던 인물이죠. 이러한 루이 14세의 마술 발레는 현재도 독재 국가에서 주기적으로 시행하는 열병식과도 닮아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두 기원 모두 전쟁과 관련되어 있으며, 시간이 지나 놀이 기구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놀이공원의 꽃 회전목마의 어원은 전쟁과 관련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회전목마의 어원을 통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살펴보면 어떨까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계속되는 전쟁 중인 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주인공 소피와 하울을 중심으로 여러 인물들이 전쟁에 얽혀있죠. 


  가업을 이어 모자가게에서 일하는 소피는 계속되는 전쟁 속에서 생계를 위해 자신의 꿈을 내려놓고, 너무나도 현실적인 모습으로 살아가죠. 좋게 말하면 어른스러운 것이고, 나쁘게 말한다면 동심을 잃은 것처럼 보입니다. 황야의 마녀의 저주로 늙어버린 모습은 이러한 그녀의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 버린 것이죠. 하울을 만나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녀가 자신의 나이에 맞는 솔직함을 드러내자 다시 젊은 모습을 보이다가도, 그 마음을 감추려 할 때 늙어 버리는 것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하울입니다. 하울은 어린 시절 우연한 계기로 악마 캘시퍼와 자신의 심장을 건 거래를 합니다. 이후 왕실의 마법사인 설리만의 제자로 들어가 재능 있는 마법사로 성장하죠. 하지만 이 작품 세계에서 마법사는 전쟁 중에 최전선에서 싸우는 병사로써 반복되는 전쟁 가운데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괴물의 형상이 되어갑니다. 힘을 얻는 대신 심장, 즉 자신의 본질을 잃어가는 것이죠. 하울은 이미 괴물이 되어버린 다른 마법사들을 보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저주에 걸려 할머니가 된 소피(좌)와 괴물이 되어가는 하울(우)

  작 중 소피와 하울의 모습은 생계를 위해 꿈을 포기하고, 전쟁터로 끌려가며 자신을 잃어가는 전쟁에 놓인 아이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하울의 스승 설리만이나 하울의 심장을 노리는 황야의 마녀와 같이 하울의 목숨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이 그의 힘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전쟁 속에서 허수아비가 된 한 나라의 지도자도 있고요. 결국 이러한 이해관계가 얽혀 두 사람은 위기의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마주하는 소피와, 전쟁 속에서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지키려는 하울, 두 사람의 모습은 결국 황야의 마녀의 탐욕스러운 마음을 돌리고, 저주에 걸려 죽어가던 이웃 나라 왕자의 본모습을 되찾아 그가 원래 있어야 할 위치로 돌아가게 해 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전쟁도 끝이 나게 되죠.


두 사람은 황야의 마녀의 마음을 돌리고, 이웃나라 왕자의 저주를 풀어준다.


  탐욕이라는 저주에 걸린 어른들로 인해 순수해야 할 아이들이 그 모습을 잃어가는 저주인 전쟁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너무나도 많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마치 끊임없이 돌고 도는 회전목마처럼 말이죠. 어쩌면 이러한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은 다시 순수했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말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저주가 풀리고, 우리의 삶에 평화가 찾아왔을 때 전쟁을 위한 도구마저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주는 놀이기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죠. 전쟁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고, 필사적으로 지키려 노력하던 두 아이의 모습이 아름다운 모험 이야기로 그려지듯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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