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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옙히 Apr 05. 2021

26 겨울 부다페스트의 야경

어부의 요새

여행에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실망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아쉬움을 삭히고 새롭게 내딛는 법을 배웠어야 했는데,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







크로아티아의 수도인 자그레브로 다시 10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사실 두브로브니크에서 자그레브까지 기차가 없고 비행기 아니면 버스 밖에 답이 없었는데, 장비와 짐을 고려하면 터무니없이 큰 비용이 발생해 울며 겨자 먹기로 버스를 이용했다.


허리를 두드리며 한 숙소에서 잠시 머물렀다.

숙소에서 한 사진작가를 만났다. 웨딩 사진을 주로 한다며, 내가 사진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사진 보정하는 법을 알려주겠다며 굉장히 가까이 다가왔다. 현직자의 기술을 본다는 것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열심히 눈에 담았다. 웨딩 사진은 풍경이나 일반적인 인물 사진보다 많은 기술을 요하기 때문에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배운 점이 많았다.


▲ 어부의 요새 전경.


6시간 기차를 타고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로 넘어왔다.

부다페스트는 특이한 도시인데, 다뉴브 강을 사이에 두고 부다와 페스트라는 두 도시가 존재하다가, 하나로 합쳐져 하나의 도시가 되었다. 소련의 점령으로 공산주의 정부가 있었던 흔적이 여전히 곳곳에 남아있었고, 내가 방문했을 때는 소련에 저항해 혁명을 일으켰던 1956년 헝가리 혁명의 60주년 행사가 열렸었다.



▲ 세체니 다리와 부다 성.
▲ 세체니 다리에서 본 부다 성.


부다페스트는 관광객들에게 야경으로 유명하다. 부다 성, 세체니 다리, 어부의 요새, 국회의사당이 도나우 강에 펼치는 야경은 일품으로 꼽힌다. 나도 그 기대를 가지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카메라를 들고 뛰쳐나갔는데, 대단히 실망했다.


그 모든 것이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정직하게 각자의 위치를 고수했다.

따로 떨어진 건물들은 적어도 나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또한, 그동안 지중해를 따라 돌면서 20도가 넘는 따뜻한 기온을 즐겼다가 내륙으로 오자 영하의 기온을 느껴야 했다. 그 때문인지 어떤 호기심이 아니라, 여기까지 왔으니 하는 의무감으로 부다페스트 구경을 했던 것 같다.


▲ 국회의사당.

겔레르트 언덕을 못 가본 것이 아쉽지만, 정말 너무 추웠다.

욕심을 겨우 낸 것이 어부의 요새였는데, 여행을 왔다면 반드시 찍는 창틀 사진을 어디서 찍는지 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요새 안에 있는 식당이 문을 닫으니 나는 사진을 못 찍겠구나 하며 숙소로 냉큼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부다페스트를 인생 야경 혹은 인생 여행지로 꼽는데,

내 기억 속에는 동 떨어진 채 조화롭지 못한 야경, 대단히 추운 날씨, 불편한 교통, 그리고 유로를 쓰지 않아 단기간 체류를 하는데 쓸데없는 부담이 되는 곳이었다. 여행을 하며 처음으로 후회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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