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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옙히 Apr 06. 2021

27 겨울 부다페스트의 야경

여행을 대하는 태도

여행에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실망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아쉬움을 삭히고 새롭게 내딛는 법을 배웠어야 했는데,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






나가기가 싫었다.

유일한 볼거리의 배신, 추운 날씨는 나가야 할 이유를 없애버렸다.

내게 배정된 침대에 앉아 사색에 잠긴다.

오늘은 무엇을 할지보다 왜 내 기분은 나빠졌는지를 생각한다.


여행에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실망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아쉬움을 삭히고 새롭게 내딛는 법을 배웠어야 했는데,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


실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법이 무엇일까.

그 답은 적어도 숙소에 있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 숙소 앞 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


유럽에서는 11월 말부터 길게는 2월 초까지 광장마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지역 주민들은 각자가 준비한 상품을 전시하고 사람들과 연휴를 즐긴다.

로마를 지날 때만 해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지 못했는데, 크로아티아를 지나 내륙으로 들어오자 종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숙소 앞은 부다페스트에서 제일 큰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던 광장이었는데, 글루바인 (데운 레드와인, 뱅쇼라고도 한다)을 마시는 사람들 틈에서 찬란하고 귀여운 상품들을 구경했다.


무기력한 하루를 반성하며 조금은 더 성숙해진 내일을 꿈꿨다.


▲ 회쇠크 광장의 모습.

평소 관심이 있었던 유럽의 역사를 다음날 볼 수 있었다. 혁명 60주년 행사를 하며 대테러 하우스의 전시를 도시 곳곳에서 알 수 있도록 많은 포스터가 붙어져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발길이 그곳에 닿았다. 

대테러 하우스는 헝가리에서 저지른 나치의 만행을 볼 수 있었고, 내부 사진을 찍을 수 없어 기록할 수는 없었지만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람의 지방 1kg의 크기를 벽돌로 형상화했는데, 나치가 헝가리에서 죽인 사람들의 수를 그 벽돌을 이용해 미로처럼 만들어놓은 전시 공간이 머리에 남는다.


대테러 하우스에서 나와 큰 도로를 따라 걸으면 영웅 광장으로 불리는 회쇠크 광장이 나온다.

광장 뒤에는 세체니 온천이 있어 온천에서 나온 수증기가 일대를 감싸는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광장의 좌측으로 돌아가면 부다페스트 북역이 나오는데, 이 300년 된 건물에는 아주 아름다운 곳이 있다.


▲ 북역의 맥도날드.


이곳에는 맥도날드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날드로 유명한 지점이다.

내부는 마치 궁처럼 꾸며져 있고, 사람들이 한참 줄을 서서 먹는 곳이다.

가까운 곳에 국회의사당도 있어서 그런지 현지인보다는 관광객이 더 많아 보였다.


사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국가별로 기념품을 사고 동시에 꼭 맥도날드를 들렸다.

나라별로 파는 메뉴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나서부터 그 나라에만 파는 메뉴를 먹어봤다.

우리나라는 불고기버거를 파는 것처럼 말이다.


다소 실망스러운 도시에서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 사실 한 도시에서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도시를 경험해보겠다며 일정을 쪼개가며 잦은 이동을 한 것에 지쳐갔던 것 같다.

여행을 대하는 새로운 태도를 기르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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