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과 수도원 맥주
진귀한 경험은 다시 여행할 힘을 준다.
거쳐간 도시, 나라가 머릿속에만 남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더욱 성숙해진 내가 다시 이곳에 돌아와
다시, 여행할 힘을 준다.
비엔나를 지나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에 도착했다. 일명 '유스호스텔'로 불리는 한 유명한 호스텔을 방문했는데, 어찌나 한국인들이 많이 방문하는지 한국인 스태프가 나를 맞이했다.
1층 좌측에는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과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잘츠부르크를 배경으로 했던 <사운드 오브 뮤직>이 상시 상영되고 있다고 했다. 우측에는 작은 펍으로 간단한 식사와 함께 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곳곳에서 들리는 우리말은 이 낯선 공간에 익숙함을 더했다.
비가 계속 내렸다. 오랜만에 궂은 날씨를 만난 기분이었다. 부다페스트는 춥고 흐리긴 했어도 비는 안 왔는데, 잘츠부르크에 있는 내내 비가 왔다. 숙소에 짐을 풀고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다정한 우리말을 벗어나 알아듣지 못하는 세계로 들어간다. 마카르트 다리 위의 자물쇠 사이를 지나며 애정을 건넌다. 짧지만 그리 짧지도 않은 다리를 지나면, 이내 곧 잘츠부르크의 시내라고 불리는 명품거리가 등장한다.
게트라이데 거리. 이 거리가 유명한 이유는 간판 때문이다. 중세시대부터 글을 모르는 사람도 가게를 알아보고 물건을 살 수 있도록 만든 간판은 곧 잘츠부르크의 자부심이 되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 바닥에 깔린 돌들이 제각각 만들어진 작은 웅덩이에 간판을 담을 때 나의 여행 습관이 되어버린 맥도날드 체험의 시간이 다가왔다.
2층 계단을 오르자마자 보이는 높은 테이블에 앉았다. 맥도날드 조차 간판을 멋스럽게 만들어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잘츠부르크는 그런 곳이었다. 후에 이 도시를 다시 방문하게 될 줄 알았다면, 나는 이 거리를 더 걸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잘츠부르크를 방문한 큰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는 음악도 잘 모르고, 심지어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영화도 보지 않았다. 그저 수도원 맥주를 먹을 수 있다는 이유로 찾아왔다. 종종 유럽에서는 수도원에서 생산하는 맥주를 맛볼 기회가 있다. 과거에는 신부님이 도시의 농경부터 경제, 정치를 관장했을 만큼 강력한 권력을 가졌었는데, 수도승들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도수가 높은 맥주를 생산하기까지 했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와 공장처럼 대량 생산으로까지 이어졌는데, 잘츠부르크는 심지어 도보를 이용해 수도원 맥주를 체험할 수 있다. 가장 접근성이 좋아 놓칠 수 없는 도시인 셈이다.
게트라이데 거리를 지나 도시의 구석으로 향한다. 높은 절벽이 나오고 그 절벽 뒤에 큰 나무 문을 밀면 아무 설명 없이 큰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따라 내려갈수록 말소리가 커지고, 이내 곧 많은 사람들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