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깨닫게 되는 것들(인간관계 편)

#오십대 #퇴직 #인간관계 #주마등 #터널시야 #시간

by 미스틱

등에 불을 밝히면 말이 달리는 그림자를 볼 수 있는데 이를 '주마등(走馬燈)'이라고 한다. 삼국시대부터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는 주마등은 원통형 등갓 안에 원통형의 골조를 만들고 그 골조에 말이 뛰는 그림을 오려 붙인 등으로 중앙에 촛불을 밝히면 열기가 등 안의 공기의 대류 현상을 일으켜 말 그림이 저절로 돌게 된다. 말 그림자가 빙빙 도는 주마등의 형상에서 세월의 빠름과 사물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것을 뜻하는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라는 말이 생겨났다.

주마등(走馬燈)


"눈을 떴다 감으니 벌써 팔십이네"라는 어느 노인의 심오한 말이 올해처럼 비수에 꽂힌 적은 없다. 회사를 잘 다니던 내가 갑자기 퇴직을 했고, 벌써 한 달이 지나갔으니 말이다. 28년간의 직장생활이 마치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 같다. 퇴직은 마치 죽음처럼 누구에게나 확실하게 일어날 사건(Incident)이지만 맞닥뜨리기 전까진 그것이 주는 의미를 절대 깨달을 수가 없는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빠르게 차를 몰아 어두운 터널로 들어가면 시야가 좁아지면서 터널의 출구만 동그랗게 밝게 보이고, 주변은 온통 깜깜해지면서 앞만 보고 달리는 '터널 시야(Tunnel vision)' 현상이 일어난다. 터널 시야에서는 주의력과 집중력이 높아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눈앞의 상황에만 집중하느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파악하는 능력이 저하되기도 한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은 산 정상을 향해 서둘러 올라야 한다는 조급함에 난 앞만 보고 걸음을 재촉했다. 계절에 따라 형형색색 바뀌는 등산로 주변의 이름 모를 들꽃과 야생초, 나무들의 자태와 향기,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누구든 산을 막 오르기 시작할 때는 적당한 설렘과 기대감, 그리고 체력과 여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험준한 산의 정상을 향해서 오르다 보면 시간이 갈수록 숨은 점점 가빠지고, 체력은 고갈되기 시작한다. 만약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산이라면? 내려가고 싶어도 그간 힘들게 올라온 것을 감안하면 쉽게 내려갈 엄두도, 용기도 나지 않는다. 올라갈수록 초심은 온데간데없고, 나만 보고 뒤를 따르는 사람들 때문에 주변은커녕 앞만 보고 걸음을 더 재촉할 수밖에 없다. 오르지도 못할 산 정상을 칠팔(7~8)부 능선에서 바라볼 때쯤 결국 체력은 고갈되어 버리고, 정신은 번아웃 상태가 되고 만다. 이젠 모든 걸 내려놓을 때가 된 것이다.


대구 팔공산 갓바위 정상에서


진정한 등산 애호가들은 산 정상에 올라 구름 아래 탁 트인 시야를 감상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오히려 등산 그 자체의 여정을 더 즐긴다고 한다. 하지만 직장생활의 특성상 여정을 즐기긴 매우 힘들다. 마음을 다 비워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조직에서 살아남고, 버티고, 이겨야만 올라가는 경쟁의 피라미드 구조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인의 연공서열의 정서로 볼 때 후배나 부하직원이 나를 제치고 상사로 승진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호주 출신의 작가이자 죽음을 목전에 앞둔 환자들을 수년 여 동안 병간호한 브로니 웨어의 책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남긴 후회 5가지》를 보면 '직장 일에 너무 바빴다'는 내용이 두 번째로 소개되고 있다. 남성 환자 대부분이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직장 업무를 위해 몸 바쳐 일했던 과거가 후회된다'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워라벨'을 중시하는 타입은 기업에서 크게 환영을 받지 못한다. 중간에 낙오가 될 확률도 높아진다. 특히 간부 이상이 되면 워커홀릭이 되지 않고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된다.


고은 시인은 <그 꽃>이라는 시에서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는 시구로 많은 독자들에게 '울컥'이라는 성찰의 울림을 선사했다. 잘 나가거나 잘 나갈 때는 보이지 않던 소중한 뭔가가 인생의 반환점을 돌거나 인생의 큰 사건을 겪은 후에 보일 수 있다는 게 이 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고은 시인의 시처럼 퇴직이라는 인생의 큰 사건을 겪은 후에 난 직장생활의 여정을 더 즐기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직장생활이라는 등산에서 주변을 더 둘러보고, 챙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기도 하고, 가까이 보면서 꽃들과 대화도 나누고, 쓰다듬어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꽃은 다시 보면 되는데 인간관계는 그렇지 않다. 올라갈 때 보지 못하면 그냥 그렇게 삶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오랜 직장생활 동안 난 퇴직한 선배들로부터 "있을 때 잘해라"란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퇴직한 후에도 만날 수 있는 인간관계를 구축하라는 뼈 때리는 충고였다.




터널 시야 속에서도 '업무는 공정하게고 엄격하게, 관계는 끈끈하고 친밀하게'라는 나만의 인간관계에 대한 개똥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선배와 같은 몰락과 후회의 전철의 밟지 않겠노라고 몇 번이나 다짐하고, 끈끈한 관계를 맺으려고 나름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의 적극적인 관계 구축에 대한 노력보다는 내가 오랜 기간 해왔던 인사 업무 경력과 배경, 그리고 고속 승진과 평판 등 운 좋은 나의 커리어 때문에 나를 따르는 직원들이 있었던 것뿐인데 말이다. 전형적인 '오만과 편견'의 태도였던 것 같다.


나의 이런 착각은 14년간의 점장과 본부장 시절에도 계속되었다. 난 마치 개선장군처럼 조직 내에서도 나름 능력이 뛰어나고, 인간성까지 겸비한 직원들을 선별해서 업무 지원과 멘토링을 아끼지 않았다. 마치 동서남북 네 방위를 지키는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와 같은 사신사(四神砂) 조직을 만들어 나의 인맥을 구축했다. 그들은 직장 내에서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나를 따르고, 주변의 소음과 잡음을 잠재울 수 있는 구성원들이었고, 나도 가끔 힘들 때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그런 구성원들이었다.


업무가 끝나 가끔 사적으로 술자리를 할 때는 '호형호제'까지 하면서 사적인 친밀감도 극대화했다. 어떤 점장, 본부장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름 나만의 관계 구축 방법에 자만심도 가득했던 것 같다. 현직에 있을 때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하지만 퇴직을 하면서 기존의 생각들이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재직 시절 나름 많은 공을 들이고, 친분을 만들었던 동료나 후배들의 경우 기대와 달리 인사치레 정도의 안부 전화가 다인 경우가 많았다. 반면 내가 소홀하게 대했거나 또는 이름도 잘 기억 안나는 현직 또는 퇴직한 직원들의 격려와 응원의 전화가 의외로 많았다. 참 아이러니했다. 퇴직한 지 이제 겨우 한 달도 안되었는데 난 직장 내 인간관계에 대한 무상(無常, 덧없음)의 감정이 맘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전엔 간도 쓸개도 빼줄 것처럼 내게 자주 안부 전화하고, 술자리도 만들고, 생일과 각종 기념일을 챙기던 직원들이 어느덧 썰물처럼 한꺼번에 빠져나가 버린 느낌이다. 이전에 '인맥도 관계도 애쓸 필요 없다'라는 글을 썼는데 막상 퇴직을 하고 나니 결국은 '상호성'의 원칙에서 모든 일이 돌아간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내가 더 이상 그들에게 줄 게 없다는 현실이 새삼 서글프게 느껴졌다.




이제부터는 직장을 떠나 새로운 인간관계와 인맥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 볼 시점이 된 것 같다. 누구나 알지만 막상 경험하게 되면 누구나 느끼는 그런 헛헛한 감정을 빨리 극복하는 것도 과제다. 물론 이전 직장에서 이어질 인연들은 더 소중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앞으로는 이전의 직장을 떠나 새롭게 나의 가치와 영향력의 원을 만들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어쩌면 나처럼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은 동병상련의 사람들끼리 말이다. 아픔과 상처를 겪은 사람들끼리 더 깊은 이해와 성장을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서로의 감정을 보듬고,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그런 관계를 만들어 가고 싶다. 상대방과 내가 가진 그대로의 모습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관계 말이다. 이젠 평생 동안 함께 가야 할 관계를 만들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이해 관계가 아닌 이타적인 관계,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이 행복한 관계, 내 행복과 불행을 함께 기뻐하고, 아파하는 그런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고,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과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다. 내 오랜 염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