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값 #소확행 #대확행 #욜로 #N포세대 #무라카미 하루키
어느 순간 '소확행(小確幸)'이란 말이 일상에서 중요한 화두(話頭)가 되었습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이란 말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랑겔한스섬의 오후(ランゲルハンス島の午後), 1986》에서 등장했습니다. 갓 구은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는 속옷을 보는 것, 새로 산 청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쓰는 것, 겨울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 등에서 소확행을 느낀다는 것이죠.
소확행 이전에도 웰빙, 힐링, 욜로 등의 트렌드가 존재했고, 여전히 그 말들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확행이란 단어가 주는 소소하고 따뜻한 느낌 때문인지 요즘 많은 사람들이 중독처럼 소확행을 탐닉하며 살아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소확행이 마치 인생의 진리이고 전부인 양 착각하며 말이죠. 물론 저도 종종 소확행을 탐닉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확행을 바라보는 데는 서로 다른 시각이 존재합니다. 어떤 이들은 소소한 일상의 발견에 주목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소확행의 이면에 담겨있는 젊은 세대의 좌절에 주목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세계를 노래하는 사람으로 작은 행복 속에서 큰 우주를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평소 작은 행복조차 느낄 수 없는 현대인들의 비루한 현실, 그곳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처절한 몸부림이 소확행이란 것이죠. 연애, 취업,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건강, 외모관리, 인간관계 등 꿈과 희망도 없는 삶을 비관해 삶까지 포기한다는 'N포 세대'란 말이 암담한 현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생애 주기의 자연스러운 단계별 목표가 채워지기 어렵기 때문에 당장 이룰 수 있는 현재의 행복을 찾겠다는 의미죠.
휴일이 있는 주말은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평소, 즉 직장을 다니는 평일! 일하는 날이 불행을 느끼는 근원이라는 뜻이죠. 불확실성, 변동성, 가변성, 불예측성, 모호성 등 하나의 원인으로 결과를 설명할 수 없는 복잡계를 살아가는 것도 현대인들의 불안감과 초조함을 양산시키는 원인입니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 최인철 교수는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죠.
행복의 강도는 일시적인 반면 행복의 빈도는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행복의 강도, 즉 삶에 의미와 가치를 가져다주는 '강도'높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작은 기쁨을 느끼는 '빈도'의 희생이 요구된다고 말합니다. 강도와 빈도는 둘 다 중요하지만 개인의 가지는 가치와 의미에 따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죠.
서강대 철학과 최진석 교수는 '소확행'에 대해 '진정한 나'로서 큰 세상을 살아보겠다는 꿈 없이 작은 행복에 그치는 행위이며, 자본주의의 부스러기를 받아먹으며 착각하는 나약한 태도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합니다. 큰 생각 없이 작은 행복만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우리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작은 행복과 큰 생각을 연결하는 힘'이라고 그는 주창합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Life is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 shot) - 찰리 채플린 -
우리들의 고달픈 인생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한 말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그의 대표작 '모던 타임즈'를 보면 컨베이어 벨트의 나사를 조이는 찰리 채플린의 모습은 아무 대사도 없이 그 당시 산업혁명 시대의 기계화, 부품화 되어가는 노동자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줌으로써 대단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스크린으로 보는 그의 무성 영화들은 한결같이 재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당시 고단하던 서민들의 삶의 애환과 슬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어쩌면 그가 바라보는 인간의 삶은 가까이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 말의 의미를 조금은 깨달을 것 같습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Anna Karenina rule)'이란 말이 있습니다. 진화 생물학자이자 <총, 균, 쇠>의 저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주장한 것으로 '성공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모두 충족되어야 가능하며, 어느 한 가지 요소라도 어긋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라는 법칙을 말합니다. 즉, 성공을 거두는 것은 한 가지 요소에 의한 것이 아닌 수많은 실패의 원인을 피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죠.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톨스토이(1828∼1910)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인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각 다르다”에서 착안해 붙인 명칭입니다. 소설 속 안나는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조건들을 갖춘 것처럼 보였으나, 결국 채워지지 않는 마음속 공허함을 이기지 못하고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지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됩니다. (출처 : 네이버 지식 백과)
저는 '소확행'의 광풍(狂風), 아니 거대한 조류인 메가트렌드(megatrend)를 보며 그 동인(動因)을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인간의 삶의 여정이 근원적으로 불행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조금이라도 행복이란 파랑새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죠. 왜냐하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왠지 모를 불안감과 초조함, 걱정과 근심이 내면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불행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작은 방에 홀로 틀어박혀 있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라는 파스칼의 《팡세》라는 명상록에 나오는 말말처럼 말이죠. 왜 우리는 잠시도 편하게 가만히 있지 못하는 걸까요? 기본적으로 우리의 몸에 어떤 세팅 값이 설정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컴퓨터의 초기 디폴트 값처럼 말이죠. 디폴트(defaut)란 말은 'default value'에서 유래한 말로, 별도 설정을 하지 않은 '기본 설정값'을 의미합니다.
만약 창조주가 있어 인간을 만들었다면 기본적으로 '걱정', '불안', '두려움', '초조', '근심', '우울', '외로움', '무기력' 등 생존과 관련해 부정적인 감정이 들도록 초기 디폴트 값을 세팅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렵채집 시대, 인간은 다른 동물과 같이 포식자들이 존재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극적으로 생존하고 진화하기 위해서 우리 몸 구석구석 유전적으로 새겨놓은 근원적 정서 값이 디폴트 값이었던 것이죠. 남성들을 사냥을 나갈 때, 여성들은 아이를 키울 때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기본값들이 바로 그런 감정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생각과 감정들의 잔여물, 즉 흔적이 요즘 시대에 클루지(Kluge)란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모든 것은 소멸한다. 그 어떤 완전하고 아름다운 것도 소멸의 운명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히려 그 덧없음으로 인해 아름다움의 가치가 더 증대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덧없음을 느끼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젠가 그 대상을 잃어버렸을 때 그 상실로 인해 겪어야 할 애도의 고통을 미리 맛보고 말았다는 것, 그런데 마음은 예상되는 고통을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는 미리부터 그 대상에 대한 향유를 포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덧없다. 그러나 비관할 필요는 없다'라고 프로이트의 낙천주의는 말하고 있다.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중에서 -
싯다르타의 말에 따르면 인생의 본질, 즉 인생의 디폴트 값은 행복이 아니라 고통 그 자체라고 합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죠. 성인이 되고, 가정을 이루고, 늙어가는 삶의 여정도, 심지어 종착지인 죽음조차도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학업, 취업, 사랑, 출산, 육아, 직장 생활, 인간관계 등 삶의 모든 여정에는 고통이 깔려있고, 이 고통을 견디기 위한 무한적 생애 책임과 역할이 요구됩니다. 한 마디로 태어나서 먹고 살아가는 게 힘들도록 기본값이 세팅되어 있다는 뜻이죠.
희대의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 또한 삶의 본질, 즉 삶의 기본값을 고통이라고 보았습니다. 서울대 철학과 박창국 교수의 저서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를 보면 인간은 구제불능일 정도로 이기적인 탐욕 덩어리로 보고 있으며, 세상 또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는 장소로 보고 있습니다. 그는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시계 추와 같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죠.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살아있는 한 고통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고통은 처음엔 물질적 결핍과 이에 대한 걱정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고통을 쫓아내고 나면 인간은 또 정신적 마비 상태인 '권태'에 시달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악전고투 끝에 권태를 극복해도 고통은 다시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므로 인간은 고통을 새롭게 퇴치하기 위한 투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죠. 고통과 권태 사이을 왔다 갔다 하다가 죽는 게 인생의 본질임에도 인간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생이 주는 즐거움 때문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호승 시인 또한 그의 강연에서 삶이 시작되면 동시에 죽음의 시계가 작동하는데 사람들은 삶만 지속된다고 생각하며 살아갈 때가 많다고 말합니다. 삶은 죽음과 동시에 여행을 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는 또한 우리가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관계의 속성에서 볼 때 힘들지 않을 때보다 힘들 때가 더 많다고, 관계가 힘들 때마다 미움과 증오, 분노의 감정을 선택하면서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생의 본질을 감안할 때 고통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견디고 감내해야 된다고, 조개는 상처 속에서 진주를 만들어낸다고 말이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늘보다 햇볕을 원하다고 합니다. 햇볕과 그늘의 관계에서 그늘을 부정적이고 원망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죠. 하지만 햇볕만 계속 강하게 내리쬔다면 결국 사람의 인생은 황량한 사막이 되어 버립니다. 그늘이라는 고통의 장점을 보는 안목을 가져야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죠.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죽은 사람뿐이라고 말합니다. 삶의 고통에서 해방되었기 때입니다. 내 인생의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 건 내가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는 것이죠.
소확행의 반대말은 '무확행(무모하지만 확실한 행복)' 또는 '대확행(크고 확실한 행복'이라고 혹자는 말합니다. 저는 오늘 소확행이 잘 못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당연히 고통이란 고해의 바다에서 삶의 여정을 살아간다면 잠시라도 고통을 잊기 위한 소소한 행복의 여정을 추구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소확행이 마치 삶의 목적이나 진리인 것처럼 삶의 시간을 헛되어 낭비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꼭 무확행이나 대확행을 추구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소확행을 추구하며 소박한 삶의 여정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 훗날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 현재의 고통을 꿋꿋하게 감내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햇볕이 쨍쨍 내리는 황량한 사막에서 목이 마를 때마다 생수를 마시는 사람이 있는 반면 참았다가 마지막 목적지가 임박했을 때 한꺼번에 시원하게 마시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죠. 소확행이 중요한 것처럼 대확행도 중요하다는, 즉 두 가지 여정 모두 중요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삶의 디폴트 값이 어떻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면 다음 여정은 디폴트 값대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디폴트 값을 새롭게 설정한 후 자신이 원하는 삶의 환경 설정값대로 살아갈 것인지를 결정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설정값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서는 의지력, 자기통제력, 노력 등의 에너지가 수반되어야 하는데 그 여정에는 초기 디폴트 값보다는 더 큰 고통과 수많은 부정적 감정들이 함께 수반되는 된다는 것을 이해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철학자 최진선 교수의 말을 빌리면 인생이 짧기 때문에 원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죽기 전 내가 완수해야 할 소망은 무엇인가?'를 계속 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큰 생각 없이 작은 행복만 추구해서는 안 되며, ‘작은 행복과 큰 생각을 연결하는 힘’이 우리에게 진짜 필요하다고 강조하죠. 이를 위해서는 질문을 통한 자각, 디폴트 값을 벗어나기 위한 '카벙클(carbuncle)' 만들기, 심연에서의 수련,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응시하고 받아들이기, 불편하게 살기, 독서와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카벙클(carbuncle) : 알에서 깨어난 새끼 거북이들이 알을 깨기 위해 만들어지는 임시(생존) 치아를 뜻함
수많은 자기 계발 서적들이 '감사함의 태도', '자기 충족적 예언', '시각화', '끈기와 열정(GRIT)', '변화력', '회복탄력성', '실행력', '프레임의 전환' 등 긍정적인 마인드를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인간이 가진 초기 디폴트 값을 바꾸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끌어내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하더라도 다시 초기 디폴트 값으로 쉽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불안, 걱정, 근심, 초조함, 두려움 등의 감정이 든다면 그건 디폴트 값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때는 "이놈이 날 찾아왔군!, 일단 한번 해보자! 남들도 다 하는데!"라고 생각하며 행동으로 옮기면 될 것 같습니다. 진주는 살아있는 조개의 상처와 고통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이렇듯 삶의 모든 성취와 결실은 상처와 고통이란 기반에서 이뤄집니다. 혹시 소확행만을 추구하며 사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한 번쯤은 제가 얘기한 삶의 초기 디폴트 값을 떠올려주셨으면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