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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Apr 09. 2021

(YJ)주말 부부의 세계

삶의 변화가 필요하고, 위기와 기회가 교차하는 시점!

오랜 직장생활 동안 연고지를 떠나 타 지역으로 발령받아 여러 곳을 전전하다 보면 인생사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는 평범한 깨달음을 얻는다. 다소 예민한 성격 탓에 '익숙함과의 결별'과 '낯선 환경에의 적응'은 초기엔 쉽지 않은 삶의 기억들이 많았다.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전생의 억만 겁의 인연이 금생에서 돌고 또 돌아 새로운 인연으로 고리가 엮이는 것'처럼 나와 만나는 인연은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면서 인연에서 비롯된 감정의 예민함도 무덤덤함의 감정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타지를 돌고 또 돌면서 어떤 직원과는 세 번 이상 만나기도 했다.. 함께 있을 때는 그렇게 식구처럼 잘 지내다가도 막상 헤어지면 표현을 잘 못하는 경상도 남자의 수줍은 성격 탓에 자주 연락도 못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서로 연락하는 경우도 드문드문해졌다.


예전 기억을 돌이켜 보면 가끔은 그 당시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에 대한 소중함과 그리움들이 스멀스멀 기억 속에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 글을 작성하다 보니 타지 생활을 하면서 잊은 채 멀어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때 그 시절 사람들과의 기억들이 다시 고개 들어 나를 돌아보게 해 준다. 오래전에 잊혔던 사진첩을 우연히 찾아 열어보는 설렘이 있다. 


그때 그 소중한 존재들과의 의미와 추억들이 다시 가슴속 한켠에 자리 잡고 나를 다시 일깨운다. 인간은 행복을 상태로 인식하지 않고 기억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면 좋은 기억으로 뇌 속에 저장된다. 그래서 '그때는 참 좋았지'라고 말하면서 추억은 늘 좋았던 기억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미국 작곡가 레번트는 행복은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사실 오랜 기간 익숙하고 편안함을 느끼던 '컴포트 존(comfort zone)'을 떠나 낯설고 불편한 환경인 비연고 근무지로 전배를 가는 과정은 적지 않은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내게 주었다. 그동안 부단한 열정과 노력으로 어느 정도 조직 안정화도 이루었고, 성과도 안정되게 나오는 시점에서 항상 타지 발령이 나다 보니 내 입장에서는 내심 섭섭하고 속상하기도 했던 것이다.


난 새로운 근무지로 가면 '일 년'은 정말 직원들과 현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들과 소통하고 업무를 공유한다. 일 년이면 한 해의 업무 사이클을 모두 경험하고, 그동안 업무 루틴과 프로세스를 조직에게 학습시킬 수 있고, 관리자들의 역량도 향상시켜 성과가 꾸준히 나오게 하는 '효율적 업무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칭 '똑게(똑똑하지만 게으른)'스타일의 리더가 되기를 항상 원했다. 일은 현장의 직원들이 하면 되는 것이고, 나는 그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성과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동기부여를 하면 되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근무 시간에만 제대로 집중하면 성과가 나올 수 있는 게 바로 현장의 묘미다.




아쉽게도 한 지역에서 일 년이 지나 어느 정도 팀워크도 구현되고, 성과도 나오기 시작하면 꼭 예기치 않는 순간에 발령이 이루어진다. 잠시도 편하게 놔두지 않는다는 생각에 내심 섭섭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내가 회사에 기여할 곳이 또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위안을 삼고 새 부임지로 이동한다. 


낯선 곳에서의 근무 환경은 '익숙함과의 결별'이자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과 도전'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기존 업무 환경에서 만들어진 매너리즘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면서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리셋의 기회이기도 하다.


익숙함은 당장 편하고 거기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관점의 변화를 가지기가 어렵다. 기존의 하던 것들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관성'과 '항상성'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부임지로 가면 그제야 자기가 근무했던 곳이 어땠는지를 새로운 관점에서 돌아볼 수 있게 된다. 


오랜 비연고지 근무 덕분에 나는 비연고지 발령 시 어떻게 근무를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나만의 근무 노하우가 생겼다. 상황이 바뀌지 않으니 결과적으로 나의 마인드셋을 바꾸는 것이다. 돈 주고 여행을 와야 하는 지역에 그것도 회사 비용으로 사택과 법인차량을 이용하고, 가끔은 법인카드도 사용하면서 근무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내겐 큰 행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누릴 수 있는 주말부부의 삶


아내 입장에서 보면 주말부부는 전생에 '삼대덕'을 쌓아야만 가능하다면서 이웃사촌들의 부러움이 매우 크다고 한다. 아내의 이웃사촌 중 언니 한 명은 남편이 기업체 대표라서 돈은 잘 벌지만 집과 가까워서 하루 삼시세끼 모두를 집에서 밥을 먹는 '삼식이'라고 불만이 크다고 했다. 하긴 아내 입장에서 어디 가지도 못하고 삼시 세끼를 차려야 한다는 것은 큰 고충일 것이다. 내 입장에서 혼자 끼니를 해야 하는 번거로운 점을 제외하면 주말부부의 장점은 매우 많다. 


가끔씩 보니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상대방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이 더 커진다. 짧은 만남의 시간 동안 상대방에게 더 소중하게 대하고, 잘해주려고 노력하게 된다. 심지어 연애감정까지 새록새록 솟아오르는 경우도 있어 늘그막에 새 여친이 생긴 것 같은 느낌도 든다. ^^ 


한 달에 한두 번은 아내가 내가 살고 있는 사택에 방문한다. 애들도 어느 정도 커서 자기들만 있는 게 더 좋은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둘이만 있다 보니 정말 예전 신혼 추억도 소록소록 생각나고, 어릴 때 소꿉놀이하는 기분으로 둘만을 위한 요리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그리고 지역마다 유명한 관광지와 맛집도 둘만이 데이트 코스로 선정해 관광 코스처럼 바쁘게 싸다니기도 한다. 언제 이런 것들을 누릴 수 있을까? 주어진 모든 시간들을 추억의 캔버스에 그려 소중히 간직할 예정이다.


지역통 되기


타지 생활에서 오래 남을만한 추억과 기억을 만들기 위해서는 근무하는 기간 동안 그 지역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다른 말로 지역의 관광지, 맛집, 역사 등을 제대로 아는 '지역통(地域通, 지역 전문가)''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가끔 후배들의 타지 생활을 지켜보면 평일에는 사택과 근무지만 오가고, 휴무 때는 집으로 가는 패턴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지역에 대한 깊은 지식과 애착도 없을뿐더러 마인드 자체도 빨리 연고지로 복귀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커져 현지 직원들과 제대로 유대감을 형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타지 생활을 하면서 현지에 살고 있는 직원보다 더 많은 관광지, 맛집, 역사 등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었고, 그 결과 직원들과도 더 좋은 추억과 기억의 시간들을 많이 만들 수 있었다. 


홀아비 생활의 즐거움


타지 생활의 장점 중의 하나는 바로 홀아비 생활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가서 크게 할 일이 없다 보니 직장생활도 더 충실하게 할 수 있고, 가끔 일찍 퇴근할 때는 사택에서 릴랙스 할 수 있는 편안한 시간도 가질 수 있게 된다. 또한 가끔씩 직원들과 함께 하는 회식은 아내의 잔소리 없이 맘껏 편하게 즐길 수 있다 보니 점포 주당(?)들과의 친분도 더 많이 쌓을 수 있었다. 단, 회식할 때 주의사항 중 하나는 반드시 회식 전에 아내와 통화해서 회식 중에 아내에게 전화가 오지 않도록 해야 술자리의 즐거움을 오롯이 누릴 수 있으니 이 점 특히 유의하기 바란다. 



직원들과 평생 기억남을 추억 만들기


타지 생활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바로 직원들과 평생 기억남을 '추억 만들기'이다. 지역통으로서의 맛집, 관광지에 대한 지식은 직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의 폭과 깊이를 한층 더 심화시켜 주었다. 특히 직원들이 잘 가지 않는 맛집, 관광지에서의 야유회와 회식은 직원들에게도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준다. 


내가 예전에 근무하던 점포는 바로 바닷가 인근에 위치해 있었다. 생각만 해도 행복한 일이다. 인근 대형 회센터의 경우 1층은 활어회센터, 2층은 식당가와 넓은 테라스를 갖춘 곳이었다. 횟값도 저렴했지만 2층 야외 테라스에서 등대와 석양을 보면서 먹는 회맛과 회식 분위기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굉장했다. 3년간 근무하면서 이렇게 가깝고 맛있는 회센터에서 한 번도 회를 먹어본 적이 없다는 직원들도 꽤 많다는 것을 듣고 나도 꽤 놀랐다.


특히 봄가을의 밤바다는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멋졌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방파제 등대 불빛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술기가 올라 흥이 난 직원들조차도 먼바다를 응시하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 '이 보다도 더 좋을 수 없다'는 말이 생각나기도 한다. 아울러 인근 석양 뷰 맛집도 있었다. 비싸지만 그 집만의 비법으로 만든 '해신탕(낙지+오리+전복)'은 먹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건강 맛집이다. 그날 그날 바닷가에서 잡은 선어와 살패류는 무제한으로 제공된다. 메인 메뉴보다 더 비싼 느낌마저 드니 말이다. 


이렇게 직원들과 즐겁게 보낸 추억과 기억은 항상 사진으로 찍어서 남긴다. 난 예전에 점장 시절 때 항상 업무 공유를 위해 네이버 밴드를 만들었는데 그 공유 내용의 대부분은 바로 이런 사진들과 즐거웠던 추억들이었다. 직원들과의 회식이 끝나도 그 여운과 추억은 밴드를 통해 오랫동안 직원들 머릿속에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밴드는 업무 공유방이 아니라 추억 공유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난 그 지역의 명소와 맛집을 다닌다. 아마 내가 퇴직을 하게 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바로 이런 추억일 것이다.  


최적화된 자기 계발의 시간


비연고지 생활 때 내가 먹고 마시고 놀았던 것만은 아니다. 난 점장을 달 때부터 그간 미련이 많이 남았던 학위 공부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석사 학위만 3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되었다. 석사 학위 취득도 정말 쉽진 않았다. 그리고 아쉬움이 남아 박사 학위도 도전하기로 했다. 운 좋게도 박사 과정에 입학하게 되었고, 그 후 2년 간은 정말 지옥과도 같은 여정의 연속이었다.


비연고지 근무 기간 내내 난 업무를 마치면 학위 공부에 매진해야만 했다. 주간 6편 이상의 외국 논문을 해석하고, 요약하고, 어떤 경우엔 프레젠테이션 발표 준비까지 하면서 업무 외 일과를 보내야만 했다. 안 해보면 정말 모른다. 박사학위는 수료도 힘들지만 학위 취득은 정말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힘들다. 


제일 힘든 것은 주 2일간의 수업을 참석하는 것이었고, 그다음은 수업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정말 운 좋게도 난 비연고 생활을 하면서 박사 학위 취득에 도전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위기의 상황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에피소드 정도로만 기억된다. 


난 퇴근 후 항상 학업에 매달렸다. 가끔 퇴근도 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끙끙대는 내 모습에 이상한 소문도 돌았지만 내가 학위 도전한다는 고백 이후엔 오히려 나를 이해해주고, 응원해주는 직원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난 무사하게 박사 학위까지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박사 학위 논문에 힘든 상황 속에서 학위 도전을 응원하고 지원해 준 직원들에 대한 감사 멘트도 넣었다. 어찌 보면 비연고지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직원들과 나를 이어주는 동호회 활동


타지 생활의 즐거움 중의 하나는 점장이라는 계급장을 떼고 일반 회원으로서 동호회에 참석하는 것이다. 동호회는 업무 외적으로 취향이 비슷한 직원들끼리 만나서 정기적으로 친목을 도모하는 회사의 공식적인 지원 제도이다. 동호회마다 회장과 총무를 두게 한다. 보통 3~4개 정도 이상의 동호회를 결성할 수 있으니 점포마다 동호회의 종류와 특성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난 점포에 부임하면 항상 정규직만을 위한 동호회를 만든다. 왜냐하면 그들만의 업무 외적인 친목질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친분이 쌓이면 소통도 더 원활해진다. 그래서 가장 만들기 쉬운 동호회가 바로 풋살 동호회이다. 그 모임을 할 때면 난 계급장을 떼고 평회원으로 참석을 한다. 업무 후 풋살도 하고, 공짜(?)로 회식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이 날은 회의비 걱정 없이 그냥 편하게 직원들 틈에 끼어서 술을 마신다. 회장과 총무가 중심이 되어 건배도 하고, 먹을 것도 알아서 시키니 이보다 더 좋은 회식 모임 자리는 없는 것이다. 이런 정규직만의 동호회 때문에 조직 문화가 매우 좋았다. 소통과 친목만큼 팀워크와 유대감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혹시 비연고지에 부임하는 리더에겐 좋은 팁이 되었으면 한다.  




비연고지에서의 즐거움과 장점은 이 밖에도 참 많다. 하지만 단점도 적지 않다. 내가 비연고지 근무를 하러 갈 때 큰 애가 초등학교였는데 다시 연고지로 복귀할 때 큰 애가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바로 양육에 관한 것이다. 아빠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내에게만 전적으로 위임할 수밖에 없어서 항상 마음 한 구석에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다. 그런 탓인지 여전히 아이들과 만나도 데면데면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생의 모든 일은 동전의 양면처럼 음과 양이 있다.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없듯이 내가 주어진 환경 속에서 가급적 최선을 다해 장점에 집중하고, 그것을 온전히 누리고 즐기는 것이 어쩌면 더 현명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혹시 비연고 발령으로 많이 속상한 분들이 있다면 내 얘기를 읽고 힘을 내면 좋겠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면 된다. 그게 인생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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