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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Jul 27. 2021

(YJ)소소한 행복

#제주도 밀월여행 #펜션 #감귤나무 #한치회 #바비큐

2006년도에 발간된《대한민국에서 봉급쟁이로 산다는 것》이란 책이 있다. 권용철 저자가 25년간 봉급쟁이로 살아오면서 경험한 봉급쟁이의 에피소드와 단상, 그리고 쌓아온 사회생활 노하우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험난한 취업고시(?)를 통과해 막상 대기업에 들어가더라도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으로 살아야 하며,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소시민인 봉급쟁이로 살아가려면 봉급쟁이로서의 철학과 지혜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울러 군자삼락(君子三樂) 못지않은 직장삼락(職場三樂)이 있는데 '출장 다니면서 구경 다니고, 근무하면서 맛있는 점심 먹고, 봉급 받으면서 휴가를 즐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얼핏 내용만 보면 그냥 직장생활을 날로 먹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특별할 것 없는 무료하고 반복적인 직장생활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그 상황을 즐길 수만 있다면 이 보다 더 좋을 수가 없지 않겠는가. 2개월 전 난 본사에서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 본부라는 조직을 새롭게 만들 기회가 있었다. 사무실도 인력도 전혀 세팅되지 않는 상황에서 본부의 역할을 빨리 해야 하다 보니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부족하고 제한된 '인력 풀(manpower pool)'에서 우수한 인력을 뽑아야 하고, 사무실도 새로 만들어야 하고, 업무에 필요한 각종 집기와 IT 장비들도 설치해야 하고, 본부 내 점포들도 방문해야 하는 등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제일 먼저 본부 스태프들을 뽑았고, 그다음은 스태프들을 통해 필요한 일들을 처리해 나갔다. 빠른 업무 처리를 원하는 나의 기대 수준과 처음 본부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의 처리 수준 간의 괴리(gap)로 인해 모두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한 달이 지나서 겨우 본부 사무실이 세팅되었고, 스태프들도 본격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산으로 제대로 된 회식도 못하고, 업무의 강도가 점진적으로 높아지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스태프들 또한 피로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방치하면 조직 분위기 재건이 어려울 것 같아 난 '직장삼락'의 비기(器)를 실행하기로 결심했다. 바로 단체 제주도 출장 일정 1박 2일로 계획한 것이다. 


출장에 들뜬(?) 스태프들은 비수기 시즌 가격대가 가장 저렴한 시간대 비행기표와 렌터카를 예약했고, 또한 출장지역 인근에 인적이 드물고, 주변 환경이 깨끗하고, 낭만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펜션 한 곳도 함께 예약했다. 그날의 메뉴는 바비큐, 그리고 제주에서 유명한 한치회로 정했다. 출발하던 날 우리는 바쁜 출장 여정을 최대한 서둘러 마치고 펜션으로 향했다.



코로나로 인해 숙박 예약 취소가 빈번한 상황이라 우리들은 의도치 않게 펜션의 바베큐장을 몽땅 다 쓸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더운 여름 날씨였지만 오랜만에 한라산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공기도 깨끗했고, 마침 하늘에는 저녁 반달이 업무에 지친 우리들을 환하게 반겨주고 있었다. 우리는 한치회를 시작으로 제주도 푸른 밤을 본격적으로 즐기기 위해 바비큐 모드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팬션과 감귤나무 모깃불


감귤 나무들이 둘러싸인 바베큐장은 추억여행이라는 네온사인 간판이 수놓은 조명과 어우러져 은은하게 주변을 밝히고 있었고, 감미로운 발라드 음악이 한껏 여행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초록색의 노지 감귤들이 감귤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도 제주도의 푸른 밤을 한층 더 느끼게 해 주었다. 주인장은 우리들을 위해 감귤나무를 땔감으로 모깃불을 피워주었고, 감귤나무가 탈수록 바비큐 분위기도 한껏 고조되어갔다.


당일 먹은 것 중에 가장 기억나는 음식은 바로 제주도 제철 한치회였다. 두툼하게 썰어 수분을 가득 머금어 촉촉함이 남달랐고, 씹으면 씹을수록 달콤한 맛이 나면서 혀에 착착 감기는 게 오징어회와는 확언하게 차이가 났다. 특히 지역 소주인 한라산과 곁들여 먹으니 한치의 쫄깃한 식감은 배가 되었다. 그렇게 네 명이서 한 시간 만에 9병의 한라산을 비웠다. 허기에 지치고 그리움에 목마른 우리들은 모두 제주도 한치회의 맛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한치야! 완전히 반했다!!!


환상의 한치회와 조개구이


다음 메뉴는 조개구이였다. 조개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가리비를 필두로 전복, 소라, 키조개, 대합 등이 순차적으로 불판에 익어가면서 경쟁하듯 입을 벌리기 시작했고, 곧이어 익은 속살이 뽀얗게 드러났다. 오동통하게 살찐 조갯살의 풍미와 육즙은 명불허전이었다. 이어서 육지의 최고 라이벌인 소고기와 돼지고기 형제들의 육즙 향연이 펼쳐졌다. 마지막으로는 닭볶음탕이 은박지 위로 흩어졌다. 그렇게 제주도의 푸른 밤은 바비큐 파티아 감귤나무 모닥불과 함께 깊어져만 갔다. 




눈을 떠보니 모텔이었다. 분명 펜션에서 술을 한잔 한 것 같은데...... 어떻게 모텔이지? 익숙한 듯 전일 바비큐 파티의 영상 필름들을 한 장 두장 이어 붙이기 시작했다. 중간의 큰소리로 웃고, 사진 찍고, 어깨동무하던 장면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마지막 장면은 누군가 나를 태워서 인근 모텔로 이동하는 것까지...... 끊어지고 이어지고, 한참을 혼자서 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모르겠다. 즐거웠던 것 같으니 일단 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깨질 것만 같은 두통을 뒤로하고, 부서원들과 함께 아침 일찍 해장을 위해 가장 제주스러운 음식인 제주 '몸국' 집을 찾았다. 펜션 주인장이 해장에는 제주 몸국이 좋다고 얘기했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두통 속에서도 휴대폰을 꺼내서 몸국을 검색했다. 


'몸'은 '모자반'의 제주 방언으로, 돼지고기와 사골, 잡뼈 등을 삶아 낸 국물에 몸을 넣고 끓여낸 제주 향토 음식이다. 취향에 따라 고추나 마늘을 더 넣어 먹어도 좋다고 한다. 다소 느끼하긴 했지만 피부와 건강에 좋다는 생각에 끝까지 참고 먹었다. 경상도 사람에겐 역시 부산 돼지 국밥이 최고인 것 같다. 사실 제주 몸국은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니 여러 사람이 간다면 한 그릇 정도 시켜서 맛을 먼저 본 후 추가로 시킬 것을 권한다.


제주 몸국


다음 여정은 '사려니숲길'이었다. 술도 덜 깬 상태이다 보니 사실은 가기가 귀찮았다. 하지만 '힐링'이라는 말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단 그곳으로 향했다. 직장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힐링'이지 않은가. 사려니숲길을 제주의 숨은 비경 31곳 중 하나로, 비자림로를 시작으로 물찻오름과 사려니 오름을 거쳐가는 삼나무가 우거진 숲길이다.


'사려니'는 '신성한 숲' 혹은 '실 따위를 흩어지지 않게 동그랗게 포개어 감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삼나무뿐만 아니라 졸참나무, 서어나무, 때죽나무, 편백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빽빽하게 서식하고 있어 나무를 잘 아는 사람은 숲 속에서 아는 나무를 찾는 재미도 솔솔할 것 같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었는데도 사려니숲길은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바람과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11시쯤 되니 피톤치드가 최고점에 올라서인지 삼나무가 만들어주는 시원한 그늘과 깨끗한 공기는 정말 상쾌하게 느껴졌다. 혹시 제주에서 청청한 공기를 마시며 심신을 치유받고 싶다면 꼭 가보기를 권한다. 다음번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힐링을 하러 꼭 와야겠다. 


사려니숲길


사려니숲길을 한 시간 정도 산책한 후 우리는 제주 공항으로 서둘러 차를 몰았다. 점심시간이 다되었지만 아침에 먹은 몸국이 소화가 안되어서인지 우리는 비행기 시간이 남았는데도 따로 점심을 먹지는 않았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자마자 우리들이 간 곳은 부산 돼지 국밥 식당이었다. 부산 사람에게 소울푸드가 바로 국밥이기 때문이다. 또한 술 취한 영혼의 허기를 달래주는 음식이기도 하다. 정구지(부추), 다진 청양고추와 마늘을 듬뿍 넣어서 먹는 국밥은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먹고 안 먹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사무실에 돌아와 부서원들에게 즐거웠냐고 물으니 모두들 진심! 레알 즐거웠다!라고 대답했다. 나도 진심 즐거웠으니 그들도 진심 레알 즐거웠지 않았나 생각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생활 속에서 뭔가 특별한 것이 필요하다면 바로 직장 삼락을 실천할 때이다. 어차피 오늘 끝나지 않을 일이라면 잠시 놓아두고 잠시 회사 밖을 함께 나가보면 어떨까. 제주도의 푸른 밤처럼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 


(성시경 제주도의 푸른 밤)

http://youtu.be/rlS-_ZGfz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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