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생각했지요.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간 자취가
두 길을 거의 같도록 하겠지만요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서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기면서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가지 않은 길>은 위대한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실의에 빠져 있던 20대 중반에 쓴 시(詩)다. 제대로 된 직업도 없었고, 문단에서도 인정받지도 못했던 시절, 그는 이 대학 저 대학에서 공부는 했지만 학위도 못 받았고, 게다가 기관지 계통의 질병도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 그의 집 앞에는 숲으로 이어지는 두 갈래 길이 있었는데 그 길을 자신이 걸어왔던 인생을 투영해서 이 시를 썼다고 알려져 있다.
세상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내가 간 길과 가지 않은 길,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과 그렇지 않은 길, 빠른 길과 느린 길, 꽃 길과 흙탕길 등 인생이라는 여정 속에서 우리는 한 길만을 선택해서 가야 한다. 일단 한 길을 선택해 발을 디딛는 순간부터 우리는 매일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 길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 시간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갈래 길에서 남들이 많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해서 간다는 것은 큰 용기와 도전이 필요하다. 분명 어려운 선택이고 힘든 여정이지만 어쩌면 남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운명(運命)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레밍 효과(lemming effect)'란 말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맹목적으로 남을 따라 하는 행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기적으로 절벽에서 뛰어내려 집단자살을 하는 레밍의 알 수 없는 습성에서 생겨난 용어이기도 하다. 레밍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유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밝혀진 새로운 사실이 한 가지 있다. 레밍은 사회성이 아주 낮은 동물로 누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못 견뎌하는데 비해 조금의 공간이나 먹이가 충분하다 싶으면 아주 열심히 종족을 번식시킨다고 한다. 그 결과 일정 개체수가 넘으면 집단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이상행동을 하게 되고, 그 결과 퍼스트 레밍(first lemming)이 이끄는 대로 길을 걷다가 떠밀려 집단 자살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개체수가 적어지면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환경에 안주하고 개체를 번식시키는데 그 주기가 4년 정도라고 한다.
태생부터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대부분 타인의 시선이나 의견을 준거점으로 삼아서 그들의 행동을 모방하고, 그들의 길을 따라가는 '레밍 효과'가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니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시도하기에 너무나 위험하고, 무모하기까지 할 것이다. 그 길은 남들이 선호하지 않은 길이며, 비포장 길이고, 비가 오면 진흙탕으로 변하는 불편한 길이며, 중간에 돌부리에 넘어지기도 하는 위험한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지 않은 길은 남들이 가는 길처럼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갈 수도 없고,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낯선 길이다. 길을 걷다 옆을 보면 포장된 길로 차들이 사람들이 편하게 지나가는 것이 보이기도 할 것이다. 다른 사람과 같은 길을 걸으면 앞을 제대로 보지 않더라도 안심하고 계속 걸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국 절벽에 다다르게 되면 내 의지와 관계없이 타인에 의해 떠밀려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스타트업을 시작해서 성공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해서 걸어갔다. 성공의 비결은 어찌 보면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해서 걸어갔고, 힘든 여정 속에서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꿋꿋하게 버티고 걸어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남들과 다른 선택지를 골랐다는 것은 평범한 삶을 추구하는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이질적이고, 다이내믹한 성향의 소유자로 비치기도 한다.
"남들이 다 가는 길은 망한다"라고 강연에서 말한 안철수 박사는 서울대 의대를 나와 단국대 의과대학 학과장으로 근무 시 본인의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침투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백신 개발에 몰두하다가 결국 의사라는 길을 그만두고, 나중에는 안랩이라는 세계적인 회사까지 설립하게 되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결과이다.
인생에는 사실 두 갈래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걷다 보면 수많은 갈림길을 만나게 되고, 그때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때마다 자신의 가진 지식, 경험, 노하우, 관점, 타인의 시선, 의견 등이 선택과 판단의 준거점이 된다. 선택은 항상 아쉬움과 미련, 후회와 같은 감정의 쓰나미를 동반한다. 하지만 프로스트는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고, 그 결과 위대한 시인이 될 수 있었다.
내가 사회초년생일 때 성공적인 삶의 기준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해 일과 저축을 열심히 해서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고, 나이가 들어 은퇴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 공식대로 살기 위해서는 회사에서 일을 못해 쫓겨나면 안 되고, 기업이 망해서도 안되고, 경기가 좋아서 기업이 성장해야 하며, 내가 일을 하다 중병에 걸려서도 안 된다. 생각해보면 위험천만한 길이었다. 어쩌면 남들이 대부분 가는 길 또한 천운이 그만큼 따라줘야 하는 것이다. 회사가 당신에게 돈을 준다면 그것은 당신이 가진 한정된 삶의 시간을 달라는 의미이다.
영화 <인타임>은 사랑의 수명 즉, 시간을 돈으로 사용하는 것을 소재로 만든 영화다. 모든 가치의 척도가 시간이다. 모든 사람들은 25세가 되면 노화가 멈추고 그 순간 1년이라는 시간을 얻어 생활을 하게 된다. 돈은 곧 시간인 세상에서 노동을 통해 시간을 얻고 시간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이 시간을 돈으로 교환하는 현재 우리들의 삶과도 너무나 닮았다.
만약 죽음을 앞둔 슈퍼리치가 있다면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시간'일 것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쩌면 그가 가진 전부를 내어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시간은 자고 일어나면 저절로 충전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동일하게 주어지는 24시간이지만 시간에 대한 가치와 의미는 모두 다를 것이다. <인타임>은 어쩌면 '돈'보다 더 소중한 '시간'의 가치를 너무나도 리얼하게 잘 표현한 영화이며,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게' 쓰라고 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유명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출생 순서는 정해져 있지만 떠나는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사실에 문득 삶의 발자취를 돌아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현재를 살피게 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성찰하게 된다. 남들이 많이 가는 길은 어쩌면 반전 스릴러 영화의 결말을 알려주는 스포일러처럼 그 결말 또한 시시하거나 단조로울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만약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인타임>과 같이 수명 시계가 손목에 새겨진다면 지금과 같은 삶을 계속 살아갈까? 아마 남은 시간 동안 지금보다는 더 다이내믹하고, 신나고, 행복한 일들을 많이 할 것이다. 그리고 살아온 삶과 주어진 삶에 대해서도 깊은 감사를 느끼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내게 만약 두 갈래의 길이 주어진다면 나는 위대한 시인 프로스트처럼 가지 않은 길을 가겠노라고 단호하게 말해보고 싶다. 비록 그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어쩌면 남들과 다른, 의미 있고 가치 있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는 참된 기회를 가지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