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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Sep 09. 2024

하나만 집중해서 잘하지 못해서 고민하던 나날

오늘도 피아노 연습을 하고 왔다. 한 시간을 했어도 마음에 드는 한 마디를 얻지 못했다. 이달 말에 미니연주회가 있으니 다소 필사적이기는 하다. 한 시간이 아니라 서너 시간을 해도 모자라지만 현재 나아게는 이만큼이 최선이다. 이렇게라도 연습을 해야 연주회 직전에 조금은 완성되기도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예전에 합창동아리를 할 때도 그랬다. 아카펠라는 음과 박자를 맞추기가 참으로 어려운데, 막판까지 안 되다가 정작 무대에 올라서니까 기가 막히게 어우러지는 기적을 만나기도 했다. 물론 무대 위에 올라서서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했으니 가능한 일이었기도 했겠지만 평소에 연습을 하지 않았으면 집중력을 발휘한다고 한들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단 하나를 찾지 못해서 참 많이 힘들기도 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스스로에게 드는 자괴감이 제일 커서 그 부분이 어려웠다. 이것저것 건드리기만 하다가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은 하나도 없는 그런 흐릿한 인상의 불분명한 사람인 것 같아서 싫었다. 주변에서 하는 게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겠다고 걱정해 주는 것도 좀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다. 어떤 부분들은 한참 뒤에 꺼냈어도 묵혀둔 시간들만큼 발효가 잘 일어나 있기도 했고 어떤 부분들은 이어서 조금씩 했기 때문에 길게 오래갈 수 있기도 했다. 아이들의 집중력 최대 시간은 15분이라고 한다. 그 말은 최대가 15분이니 어떤 경우는 1분도 안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그냥 집중력의 기간이 조금 짧은 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석 달 정도 여기에 매진하고, 어떤 때는 한 달 정도 매진하고.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하다가 또 마음에 끌리는 것이 생기면 그 일을 한다. 그러다 다시 예전에 했던 것을 다시 하기도 하고 또 우연히 만난 새로운 것에 매혹되기도 한다.     


예전에 했던 것은 한 번 했으니까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쉽고 재미있게 진행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자신감 있게 달리다가 겸손해지는 순간들도 많이 만난다. 그럴 때는 또 그대로 좋다.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나는 순간은 본인이 운전을 아주 잘한다고 확확 달릴 때이다. 그래서 뜨끔하게 되는 상황을 만나면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반성한다. 아직도 나는 익지 못한 벼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뻣뻣한 고개를 조금 더 숙여 보려고 노력한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까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어느 정도 알게 된 것도 성과라면 성과이다. 피아노나 수채화, 필라테스 같은 부분은 내가 잘하기 어려운 분야이다. 그럼에도 꾸준히 조금씩 쌓아온 세월이 겹겹이 포개어지니 그냥저냥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정도는 된 것 같다. 영어를 오랫동안 천천히 공부했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 원서 읽기 수업도 진행할 수 있는 정도로 조금 올라왔다. 영어회화 강좌에서 나 스스로는 아직도 intermediate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advanced 수업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알았다.      


한 번에 한 가지에 집중해서 단 시간에 성과를 내고 계속해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은 멋진 일이다. 부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다. 이것저것 탐색해 보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과정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뭔가를 해 본 경험은 그냥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나름으로 쌓여가면서 만들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고민은 또 고민대로 할 가치가 있었다. 뭔가를 빨리 만들어 내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재촉하지 않는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을 가져다주었다. 이제 마흔 중반. 아직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다른 것들을 또 탐색하고 시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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