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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Sep 11. 2024

나도 내일의 내가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이것을 하면 너무 재미있을 것을 알고 너무 즐거울 것도 알고 보람도 있을 것도 알고 만족감도 가득할 것을 아는데 시작하기가 싫은 것이다. 그래서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굉장히 공감한다.


운동을 하면 몸이 상쾌하다. 개운하고 건강해지면서 가뿐해 지는 몸을 느낀다. 그런데 일어나서 운동 영상을 틀고 자세를 잡기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는지 모르겠다. 잠깐 하는 사이에 20분이 흘러가 버리면 이것도 저것도 못하고 그렇게 어버버...하다가 결국 운동을 못하고 만다.


이 책이 너무 재미있는 것을 아는데, 막상 책장을 넘기려니 너무 귀찮다. 책에 있는 활자에 눈을 돌리고 생각을 집중하고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야 하는데 그 시작하는 시점에서 상당한...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에너지가 소요되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치면 좋은데 피아노까지 걸어가서 의자를 빼고 뚜껑을 열고 악보를 펼치는 것도 상당히 성가신 일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재미있지만 물병에 물을 받아오고 팔레트와 붓과 스케치북을 세팅한 후 무엇을 그릴지 연필로 스케치를 하는 과정까지 드는 노력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가끔은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 본다. 그럼 다시 하고 싶은 일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몸치지만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것은 춤이다. 그 중에서도 왈츠와 탱고와 발레는 꼭 다시 배워서 의상까지 정식으로 갖추고 춤을 추고 싶다. 연극과 뮤지컬도 해 보고 싶은 일 중 하나이고 오케스트라에도 들어가고 싶다. 현악기는 바이올린을 배워보고 싶고 관악기는 오보에를 배우고 싶다. 하지만 또 이런 나의 열성과는 다르게 음을 조율해야 하는 난감함이 있으니 바이올린은 어쩔지 모르겠고 리드를 깎아야 하니 가격도 비싼 오보에는 관두고 집에 있는 풀룻을 재활용핳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하나하나 하고 싶은 일들을 떠올려 보니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춤은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 발레는 독무도 가능하겠지만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할 때 더 즐겁다는 것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연극이나 뮤지컬은 당연하고 오케스트라는 더더욱 그렇다. 나는 혼자서 집중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마음 속에는 다른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전체 속에서 어우러지는 과정을 더 느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삶은 혼자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더라도 나눌 사람이 없으면 그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책도 함께 읽을 때 더 좋았고 피아노도 다른 사람들의 연주를 들으며 내 연주를 나눌 때 더 좋았고 그림도 함께 그리면서 서로 공유하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라는 것이 있는 일들을 하겠지. 혼자 틀어박혀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하던 내가 이렇게 성장하다니 어쩐지 스스로 대견한 마음도 드는 동시에 '이제사 그걸 깨달았니?' 하는 한탄도 같이 올라온다. 


정말 내일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을지는 알 수 없다. 갑자기 뜬금없이 아예 생각조차 안 해 본 일에 꽂혀서 그것만 팔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함께 하고 함께 성장하기 위해 함께 어우러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한 우물을 파지 못해 이리저리 파도 괜찮다. 결국은 다 모여서 지금의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가는 과정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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