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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Sep 13. 2024

한 우물이 아니고 여러 개여도 괜찮아

내 아이들을 보면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이 분명히 보인다. 혹은 그 아이들의 강점이 분명하게 보인다. 본인들의 호불호가 뚜렷하고 장점과 강점이 뚜렷한 이 아이들을 보면서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한 가지는 알겠다. 나는 앉아 있는 일이 좋다. 사실은 앉아 있는 일이어야 있는 것이다. 움직여도 안 피곤하면 좋겠지만 열심히 집을 치우거나 정리를 하고 나면 손가락이 떨리면서 한참을 누워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쇠해진 기력을 보충해야 해야 겨우 돌아온다. 그러니 앉아서 공부하고 책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최선이다. 그나마 몸을 움직이는 것이 피아노인데 이것도 앉아서 하니까 버티지 아마 다른 악기 - 서서 연주하는 일이 많은 노래나 바이올린 같으면 하다 말았을지도 모른다. 아. 그래서 내가 노래를 배우다 말았던가 하는 깨달음이 온다. 생각해 보니 합창단 지휘할 때도 매우 힘들었다. 그럼 움직이는 일이 많은 초등교사를 어떻게 하냐고 물으신다면.... 아이들이 하교한 후에는 정말로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려고 필사적으로 앉아서 자료를 만들면서 보내며 에너지를 보충한다. 


그렇게 앉아서 지내다 보니 몸이 점점 안 좋아져서 운동을 해 보았더니 이제 운동의 즐거움을 알기는 하겠다. 다만 여전히 일어서서 하는 운동에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서 어떤 날은 계속 앉거나 누워서 하는 운동만 한다. 가끔 필라테스 선생님이 서서 준비 스트레칭을 하시면 나는 앉아서 한다. 괜찮다. 온라인으로 영사을 보며 하는 것이니 선생님은 내가 앉아서 하는지 모르시겠지. 그래서 필라테스나 요가를 주로 하는 것이고 배드민턴이나 다른 구기 종목 등등은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니 눈물을 머금고 의지를 그러모아한다. 물론 하다 보면 재미있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하고 나면 힘드니까 그 후폭풍을 알기에 아무래도 몸을 사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한가. 나는 아마도 정몽주처럼 일편단심으로 한 가지만 파고들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그 안에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둔다. 좋아하는 마음의 총량은 비슷할 것이다. 하나에 다 담느냐 여러 곳에 나누어 분산하느냐의 차이일 뿐. 오늘은 이 우물을 파고 내일도 같은 우물을 파면서 몇 달을 지내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다른 우물로 건너가기도 하고 동시에 파기도 한다. 삶이 바쁘면 한동안 방치해 둘 때도 있다. 이렇게 하다가 가끔 위로가 필요할 때, 혹은 그리움이 솟구칠 때, 여유가 좀 있을 때, 그리고 그냥 힘이 들어 그냥 마음 쏟을 곳이 필요할 때, 나누어 둔 애정이 담긴 곳들을 징검다리처럼 퐁퐁퐁 디디고 건너보면서 오늘 하루를 채우고 한 주를 채우고 한 달을 채우고 그렇게 일 년을 채운다.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40년을 넘게 살아보니 모든 배움은 쓸모가 있었다. 꼭 실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 과정에서 주는 배움과 깨달음은 좁았던 시야를 조금씩 조금씩 넓혀주고 있다. 마음을 품어주고 다독여 주면서 성장하는 지지대가 되어 주었다. 이리저리 작게 작게 파둔 우물들은 디딤돌처럼 이정표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조금 더 깊이 파 보기도 하고 그 곁에서 가지를 쳐 나아가 보기도 했다. 나를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해 보았기 때문에 어떤 준비과정이 얼마나 필요한지 가늠을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전체적인 스케치를 해 보는 요령도 조금 생겼다. 마침내 정말로 해야겠다는 결심이 서면 바로 파고들어 갈 수 있는 힘이 길러졌다. 준비 없이 바로 하는 때도 물론 있다. 융통성 없고 답답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렇게 다양한 것들을 반복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어쩌면 조금은 유연하고 여유로운 사람이 되어가나 보다. 그래서, 해 보니 괜찮았다. 오늘은 영어와 피아노라는 우물을 조금 더 파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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