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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Sep 09. 2024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도 중요한 것은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가끔씩 가시나무 노래가 떠오른다. 왜 내 안에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늘 하고 싶은 일들로 꽉 차 있을까. 하루가 48시간이라면 좋겠고 잠은 반만 자도 좋겠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나는 늘어난 그 시간만큼 다른 일을 또 벌려서 하고 있겠다 싶은 것이다. 어쩌면 사람이 이럴 수 있을까 싶은데 여하튼 그랬다.


그래서 어쩌면 당신의 쉴 곳이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로 가득 차서 내가 절실한 누군가가 내게 머무를 곳이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일일까. 그래서 나를 많이 버릴 수밖에 없었다. 많이 비우고 많이 버리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던 건 그 대상이 내가 사랑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좋아하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잠시 미뤄둘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람인 내가 아이들을 위해서는 온갖 먼지를 먹어가면서 땡볕 아래서 몇 시간씩 기다릴 수도 있고, 장거리 운전을 수시로 할 수도 있고, 때로는 머리를 숙이며 사정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시간을 10년 정도 보내고 나서 막둥이가 4살이 되니 조금씩 나를 위한 시간이 생기는 것이 보였다. 한 번 봉인이 열리니까 또 가끔은 지나치게 몰입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아차 싶다. 어차피 내가 아이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막둥이가 대학교를 가는 앞으로 8년 정도까지. 


물론 여전히 딸들은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기도 하지만 점점 친구와 보내는 때가 더 많다. 아들들도 곧 그럴 것이다. 이번에도 뮤지컬을 보러 가자는 제의에 아들들은 '노'라고 대답을 했다. 딸아이들은 좋다면서 나간 김에 요구르트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오는 코스를 신나게 계획하고 있다. 나도 같이 놀 친구가 있고 이것저것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재미있는 일들이 충분하다. 하지만 뭔가가 즐겁고 신난다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 안 보이는 곳에 중심이 되어서 든든한 마음으로 버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또 생각해 본다. 이것저것 다 할 수 있어도 가장 중요한 것. 나를 지켜주는 가족을, 그리고 소중한 관계들을 잘 보면서 가야겠다고.


그러니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도 당신의 쉴 곳을 위해서는 기꺼이 자리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 자리가 있어야 너무도 많은 내가 결국은 서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쉴 곳을 찾아 날아온 어린 새들이 가시에 찔려 날아가지 않도록, 그 가시를 잘 쳐내면서 쓸만한 나무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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