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는 복직한 그 해, 영어교과 전담 교사를 신청하지 않았다. 이렇게 오래도록 번역을 했고 엄마표 영어를 진행하면서 스터디 리더로 나름 유명했다면 영어를 꽤 잘하는 사람일 것이다. 당연하게 드는 생각 아닌가? 실제로는 초라했다. 나는 이런 타이틀 속에 숨은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제대로 원서다운 원서를 읽지 않았고 회화다운 회화도 하지 않았다. 집중해서 영어 듣기도 하지 않았다. 짧게 기본적인 몇 마디를 나누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있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래서 복직한 학교에 원어민 교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영어교과 전담 교사를 신청하지 않은 것이다.
겉만 화려한 속 빈 강정. 그게 나였다. 내 본래의 실력이 탄로 날까 봐. 내 형편없음이 드러날까 봐. 그렇게 버티고 버텼다. 심지어 복직한 후에는 번역도 그만 두었으니 간간히 아이를 위한 엄마표 영어 워크지를 만드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영어를 공부해야지 하는 생각은 했지만 일상이 바쁘다는 이유로 그렇게 저렇게 흘러가게 두었다.
그랬는데, 2년 후 나는 영어교과를 맡게 되었다. 학년 배정을 할 때는 점수로 순위를 매긴다. 나는 2학년만 두 번 했다. 그 2년 동안의 2학년 담임이 쉬웠는가 하면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2학년은 점수가 낮다. 상대적으로 일찍 끝나고 편한 학년이라는 인식에서이다. 실제로 조금 더 수월하기도 하다. 그것은 지나 보니 보이는 것이고 복직한 첫 해의 2학년은 정말로 오랜만에 날짜를 하루하루 세며 지나가야 했을 정도로 힘들었다. 우리 학년의 힘든 아이들은 3명 빼고 다 우리 반에 모여 있어서 부정적인 시너지가 엄청났다. 3학년으로 그 아이들을 모두 나누어서 보내고 났더니 해마다 각 반의 담임 선생님들에게 모두 전화가 올 정도로 힘든 반이었다. 그러나 내가 가진 점수는 고작 2점. 그 해 유난히도 교과전담에 대한 지망이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그리고 같이 영어를 가르치게 된 애정하는 후배에게는 미안하지만, 양해를 구했다. 보통은 3학년과 5학년, 4학년과 6학년의 형식으로 나누어 맡는데, 나는 3학년과 6학년을 가르치겠다고 했다. 2년 전 나에게 악몽을 선사했던 그 아이들이 있는 4학년을 맡고 싶지 않은 것도 이유였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우리 학교는 규모가 작아서 원어민 교사가 4학년부터 수업에 참여한다. 원어민 교사와 함께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3학년을 맡는 것이 나았다. 6학년은 주 3회 영어 수업을 하는데 그중에 2번은 원어민 교사와 함께 하는 코티칭이다. 주 5일 중 이틀만 하면 되겠다고 나름 머리를 굴린 것이다. 내 브런치 이웃 작가 중에는 그때 같이 가르친 후배 선생님이 있다. 이 글을 읽고 있을 그녀에게 솔직히 부끄럽다. 톡 까놓고 내 속내를 밝힌 적이 없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렇게 글로 쓰게 되었다.
첫날, 원어민 선생님과 후배 선생님과 셋이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반도 못 알아 들었다. 그렇게 어려운 영어를 구사하는 것도 아니고 말을 빠르게 하는 것도 아닌데 자꾸자꾸 놓치고 못 알아 들었다. Pardon? Excuse me? Can you say that again? What did you say? 하고 물어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 나는 적당히 알아듣는 척하면서 조용히 있는 것을 선택했다. 가끔 원어민 선생님이 재미있는 영상이라고 보여주는데 정말 무슨 말인지, 왜 웃기는지 못 알아들을 때는 정말 슬펐다.
아, 우리 후배 선생님은 나와 15년 전에 같이 영어 연수를 듣다가 만난 과 후배이기도 해서 좀 각별한 인연이다. 늘 통통 튀고 발랄하면서 사랑스러운 에너지를 간직해서 그 오랜 기간 동안에도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좋아했다. 그녀를 보면서 나는 자꾸만 작아졌다. '후배는 그 때나 지금이나 영어를 잘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퇴보했지?' 하는 그 좌절감이 더 컸다. 후배와 원어민 샘은 둘이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정말 그 사이에서 힘들었다. 나중에 원어민 선생님에게 뭔가 질문을 하면 이런 대답이 나올 때가 있다.
"그때 다 이야기하지 않았어?"
"그때 솔직히 제대로 못 알아 들었어."
"...."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어느 사이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