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일이었다. 시작한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기록을 해 두었기 때문이다. 11월 말이었고, 6학년 교과서를 들여다보면서 수업 준비를 하던 참이었다. 몸의 상태를 묻고 답하는 단원이었고, 아픈 아이에게 적절한 응답을 해 주는 것까지가 단원의 목표였다.
"어디 안 좋아?"
"두통이 있어."
"정말 안 되었구나. 가서 좀 쉬렴."
네 문장으로 된 정말 간단한 대화였다. 그런데 이 문장을 보고 바로 영어로 말할 수 있을까? 세 번째까지는 된다고 해도 마지막 네 번째 문장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Go and get some rest." 이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가서 좀 쉬어."라는 아주 간단한 문장.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쉬라는 말을 어떻게 영어로 할 것인가. take a break? 혹은 relax? take a break는 하던 일을 멈추고 글자 그대로 잠깐 쉬는 것이고 relax는 몸과 마음의 긴장을 늦추면서 이완하는 스트레스 해소에 조금 더 가깝다. 아픈 상태니까 가서 쉴 때는 get some rest가 조금 더 어울리는 것이다.
"What's wrong?"
"I have a headache."
"That's too bad."
"Go and get some rest."
이 간단한 문장을 보면서 혼자만 외우기에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어떻게는 영어를 따라잡고자 교과서에 나오는 문장들을 외우고 또 외우면서 입에 붙이던 중이었다.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영어는 조금 틀릴 수는 있어도 교과서에 나오는 문장들을 틀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그때 큰 아이와 같이 산적의 딸 로냐를 DVD와 원서로 같이 공부하던 중이었다. DVD를 보던 중 "Finally, Ronja's fever was gone."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마침내 로냐의 열이 내렸다.'라는 뜻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down이 아니라 gone이라고 표현을 했다. '가다, 사라지다, 떠나다' 등의 뜻을 가진 동사 go를 써서 표현한 것이다.
혼자서 보고 넘기기에는 조금 아까운 표현들. 누군가 같이 공부할 사람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매일매일 한 문장씩 일주일에 5일간, 3주간 함께 해 보실 분들이 계신지 여쭤 보았다. 그리고 그 글에 17분 정도 참여 의사를 밝혀 주셔서 그렇게 첫 시작이 이루어졌다. 오픈 단톡방에 모여서 하루에 한 문장씩 외우기로 했다. 매일매일 카카오톡 음성녹음으로 인증하고 한 번은 외워서 써 보는 필사 사진을 같이 올리는 형식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욕심을 내어 저렇게 기본 문장에 추가로 연관되는 표현들을 서너 개씩 묶어서 하루치 공부량을 만들어 보았다. 옆에서 스크립트를 보면서 끙끙거리는 것을 본 원어민 선생님이 뭐 하냐고 물어보더니 녹음을 해 주겠다고 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 나중에는 문장을 고르는 것까지 도와주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해 보니 역시 이렇게는 오래 못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는 짧고 굵게 가야 할 때도 물론 있겠지만 외국어 공부는 가늘고 길게 가는 것이 내게는 맞았다.
그래서 하루에 하나씩 외우는 영어문장이라는 제목의 취지에 맞게 한 문장씩만 하기로 했다. 다만 원문의 문장이 다소 긴 경우는 조금 더 짧고 간결하게 줄여서 외우기 쉽게 만들었다. 그렇게 3주를 해 보니 역시 준비하는 한 주간의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렇게 3+1의 시스템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20분 정도의 짧은 애니메이션 에피소드 한 편에서 문장을 뽑아내다가 아예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고 잘 아는 영화 한 편을 가지고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겨울왕국 1, 겨울왕국 2, 드래곤 길들이기, 보스 베이비, 메가마인드까지 다섯 편의 영화를 다루었다. 영화 대본을 출력해서 몇 번이고 보면서 유용한 표현들을 찾아내고 영화 속 상황이 아닌 실제 상황에서도 쓸 수 있는 표현들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함께 하시는 분들은 점점 늘어났다. 처음에는 그냥 모든 분들의 인증하시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발음 피드백도 해 드리기도 하고 서로서로 다른 느낌의 녹음에 즐거워했다. 다 완주하신 분들께는 인증표도 만들어 드렸다. 오랜만에 제대로 영어 공부를 해 보니 중학교 때 문장을 수없이 반복해서 외우던 기억이 나면서 더 좋았다. 인증을 할 때는 가능하면 외워서 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만큼 반복을 하면서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그 학교를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2년 동안 나는 충실하게 하루에 하나씩 영어문장을 외우면서 (물론 중간에 쉬는 날도 많았지만) 대략 400개 그 이상의 표현들을 내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매주 한 번씩 문장들을 한 글에 모으고 설명도 같이 올렸다. 다른 분들과 나누고 싶어 했지만 결국 가장 큰 혜택을 받은 것은 나였다. 눈으로 본 것은 금방 잊지만 말로 소리 내어 말해 본 것은 조금 더 오래가고 가르칠 때 제일 오래 기억한다는 말이 있다. 문장을 고르면서 어떻게 설명을 할지 고민하고 글로 직접 정리해 보는 과정을 통해서 정말 많이 배웠다. 그때 그렇게 문장들을 외우고 공부하면서 조금씩 영어 공부의 문을 열어가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