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잘 자랐다. 큰 아이는 어려서부터 문자 인지가 뛰어났고 언어 감각이 좋았다. 잘 못했으면 욕심을 안 냈을 텐데 객관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 잘하는 아이를 보니 은근슬쩍 욕심이 났다. (엄마들은 도치라고 하지만 나는 나름 냉정한 시선으로 아이들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집에는 영어수업연구와 영어캠프를 진행하면서 모아 둔 영어 동화책들과 자료들이 많았다. 아이와 영어 동요를 듣고 영어 동화를 읽고 영어 놀이를 했다. 마음 한 구석에는 이러다 나중에 나도 엄마표 영어 관련 책을 쓰는 거 아냐?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큰 아이는 정말로 잘했다. 어려운 영어 글짓기도 쑥쑥 해 주었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스피치도 너무나 잘해 주었으니 나는 보다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지금 꽤 유명한 외국어교재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거기서 우리 아이를 데리고 팀을 만들어서 무료로 영어 자료를 만들어 나누어 주면서 스터디를 이끌어가는 스터디 리더가 되었다. 처음에는 즐거움으로 했는데 리더가 되는 순간부터 압박감이 느껴졌다. 아이에게 서서히 강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리더맘의 아이니까, 좀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즐겁게 놀이식으로 하던 영어는 어느 순간 무거운 짐과 주요한 과제가 되었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카페에 글을 올려야 하니 뭔가 더 그럴싸하고 다양한 활동들도 많이 넣어야 했다. 사진을 찍고 영상을 몇 번이고 촬영하면서 아이에게 완벽함을 요구했다. 문제는 내가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큰 아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밑의 다른 세 아이에게도 적절한 인풋이 있어야 하니 나는 시간에 쫓기기 시작했다. 거기에 다른 아이들의 과제 글을 보고 피드백도 주어야 했다. 이렇게 한다고 별다른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닌 순수한 무료 봉사와 나눔이었다. 처음에는 선의로 시작하고 즐거움에서 비롯된 일이 점차 짐이 되면서 아이는 슬슬 영어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 더 치열하게 하는 것을 미루기 시작했다.
큰 아이 다음은 둘째였다. 둘째를 데리고도할 것은 차고 넘쳤다. 다만 첫째에게 먼저 집중하다 보니 둘째는 상대적으로 늦었다. 또 둘째는 문자 인지가 큰 아이보다는 늦는 편이었다. 그래서 한글에 집중하다 보니 아무래도 영어 도입이 늦었다. 그런데 그렇게 한 것이 둘째에게는 잘 맞았다. 둘째는 나름으로 지금까지 잘 쌓아가는 편이다.
학원을 안 보내고 엄마표 영어로 이만큼 아이들의 영어를 성장시킨 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딸 둘을 데리고 할 만했다고 여겨진다. 가계의 수입이 극도로 없던 시점에서 엄마표 영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아이들에게 조금 더 잘할 것을 요구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다. 그 바람에 더 좋은 것을 많이 놓쳤다. 그래서 큰 아이에게 제일 미안하다. 큰 아이는 지금도 영어회화는 잘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외국인 학생이 오면 이 아이를 통역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영어로 된 책도 읽을 수 있고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구사하지만 본인이 스스로 적극적으로 파고들면서 즐기며 치열하게 집중하는 예전의 모습은 없다. 그리고 나는 지은 죄가 있기 때문에 아이가 스스로 일어설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다.
셋째와 넷째에게는 이만큼 해 주지 못했다. 위의 두 아이에게 너무 많이 쏟아내었기에 진이 빠진 것도 있고 나 스스로에게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셋째와 넷째는 내가 하는 대신 그냥 주 1회 눈높이 영어를 보냈다. 아이들과 자꾸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2-3년 정도 기본적인 느낌만 잡아 주다가 지금은 기본 읽기 연습과 쓰기 연습을 하루 5분 정도로만 하고 있다. 서로의 감정을 상하지 않는 상태에서, 하지만 학교 교육과정은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만. 그렇게만 해도 괜찮다는 것을 시행착오를 거친 다음에 배웠다.
그래서 이제 나는 엄마표 영어로 그럴싸하게 보이는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 영어만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실제로는 논리적인 사고도 제대로 못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한국어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지 못한 상태에서 영어만 했기 때문에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하게 되어 버린 경우도 종종 보았다. 아이를 잠도 재워가지 않으면서 영어만 강요하는 엄마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영어를 잘하는 선생님들은 이렇게 묻는다. "아이가 앞으로 한국에서 지낼 것인가요, 아니면 해외에서 지낼 것인가요?" 대학을 해외로 가고 거기서 앞으로 생활할 것이라면 영어 중심으로 교육을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언어 한 가지를 집중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모국어로 삼을 한 가지 언어를 선택하고 충분히 발전시킨 후에 그 위에 다른 외국어 하나를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영어도 한국어도 애매하게 해 버리면 아이가 중심으로 삼을 언어축이 사라지는 것이다. 내가 마흔 이후에 다시 영어를 공부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책으로 탄탄하게 다진 모국어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 엄마표 영어로 유명해지지 않음에 감사한다. 물론 정말 인격적으로 한국어와 영어와 다른 것도 잘 잡으시면서 훌륭하게 잘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신다. 그분들을 폄하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다만 나와는 다른 성향을 가지신 분들이고 나는 그분들 중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조급했던 그 모습 때문에 많은 것을 놓치고 더 많은 것을 잃을 뻔 한 경험은 정말 큰 가르침이 되었다. 그리고 뭐든지 될 것 같고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조용히 교만했던 나 자신에게 being humble과 being patient란 무엇인지 알려주는 귀한 깨달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