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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딩차이 Oct 22. 2023

1부_이백은 어떤 인물일까요?

이백이 궁금해요

1.  신비로운 출생 시작부터 남달랐어요.


     이백은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 전인 701년에 태어났어요. 이백이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꿈에 태백성이 나타났다고 해요. 그래서 우리는 이백을 이태백이라고도 부르죠. 태생부터 남달랐어요.  

    《신당서新唐書》의 기록에 따르면 이백은 흥성興聖 황제 이고李暠의 9세손九世孫으로, 당나라의 여러 왕족과 같은 핏줄이라고 해요.

     이백의 조적祖籍은 지금의 감숙성甘肅省에 있는 천수天水예요. 이백은 서역西域, 지금의 키르키즈공화국 경내에서 태어났어요. 5살 때 아버지 이객李客을 따라 촉 땅,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강유시江油市 청련향靑蓮鄕으로 이사를 왔다고만 전해져서, 그 전의 일은 미스터리로 남아있어요. 청련거사靑蓮居士란 호는 이곳 이름을 가져온 것이에요. 



2. 풍요로운 청소년 시절을 보냈어요.



    이백은 청소년 시기를 어떻게 보냈을까요? 이백은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활달하여, 시를 짓고, 친구 사귀는 것을 좋아했어요. 

    이백은 지금은 사천성 지역인 촉 땅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어요 여기에서 머무는 동안 부지런히 학문을 닦고 검술 수련을 했어요. 폭넓은 독서로 경서經書와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사상을 독파하였어요. 현재 시집인 《이태백집李太白集》이 전해지고 있어요. 

    이백이 살았던 시기는 당나라가 가장 흥성했던 시기예요. 이백은 ‘내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를 고민하면서 촉蜀 지역의 명승지를 유람하며 견문을 넓혔어요. 

한 번은 익주益州에서 소정蘇頲이라는 유명한 문장가를 만났어요. 소정은 이백의 문장이 전한前漢 시기의 사마상여司馬相如와 견줄만 하다며 극찬하였어요. 



3. 전국을 누비며 견문을 넓혔어요.



    옛날 사람들은 이동이 지금만큼 편리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이백은 그 당시에 중국 땅의 반을 돌아다녔다고 해요. 엄청나지요. 이백은 혼자 여행 가기도 하고, 친구들과 같이 가기도 했어요. 시로 유명해지니 여러 곳에서 불러주고 또 환대해줘서 이백은 여행의 즐거움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지요.  

    20살 전에는 사천성 일대를 주로 다녔지만, 그 이후로는 사천성 외의 지역들을 다니며 견문을 넓히고 시로 이름을 알렸어요. 

    여행을 다니려면 경비가 만만치 않죠. 이백의 집안은 꽤 잘 살았고 또 부인도 뼈대 있는 재상宰相 가문이라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지요. 그리고 가는 곳마다 친구들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여비旅費를 넉넉히 챙겨줬다고 해요. 

    전국 곳곳을 여행하면서도 이백은 언젠가는 장안으로 가서 뜻을 펼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4. 이백의 꿈은 진행형이에요.


    이백의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천재라고 할 수 있는 이백의 꿈은 아주 컸어요. 나라를 위해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쓰고 싶었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백은 과거시험을 볼 수 없었다고 해요. 그 당시 상인商人 출신은 과거시험을 볼 수 없었어요. 그래서 이백은 추천을 받는 수밖에 없었지요. 이러한 이유로 이백은 더 많이 여행을 다니며, 자신의 재능을 널리 알리려고 노력했어요.

    마흔이 넘어서야 마침내 하지장賀之章이라는 유명한 시인의 추천으로 한림시랑翰林侍郞이라는 관직을 갖게 되었는데, 고작 황제를 위해 글을 쓰는 일이었지요. 나라를 위해 더 큰 일을 하고 싶었는데, 한낮 글쟁이에 지나지 않는 것이 원망스러웠어요. 장안에 있는 동안은 재능을 펼치는 날보다 술을 마시는 날이 더 많았을 정도였어요. 

    비록 자신의 꿈을 펼치지는 못하였지만, 아직도 이백의 시는 많은 사람에게 꿈을 전하고 있어요. 이런 면에서 보면, 이백의 꿈은 아직 진행형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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