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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Oct 09. 2023

7. 돼지우리에서 그만 살고 사람답게 살아야 되잖아

- 집청소하기

때때로 무신경하게 방치해 두었던 일들이 나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한 가지의 눈엣가시가 보이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잊고 지냈던 문제점들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나 같은 경우는 우리 집 현관문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열쇠고침 광고 스티커들과 예전에 스티커를 떼고 남은 자국들이 슬슬 거슬리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현관문 앞에 붙어있는 것들을 봐도



'언젠가 다 떼버려 하는데... 이 더러운 스티커 자국들도 다 지워야 하는데...'



하고 생각만 할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 일쑤였다. 그렇게 집으로 들어오는 매 순간마다 귀찮음에서 기인한 반복되는 미룸이 계속되었고, 또 어떤 날은 아예 그것들을 인지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익숙해져버리기까지 했다.



그러다 마침내 계속 미뤄두었던 현관문 청소를 해치워 버리자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문득 궁금해졌다. 다른 집들 현관문은 어떨까? 이제까지 나는 집으로 들어오기만 급급했지, 남의 집 현관문을 굳이 봐본 적은 없었다. 같은 층에 살고 있지만 우연히 엘리베이터를 탈 때만 마주칠 뿐, 우리 집 앞과 옆 집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도 솔직히 잘 모른다. 남의 집 문을 빤히 쳐다보는 게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는 오히려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이웃집 현관문의 상태가 궁금해 우리 집 바로 앞 집의 현관문을 빤히 쳐다보며 관찰했다. 그런데 웬걸? 엄청 깨끗했다. 분명 우리 집 현관문에만 집중적으로 광고물을 붙이진 않았을 텐데 앞집 문이 너무나도 깨끗해서 광고물들을 무심하게 방치만 했두었던 내가 다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현관문만 봤는데도 앞 집 사람이 자신의 집을 소중해 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와 반대로 나는 아이를 방임하듯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무신경하게 방치하고 있었다.



이건 비단 현관문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집 안으로 들어오니 현관에는 신발들이 바로 옆에 있는 집조차 찾아들어가지 못해 널브러져 있는 술 취한 사람들처럼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신발들을 집어넣으려 신발장 문을 여니 문이 닫히는 쪽 모서리마다 시트지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이 상황에 순간 정신이 급피로 해진 상태로 내 방으로 들어오니 방바닥에는 내 머리카락들이 널려있고 책상 위는 온갖 물건들로 어지러웠다, 침대는 정리가 안 되어 내가 아침에 일어난 모양 그대로였다. 이번엔 화장실로 가보니 욕실바닥은 물 때로 가득했고 변기 안은 끔찍할 만큼 더러웠다. 거울에도 손 때와 물 때가 잔뜩이었다. 그 밖에도 초인종은 오래전에 고장이 난 상태 그대로였고, 부엌 전등은 다 나가 불은 들어오지도 않고, 부엌 바닥은 마치 지진이라도 겪은 듯 틈이 갈라져있었다. 왜,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깨진 유리창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쓰레기를 갖다 버리고, 그곳에는 범죄율까지도 올라간다는 이론인데 그 이론이 바로 우리 집에서 적용되고 있는 듯했다.



현실을 마주한 후 두통이 몰려왔다. 예전엔 이 모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모른척하거나 그냥 회피해 버리고자 침대로 들어가 눈을 감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내가 당면하고 싶은 않은 상황들을 피하면 피할수록 해결해야 할 문제들만 겹겹이 더 쌓이고 있었다. 나는 남들이 보기엔 외관상으론 멀쩡해 보이는 집에 살고 있었지만, 그 안은 엉망 그 자체였다. 집 안 꼴이 마치 내가 겪었던 마음상태를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은 어둠과 우울로 가득한 늪지대.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오려고 노력해 왔는데 나 혼자서 이 집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게 막막해 다시 늪으로 빠져버리는 느낌이었다. 나 혼자만 사는 집도 아닌데…



그래도 이번엔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고 하나씩 차근차근 해결해 보기로 했다. 자칫 무기력하게만 뻗어버릴 수도 있던 몸을 침대에서 일으켜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우리 집 문 앞에 서서 맨손으로 스티커들을 하나씩 떼어내 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것들이 어찌나 접착력이 좋은지, 쉽사리 떼어지지 않았다.  도저히 손과 손톱만으로는 스티커를 깔끔하게 떼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나는 결국 인터넷 검색 찬스를 사용했다.



'지우개로 지우면 스티커가 없어진다고?'



나는 당장 방으로 돌진해 지우개를 가지고 나갔다. 놀랍게도 예전에 대충 떼어냈던 스티커 자국들이 지우개 똥이 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새로 붙여진 스티커를 없애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우개가 가엾게도 너덜너덜 해졌다. 다시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번엔 베이킹소다가 좋다고? 바로 주방에서 베이킹소다에 물을 조금 타서 가지고 나왔다. 설명에는 베이킹소다를 묻히고 10분 정도 기다리라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고, 누가 검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급한 마음에 베이킹소다를 스티커가 있는 곳에 묻힌 후 바로 수세미로 문질렀다. 그래도 효과는 있었다. 우리 집 문에 찰싹 붙어 있던 스티커들의 흔적이 조금씩 사라졌다. 스티커들이 모두 사라지고, 이왕 하는 김에 현관문 전체를 닦아줬다. 현관문은 이 집에 십 년 넘게 살면서 난생처음 닦아봤다.



'미안하다, 이래 봬도 네가 우리 집 얼굴인데…'



마른 수건으로 문에 묻은 물기를 훑는 것으로 현관문 스티커 떼기 작업을 마쳤다. 한 발자국 떨어져 우리 집 문을 감상해 보았다. 깔끔했다. 그리고 뒤이어 뿌듯함이 몰려왔다. 그래, 이렇게 방치해 왔던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 되는 거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 속 안은영이 학교 내 기운이 좋지 않은 젤리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듯, 내가 집안의 문제들을 하나씩 클리어해 나갈 때마다 나를 감싸고 있는 어두운 아우라가 밝고 좋은 기운으로 바뀔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개인은 주변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환경 또한 개인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유기적 존재다. 나의 안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되고 있으니 나는 나의 주변 환경 또한 변화해 나아갈 수 있다. 환경 속의 인간. 강의 시간에 단순한 이론으로만 접했던 이 개념을 내 실생활에서 잘 적용하게 되길. 나 스스로가 나 자신을 위한 복지 하는 삶을 살길.



현관문 청소를 마치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오우 쒯'



혼돈의 카오스인 집안의 상태를 보고 있자니 또다시 피곤해진다. 아무래도 이건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청소업체의 도움을 받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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