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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Oct 17. 2023

15, 108배하며 내게 살아갈 용기가 생기길 기도해

- 108배하기

사실 나는 무교이지만 불교에 약간의 호감을 가지고 있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나의 친할머니께서는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대신 나와 내 동생을 돌봐주기 위해 매번 평일 낮 시간 동안 우리 집에 오셨다. 이 때문에 불자이신 우리 할머니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였는지, 나는 가끔씩 할머니가 리듬을 섞어 중얼중얼 거리며 불경을 외시던 것을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할머니의 그 중얼거림이 무슨 의미였던 것인지는 솔직히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당시 자신만의 리듬으로 기도를 하시던 할머니를 회상해 보면, 내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불안정감이 서서히 잦아들며 마음이 푸근해지는 느낌이 든다.



예전에 모 연예인이 자신의 불안함과 답답함을 해소해 보고자 108배를 하고 있다며 덤덤하게 얘기하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사실 나는 요즘 우울증이 점차 좋아지는 듯하면서도 때때로 가슴이 답답해지고, 부정적인 생각이 불쑥 튀어나와 나의 머릿속을 휘몰아칠 때가 있다. 그 때면 해당 연예인이 108배를 하며 마음수양을 하고 있다는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정말 108배를 하면 나의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도 잠재울 수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 나는 어디 한 번 108배를 직접 시도해 보기로 했다. 무교임에도 이런 종교적인 행위를 해본다는 것에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은 까닭은 우리 할머니의 영향도 컸으리라.



일단 행동까지는 시간이 좀 걸려도 사전 준비만큼은 철저한 나답게 108배 시작 전, 인터넷에서 108배를 하는 방법과 그 효능 등에 관해 검색해 보며 탐색 과정을 거쳤다. 그러고 나서, 내가 108번의 절을 하며 일일이 숫자를 세다가 혹시 중간에 센 걸 까먹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어플이 있는지 구글스토어도 뒤져보았다. 그리고 108배 숫자를 자동으로 세어주는 어플이 있길래 그것을 다운로드했다. 그리고 그 후 몇 분간,



'지금 당장 할까, 아니면 내일 해볼까?'



하는 귀찮음과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귀찮음보다 가슴이 답답한 게 더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온지라 나는 지금 당장 108배를 해보기로 하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맨바닥에서 108배를 하면 무릎에 안 좋을 수 있다고 하여 제일 먼저 바닥에 푹신한 요가매트를 깔았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절을 할 때 무릎이 땅에 닿는 부분에도 두툼한 방석을 깔아주었다. 그리고서는 108배 어플을 실행했다. 나는 눈을 감고 절을 하기 시작했다. 어플에서는 딱딱거리는 죽비소리가 나오며 그렇게 나의 108배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초반에는 그럭저럭 할만했다. 그런데 고요함 속에서 계속 절을 하려니 머릿속에서 온갖 잡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놈의 원숭이 자식, 또 너냐? 나는 우끼끼끼 날뛰는  원숭이 같은 잡생각을 물리치기 위해 내 삶에서 이뤄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며 절을 해나갔다. 마치 자식의 수능 대박기원을 위해 학부모가 백일기도를 하는 마음으로, 나는 나 자신의 정신적 안녕과 마음의 평화를 위해 절을 했다. 나를 위해 기도를 해줄 사람은 딱히 없으니 나 자신이라도 나를 위해 무언가라도 해야 했다. 살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심지어 내가 학창 시절에 영어단어를 암기하면서 가장 좋아했던 단어조차도 unique(독특한)이었을 정도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부정적인 방식으로 내 삶이 유니크 해질 줄은 전혀 몰랐다. 나는 내가 이십 대 내내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줄도 몰랐고, 내가 밖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방 안 침대에 누워 암울한 생각에 갇힌 채 시간을 흘려보내게 될 줄도 몰랐다. 이런 삶은 내가 원한 게 아니었다. 이런 독특한 삶이라면 나는 이제부터 제발 평범하게 살고 싶다. 나는 108배를 하며 두 손 모아 부디 내가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게 되길 빌었다.



그런데 말이다. 계속 절을 하다 보니 몸에서 점점 열이 나기 시작했다.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까지 폭발했다. 허벅지도 터질 것 같았다. 이렇게 몸이 힘들어지니 덩달아 집중력도 휘청거렸다.



'어우, 이거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지?'



내가 108배를 어디까지 했나 궁금하여 실눈을 뜨고 스마트폰을 쳐다보았다. 108배 어플에는 내가 80여 번의 절을 했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된다. 하지만 허벅지가 타들어가는 느낌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이제 몇 개만 더 하면 되는데 아깝게 포기할 수도 없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조금만 더 버텨보기로 했다. 108배의 막바지. 이 순간만큼은 우울증이나 가슴 답답함이고 뭐고 나발이고, 나의 정신적 고통이 허벅지의 육체적 고통으로 모두 이동해 버린 것 같았다.



'아, 이거구나. 정신적 고통을 육체적 고통으로 치환해 버림으로써 새로운 고통이 이전의 고통을 잊게 해 주는구나. 이래서 운동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건가?'



이러한 생각에까지 이르자 108배 어플이 내가 108배를 모두 채웠다며 딱딱거리는 죽비소리로 알려주었다. 드디어 끝났다. 나는 다리가 너무 아파 바닥에 털썩 드러누워버렸다. 땀범벅으로 온몸에 찜찜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내가 108번의 절을 온전히 해냈다는 성취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래, 이렇게 미루지 않고 하나씩 차근차근 행동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거다. 나도 분명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는 저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108배를 하고 나니 가슴이 답답하던 게 사라졌다. 대신 허벅지에서 후끈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지금 느껴지는 이 허벅지의 고통은 건강한 고통이다.



'이왕 고통을 받아야만 한다면 나를 피폐하게 만드는 고통보다는 나를 성장시키는 고통이 더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108배로 허벅지가 아파져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샤워를 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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