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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Oct 19. 2023

16. 당신의 소울푸드는 뭐예요?

- 소울푸드 먹기

한국인에게 소울푸드란? 이런 화두를 던지면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제일 먼저 김치찌개나 된장찌개가 떠오른다. 김치와 된장이 한국인에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전통성과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일까? 보글보글 끓는 찌개를 먹으면 나의 몸부터 마음까지 모두 뜨끈해지고, 든든한 한 끼를 제대로 한 기분이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것만으로 볼 때, 이 음식들은 분명 소울푸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는 나의 소울푸드이다'라고 대차게 말하기에는 약간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런데 그거 아는가? 실제 미국에서 사용하는 소울푸드(soul food)라는 단어는 미국 흑인들의 전통음식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음식으로서 소울푸드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린 표현이며, 콩글리쉬라고 한다. 대신 위안을 주는 음식을 의미하는 컴포트푸드(comfort food)가 맞는 표현이라고...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나자 머리에서 약간의 띵! 함이 느껴졌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소울푸드라는 콩글리쉬가 마음에 더 와닿는다. '소울(영혼)'이라는 그 단어가 음식에 더욱 절절한 사연을 주면서 왠지 그 음식을 먹으면 내 영혼까지 치유될 것만 같은 그런 아늑한 느낌을 준달까? 



내가 생각하는 소울푸드에는 개인만의 고유한 추억이 서려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소울푸드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단박에 내세울 수 없는 이유는 그 음식에 서린 나만의 추억이 아직까지는 없기 때문인 거 같다.



'그렇다면 나의 소울푸드는 뭘까?'



머릿속에서 파노라마를 틀어 놓고 내 과거의 추억들을 뒤져보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의 소울푸드는 뜬금없게도 <고구마피자>이다.



우리 엄마는 내가 어렸을 적, 피자나 햄버거를 자주 사주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그런 음식에 본격적으로 노출되기 시작한 것은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음식을 직접 사 먹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였다. 엄마는 집에서 피자를 시켜주는 대신 직접 고구마피자를 만들어주었다. 고구마피자라고 하면 피자 크러스트에 고구마 무스가 들어가거나 토핑으로 고구마를 올리는 걸 생각하기 쉬운데, 엄마의 고구마피자는 고구마를 길쭉하게 슬라이스 하여 그 위에 토핑과 치즈를 올리는 것이었다. 엄마가 피자를 만드는 것을 도와 내가 고구마 위에 토핑을 올리고 또다시 그 위에 치즈를 솔솔 흩뿌렸던 추억들이 조각난 기억처럼 떠오른다.



어느 , 나와 내 동생이 함께 그 옛날 우리의 꼬꼬마 시절 이야기를 나누다 이 고구마피자가 언급되었다. 우리 둘은 서로 맞장구를 치면서 고구마피자를 먹던 기억을 회상하며 서로의 추억을 나누었다. 어쩐 일인지 나는 엄마가 만들어주었던 다른 음식들은 기억이 잘 안 났는데, 이 고구마피자에 대한 기억만큼은 생생했다. 피자의 모양, 피자가 완성되었을 때의 그 침샘이 도는 맛있는 냄새, 그리고 그것을 먹던 나의 행복한 미소까지… 그래서 오랜만에 그 맛이 다시 그리워졌다.



그런데 아무리 골똘하게 과거에 먹었던 피자를 회상해 보아도, 그리고 아무리 여기저기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보아도, 그 피자에 들어갔던 정확한 재료가 뭔지를 모르겠다. 기억을 더듬어 일단 고구마와 피자소스, 치즈가 들어간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 외의 토핑으로 어떤 것이 들어갔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냥 기억을 더듬거리며 내 방식대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일단, 집에 고구마가 없어서 가까운 마트에서 고구마를 구입했다. 그리고 토핑은 집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여 만들어보기로 했다. 어쩌면 엄마도 이런 식으로 남는 재료들을 활용하여 피자토핑으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맨 먼저 중상 크기의 잘 씻은 고구마 한 개를 길게 슬라이스로 잘라주었다. 그리고 접시에 슬라이스 한 고구마를 하나씩 펼쳐놓고 그 위에 피자소스를 발랐다. 집에 피자 토핑으로 쓸만한 재료들로 파프리카와 올리브, 양파가 있어서 그것들을 잘게 다져 고구마 위의 토핑으로 올려주었다. 그리고 위에 치즈를 수북하게 쌓은 후 전자레인지에 10분 정도 돌렸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레시피 비슷한 것이었다. 전자레인지에서 돌아가는 피자를 바라보며 묘한 설렘이 솟구쳤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고구마피자를 초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손으로 이렇게 직접 만들어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과연 맛은 어떨까? 전자레인지에서 피자를 꺼내보니 산처럼 쌓여있던 치즈 덩어리들이 어느새 다 녹아서 퍼져있었다. 그 모습에 식욕을 참지 못한 나는 손으로 뜨끈한 피자 한 조각을 집어 들어 그 자리에서 베어 물었다. 그런데 이런… 모양은 그럴듯했으나 맛은 예전에 엄마가 만들어 주던 그것이 아니었다. 뭔가 아쉬웠다.



'도대체 정확한 레시피가 뭐지?'



이제는 레시피를 물어볼 엄마도 더 이상 내 곁에 없으니, 엄마의 요리비법은 평생 미스터리로 남게 될 터였다. 나는 남은 피자를 꾸역꾸역 먹으며 다음에는 반드시 어린 시절에 먹었던 그 맛을 찾아보리라 다짐했다. 나에게 위안을 주었던 추억의 손맛을 찾아 헤매는 것 자체로 나에게는 소소한 삶의 목적이 생겼다. 그 맛을 찾아내기 위해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고구마피자를 탐닉하게 될까? 어쩌면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그 과정 자체에서 나의 영혼은 위안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구마피자 한 접시를 깨끗이 다 해치웠다. 비록 그것이 엄마의 맛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가 만든 고구마피자를 먹으며 엄마의 사랑을 느꼈다. 나는 이제야, 그리고 너무 늦게나마, 엄마를 짝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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