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십 대의 대부분을 우울증과 함께 보냈다. 그 감정이 끔찍이 싫으면서도 드문드문 무기력감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순간이 지속되기를 바라며 게으름의 낙에 빠졌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질척거리는 우울증과의 애증의 관계를 이제는 조금씩 정리하려 한다. 만일 내가 처음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을 때, 우울증 그놈이 나를 좀 먹는 것을 방치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적극적으로 약물치료에 응했더라면 나의 어두운 이십 대는 내가 겪었던 것과는 많이 달랐을까? 아쉽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차라리 내가 과거에 겪었던 그 우울의 순간들을 온전히 마주하는 것이 현재의 정신건강에는 더 좋을 듯싶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우울증을 겪고 보니 몇몇 좋은 점도 있다. 굳이 생각을 전환하여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자면 말이다.
일단 햇빛의 중요성을 절실히 알게 되었다. 전문의들이
"햇빛을 쬐세요. 비타민 D를 챙겨 먹으세요."
라고 할 때마다
"아, 네, 네."
하며 귓등으로만 얘기를 들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보다는 외양간을 애초에 미리 수리하고 관리해야 더 큰 문제로 번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왜 꼭 건강은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건지… 그래도 우울증과 이석증을 앓았던 경험으로 정신건강과 육체건강을 이제라도 잘 챙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울증의 경험 덕에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소재가 생겼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렇게 작게나마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으니 참… 나를 찾아와 육중하게 어둠의 늪으로 짓눌러 주고, 영감까지 얻게 해 준 우울증 그놈에게 이 부분에 대해선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렇지만 이 놈을 이제, 절대, 다시는, 어디에서든, 어느 순간에든 마주치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앞으로는 우울증이 영원히 내 삶에서 떠나가 주길 바란다.
그래도 삶은 새옹지마라고, 내 우울증 경험이 결국 나에게 거름처럼 작용하여 앞으로 내가 이것을 예술로서 승화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