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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Oct 22. 2023

17. 네가 간디야, 뭐야? 이거 다 껴안고 못 살잖아

- 필요 없는 것들 처분하기

요즘 집정리를 조금씩 해나가면서 느끼는 점은 나는 미니멀리스트로 살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다기엔 집 여기저기에 손도 못 댄 채 쌓아놓은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너무 많았다. 집 책꽂이에 몇 십 년 동안 읽지 않고 장식용으로 자리 잡은 책들부터 시작해서, 언젠간 입지 않을까 하여 옷장 깊숙이 모셔두고만 있는 철 지난 옷들이 대표적으로 내가 집에 쌓아두고 있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언제까지고 사용하지 않는 것들을 껴안고 살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처분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려니 물건들이 워낙 많아 도대체 뭐부터 정리를 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정신을 다잡고, 일단 계절이 점점 추워지고 있으니 여름옷도 들어놓을 겸 옷정리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나는 전에는 옷 입는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우울증에 걸리고 나서부터는 옷에 대한 관심이 많이 시큰둥해져 버렸다. 그래서 입던 옷만 계속 돌려 입다 보니 옷장에는 몇 년간 입지 않은 옷들이 수두룩했다. 심지어 고등학생 때 입었던 옷들도 아직까지 남아있었다. 하도 옷장에만 있다 보니 하얗게 곰팡이처럼 먼지 쌓인 것들도 몇몇 보였다.

이 중 앞으로 입을 옷들과 입지 않을 옷들을 분류해서 나눠보기로 했다. 옷을 하나하나 입어보며 분류작업을 하다 보니 때 아닌 방구석 패션쇼가 열렸다. 전신거울 앞에 서서 옷을 걸친 나를 보는데, 새삼스럽게 옷을 이것저것 입어보는 행위가 너무 재밌게 느껴졌다.

'아 그렇지, 나 예전에 옷 입는 거에 관심 많았었지… 이렇게 예쁜 옷들을 그동안 너무 안 입고 처박아두고만 살았구나…'

이런 생각이 들자 당장이라도 예쁘게 차려입고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였다. 언젠가는 내가 쉬는 날에는 거의 집에만 있는다고 하자 한 지인이 놀라며 나에게 말했다.

"가장 예쁠 땐데 왜 집에만 있어!"

그러게… 왜 난 집에만 있는 걸까? 전신거울 속 오랜만에 차려입은 내 모습을 보니, 앞으로는 너무 집에만 있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옷을 꺼내 입고 밖으로 좀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 내 삶에서 가장 예쁘고 어릴 때이니까.

그런데 계속해서 옷 분류 작업을 해나가는데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옷을 처분하려고 보니 왠지 그 옷들에 미련이 생겨버린 것이다. 분명 몇 년간 눈길도 주지 않았던 것들인데, 오랜만에 그 옷들을 다시 마주하게 되니,

'그래도 언젠가는 입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잠시만, 이러면 처분할 옷이 없어진다. 그래서 아무리 미련이 남았어도 너무 해진 옷, 보풀이 많이 생긴 옷, 지퍼에 녹이 슬어 지퍼 색이 초록색이 되어 버린 옷, 단추가 떨어진 옷들은 양심적으로 모두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입을 만하지만 나에겐 너무 짧거나, 더 이상 내 스타일이 아니게 된 옷들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를 하기로 했다. 이로써 아예 버려버릴 옷들은 5개 남짓 나왔고, 기부할 옷들은 3박스나 나왔다.

다음으로 미련을 버려야 할 품목은 책이었다. 책이라는 것이 참 신기한 게, 책의 실제 내용을 모르더라도 책장 가득 채워진 책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왠지 내가 지식인이 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온 집 안을 훑으며 우리 집 모든 방 책장에 있는 수많은 책들을 바라보니 나는 옷에 대한 미련보다 책에 대한 미련이 더욱 가득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처분할 책들이 있을지 찾아보았다. 대학생 때 사용했던 전공 서적이 처분 1순위로 떠올랐다. 그런데 처음 구매할 때는 비싸게 주고 구매한 책들인데, 이것들을 그냥 냉큼 버려버리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 온라인 서점에 중고로 판매가 가능한지 알아보았다. 모든 전공서적이 판매 가능 한 것은 아니었지만, 몇 권은 가능했다.

전공서적 판매가 가능하다면 혹시? 우리 집에 있는 다른 책들도 온라인 서점에 중고로 판매가 가능한지 궁금해졌다. 우리 집에는 책들이 정말 많은데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우리 엄마, 아빠가 대학생 시절이던 80년 대에 출간된,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뭔가 혁명적인 제목을 가진 책들이었다. 그다음으로 오래된 것은 내가 어릴 적 읽었던 아동•청소년용 도서들이었다. 지금은 이 책들을 읽지 않으니, 온라인 서점에서 제공하는 바코드 찍기 기능을 활용해 내가 처분하고 싶은 책들의 바코드를 일일이 스캔해 보았다. 몇 권의 책들이 온라인 중고서점이서 판매가능한 책들이라고 나왔다. 그래서 온라인 서점에 판매 가능한 책들은 택배를 붙이기 위해 박스에 담았다. 그리고 온라인으로 판매가 불가한 책들은 가까운 동네에 있는 헌책방에서 딜을 해보기로 했다. 책장에서 처분할 것들을 빼보니 책장 몇 칸이 휑해졌다. 그래도 새롭게 생긴 공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정리하고 싶은 게 있었다. 바로 나의 치렁치렁하고 잔뜩 상해버린 머리카락이었다. 나는 머리카락이 내 등허리까지 올 정도로 기르고 있었는데, 이걸 갑자기 충동적으로 싹둑 자르고 싶어졌다.

나는 약간의 충동적 기질이 있는 사람이라. 살면서 가끔씩 사람들을 뜨악하게 만드는 행동을 하곤 했다. 고등학생 때는 뜬금없이 자전거 타는 법이 배우고 싶어 져서 수업을 빠지고 학교 근처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수없이 넘어지고 휘청거리며 자전거 타기를 독학했던 적이 있다. 문제는 그때가 바로 수능이 100일도 안 남은 시점의 고3 때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호주에서 유학하던 시절에는 코에 피어싱이 있는 인도인들이 너무 힙하게 보여서 충동적으로 코를 뚫은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갑자기 코를 뚫고 온 것을 본 주변의 한국인들이 모두 놀라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리고 이십 대 초반에는 이모 병문안을 갔다가 타투이스트 일을 하는 이모의 친구를 알게 되었는데, 그분을 만나고 바로 다음날로 예약을 잡고 타투를 해버린 적도 있었다. 여기에 더해 예전에 나는 어떠한 충동에 또다시 휩싸인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삭발을 해보는 것이었다. 그냥 내 머리통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궁금하고 삭발을 하면 시원할 것 같았다. 그래서 삭발을 하러 미용실까지 갔었는데 미용사가 내 계획에 뜨악하며 한국에서 여자가 삭발을 하면 엄청난 불편함이 동반될 것이라는 설득을 계속해댔다. 결국 나는 미용사의 말에 납득했고, 머리를 조금 다듬는 것으로 해프닝이 마무리 됐다.

어찌 되었건 나에게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현재 나의 머리카락도 좀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으로 삭발까지는 힘들고, 현실과 타협하여 긴 머리에서 짧은 단발로 잘라버렸다. 머리를 자르고 사람들 앞에 나타났는데 심경의 변화가 있어서 그랬냐, 아깝지 않았냐 하는 주변의 말들이 들렸다. 머리카락이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었지만, 생각해 보니 개인적으로 심경의 변화는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예전의 우울하고 부정적이었던 나와 이별했다.

현재 나의 삶에서 필요 없는 것들을 처분하고 보니 여러모로 공간에 여유가 생겼다. 이 새롭게 생긴 공간에 새롭고 좋은 에너지가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고 짧게 자른 내 머리를 괜히 한 번 매만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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