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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Oct 07. 2023

3. 잠시만여, 저 티타임 좀 가질게요

- 티타임 가지기

정말 오랜만에 집에서 핫초콜릿을 만들었다. 그냥 느긋하게 무언가 따뜻한 걸 마시고 싶었다. 내가 요즘 커피는 잘 마시지 아서 카페인이 필요할 때, 혹은 달다구리한 무언가가 당길 때 먹으려고 100% 카카오파우더를 사놓고 쟁여두고 있었다.

 

사실 나는 예전에 기립성 저혈압이 엄청 심했었다. 그래서 누워 있다가 갑자기 일어날 때나 혹은 앉아있다가 갑자기 일어날 때, 머리가 핑~ 돌면서 어지럼증을 느끼는 일이 빈번했다. 매번 이 어지럼증을 느낄 때면, 다음 번에 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천~천~히 일어나야지 아무리 다짐을 해봐도 막상 그게 잘 지켜지지 않았다. 이렇다보니 어지럼증을 느끼는 것은 내 일상에 늘상 있던 일이 되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참고 살았었다. 하지만 우연히 인터넷에서 커피의 카페인이 빈혈에 좋지 않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이 글에 꽂힌 나는 혹시 커피를 끊는 것이 나의 어지럼증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며칠간 커피를 마시지 않아 보았다.


솔직히 초반에는 이게 효과가 있는 건지, 어쩐 건지 잘 인지가 되질 않았지만 어느 한순간 문득, 내가 커피를 마시지 않은 그 며칠 동안 단 한 번도 어지럼증을 느끼지 않은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아무리 자리에서 갑자기 벌떡벌떡 일어나도 전혀 어지럽지 않았다.


'이런게 바로 빈혈이 없는 정상인의 삶이구나...'


그런데 사람 마음이란 게 간사한 건지, 어지럼증이 내 삶에서 사라지자 안일한 마음이 들어 다시 커피를 마시고 싶어졌다. 그래서 오랜만에 커피를 한 잔 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순간적으로 머리가 핑~ 돌기 시작했다. 


'아..... 커피 카페인은 진짜 나랑 안 맞는구나.....'


그래서 그 이후로는 커피를 입에도 대지 못하있다. 하..... 그래도 가끔 카페인이 당길 때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러한 이유로, 커피 대용으로 마시기 위해 100% 카카오 파우더를 구매하게 된 것이다. 설탕이나 다른 첨가물이 섞여있는 초콜릿가루가 시중에 여럿 있긴 하지만 굳이 쓰디쓰고 맛대가리 없는 100% 카카오 성분으로 구매를 한 이유는 카카오가 폴리페놀이 풍부해 항산화 효과가 있어 노화방지에 좋다는 말에 혹했던 것이 크다. 그런데 이게 100%짜리로 마시면 왠지 효과가 더 직방일 것 같은 느낌에 이렇게 덜컥 구매를 하게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귀찮기도 하고, 한동안 그걸 사놓았던 것조차 잊고 지내다가 얼마 전 냉장고 파먹기를 하며 이것이 마치유물 발굴을 하듯 발견되었다. 꽤나 오랜만에 마주한 카카오 파우더 봉지를 열어보니 달콤한 초콜릿의 향기가 풍겨져 나왔다. 역시나 초콜릿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향기다. 그러나 이걸 그냥 초콜릿이라고 생각하고 먹는다면 실망만 가지게 될 뿐. 이걸 우리가 알고 있는 초콜릿의 맛으로 만들려면 감미료가 필요하다. 설탕이 아니라 감미료라고 하는 이유는 내가 요즘 집에서 요리를 할 때는 정제된 설탕을 사용하지 않고 설탕 대체품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폴리페놀이 풍부한 카카오가루와 콜라겐을 파괴하는 설탕이 만난다면 이걸 몸에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요즘따라 나의 건강에 부쩍 신경이 쓰인다. 동안 넋 놓고 온갖 인스턴트 음식만 섭렵하던 나에게 이제는 집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내 몸에 좋은 연료를 넣어주고 싶어졌다. 불과 며칠 전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는데, 막상 건강은 또 챙기고 싶은 이 아이러니함이라니...


어찌 되었건, 작은 냄비에 코코아가루와 감미료, 그리고 두유를 넣고 그것을 불에 올렸다. 그리고는 잘 섞이도록 거품기로 잘 저어주었다. 이걸 잘 저어주지 않으면 가루가 잘 풀리지 않고 뭉쳐서 핫초코를 마실 때 가루 덩어리를 먹게 되는 당황스러움을 맛볼 수 있다. 점점 따뜻해지는 핫초콜릿을 저으며 나는 그 향기에 황홀해졌다. 그러다 갑자기 핫초콜릿이 폭발하듯 부글거리며 냄비 위쪽으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초콜릿 냄새에 황홀했던 것도 잠시, 나는 현실로 돌아와 우왕좌왕하며 급 가스불을 껐다. 오랜만에 우아하게 티타임을 좀 가져보려는데 내가 봐도 뭔가 엉성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핫초코가 완성되었으니, 냄비 속 내용물을 내가 가장 애용하는 투명 머그컵에 옮겼다. 두 손을 컵에 가져다대니 몹시 뜨거운 온기가 느껴졌다. 1월이 다 가고 어느새 다가온 2월의 추운 날에 딱 마시기 좋은 핫초코다. 이런 티타임은 정말 오랜만에 가져보는 것 같았다.


그동안은 런 온전한 여유가 없었다. 뭐, 사실 시간적인 유는 넘치고 넘쳤었다. 그러나 시간적 여유와 마음의 여유가 항상 비례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누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괜히 나 혼자 항상 조급했고, 가슴이 답답했다. 나의 미래를 생각하면 그런 마음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렇다고 딱히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내 머릿속에는 계획만 거창고, 실제 실행력은 바닥을 기는 수준이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티타임이고 자시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럴 때일수록 더 필요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핫초코를 한 모금 마시니 따뜻한 기운이 나를 감쌌다. 카카오의 깊은 풍미를 느끼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해졌다.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구나.'


핫초코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이번에는 따뜻한 기운이 내 마음속까지 은은하게 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카페인 덕분인지 정신은 아까보다 더 맑아진 것 같았다.


어디선가 읽었던 이야기인데, 명상이라는 것이 꼭 눈을 감고 가만히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걸으면서도 명상을 할 수 있고, 심지어 설거지를 하면서도 명상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 행위들 속에서 그 순간에 온전히 집중을 하고, 내 마음의 평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명상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핫초코의 구릿빛 색감, 달콤한 향내와 씁쓸하면도 달달한 맛, 그것을 담고 있는 머그컵의 온기까지. 지금 이것에만 집중하고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행복을 느끼고 위안을 얻는 나는 지금 핫초코 명상을 하고 있는 거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몽글몽글 해지면서 평화로움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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