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찾을 물건이 있어 온 집 안을 뒤적거리던 참이었다. 그러다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오래전 추억을 가득 담고 있는 바래진 상자 몇 박스와 먼지가 두텁게 쌓인 두꺼운 사진첩들을 다시 들춰 보게 되었다.
일단 먼저 상자들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나와 동생의 초등학생 시절 일기장부터 시작해 그 코찔찔이 시절,
'앞으로 존댓말 쓰고 부모님 속 썩이지 않을게요!'
라며 지키지도 못할 약속들을 마구 남발해 가며 부모님께 썼던 편지들, 서투른 솜씨로 그려진 그림들, 적성검사지, 성적표 등이 뭉텅이로 들어있었다. 사실 이런 것들은 버려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이걸 어떻게 버리겠냐며 차곡차곡 모아두었을 엄마의 마음에 감사하고 뭉클했다. 덕분에 나는 어느새 내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잃어버린 추억들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나도 이렇게 순수하고 귀여움이 가득했을 때가 있었구나 싶었다. 이 모음들이 지금은 훌쩍 커버린 나에게 닿아 나의 때 묻은 마음에 그 시절의 순수함을 크게 한 스푼 넣어 주는 듯했다.
다음으로 집어든 사진첩 안에는 나와 내 남동생의 유년시절 모습이 빼곡히 들어있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내 어릴 적 기억들이 사진을 보는 내내 두둥실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어느새 기억의 저편에 가라앉아 생소하게만 느껴지는 추억들도 빛이 바래진 사진으로나마 남아있었다. 전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갓난아기 때의 나와 남동생의 모습을 보며 어느새 얼굴에 끊임없이 미소를 띠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고는 갑작스러운 약간의 우울감이 몰려왔다.
'내가 벌써 이렇게 다 큰 어른이 되어버리다니…..'
시간이 정말 징그럽게도 많이 흘러갔다. 나는 밝고 환하게 웃던 자그마한 꼬맹이에서 무표정과 정색이 더욱 익숙해져 버린 어른으로 바뀌었다. 이런 현실이 애석해져 뭔가 씁쓸하고 형용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나의 가슴을 관통했다.
'어린 시절의 나도 나름대로 미래가 창창한 자라나는 새싹이었을 텐데.....어릴 적에 꿈꾸었던 나의 20년 후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을 텐데.....'
나의 꿈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내가 꿈을 이루기 위해 진정한 노력을 한 적이 있긴 했던가? 나의 비수를 꽂는 우울감과 함께 계속해서 사진첩을 훑었다. 사진 속의 어린 나, 그리고 내 남동생, 지금보다 더 젊었던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모습들, 서로 사는 게 바빠 언젠가부터 연락이 뜸해진 사촌들과 친척어른들, 그리고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추억 속 아득한 존재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사진 속 밝은 모습에서 야속한 세월의 흐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도 사진이 남아 있어 참 다행이었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이렇게라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또한 소중했던 사람들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내게도 분명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었다고 이렇게 추억 한 모금 크게 들이 킬 수도 있으니까.
나와 남동생이 주요 테마로 나오던 사진첩을 모두 훑고서, 마지막 사진첩을 펼쳐 들었다. 그곳에는 아빠와 엄마의 어릴 적 모습들이 담겨있었다. 엄마와 아빠. 이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하기도 훨씬 전의 모습들. 내 현재의 나이보다도 더 어린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나 생소하고 나도 모르게 계속 놀라게 되었다. 흑백사진과 컬러사진을 모두 겪은 세대. 지금과는 사뭇 다른 사진 속 풍경과 티비에서나 보던 옛날 교복을 입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이 낯설었다. 마치 영화 <백투 더 퓨처>처럼 내가 부모님의 청소년 시절로 과거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특히 과묵하고 항상 멀게만 느껴지던 이미지와는 반대로 아빠의 어릴 적 짓궂은 모습을 보니 신기했다. 너무나도 개구쟁이 같은 몸짓으로 해맑게 웃는 아빠의 어릴 적 모습에 나는 아직 청소년인 아빠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짜식아, 잘하자잉~!'
하고 말해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리고 아빠와 엄마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며 내가 어릴 적 오며 가며 간간히 인사를 한 적이 있던 엄마, 아빠 친구들의 어릴 적 모습을
'어? 이 분!'
하며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런데, 이 두 청소년들은 알았을까? 나중에 결혼을 해서 자신들의 속을 꽤나 썩일 아픈 손가락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걸. 내가 생각해도 정말 끔찍한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앞길이 창창한 두 청소년에게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순간 과거로 돌아가 두 사람이 아예 만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고 싶다는 부질없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 두 사람이 애초에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 같은 잉여인간은 태어나지도 않았을 테고, 그러면 나도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움을 느끼며 살 필요도 없었을 텐데... 이래나 저래나 부모님에게 죄송한 건 매한가지다.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사진첩 근처 놓여 있던 작은 박스 속 빼곡히 들어있는 엄마의 또 다른 흔적들을 발견했다. 그 속에는 엄마가 학생 때 주고받았던 편지들과 엄마의 일기장이 들어있었다. 이것들은 지극히 사적인 개인 물품들이지만, 이미 우리 엄마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버렸기에 이 물건들은 이제 나에게 우리 엄마의 삶의 역사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가 된 셈이다. 엄마와의 헤어짐을 추스르지 못하고 엄마에 대한 미련이 흘러넘치던 때, 나를 울고 웃게 만들었던 엄마의 유품을 다시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를 가장 웃음 짓게 했던 포인트는 엄마가 고등학생 때 다른 지역 남고생과 펜팔을 주고받던 것을 읽었을 때였다. 엄마가 모아두었던 수많은 편지들 중에서 이 펜팔들을 읽어 내려가는 것이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우리 엄마에게도 이팔청춘의 시기가 있었구나.'
하며 내가 다 흐뭇해져서 설레며 읽었던, 하지만 결국 흐지부지 끝나고만 로맨스 같지 않은 로맨스랄까? 꺄! 그리고 또 흥미로웠던 편지는 엄마가 어린 시절 자신의 형제자매들 그리고 사촌들과 주고받았던 것이었다. 엄마가 모아두었던 대부분의 편지들은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것들이었지만, 간혹 가다 내가 아는 삼촌, 이모들의 편지를 발견하게 될 때면 왠지 더 집중력이 발휘되어 낄낄대며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이 편지 뭉텅이들을 연달아 계속 읽다 보니 다들 문체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80, 90년대에 쓰였을 이 편지들을 보면, 그 시절엔 다들 마음속에 시 한 편씩은 품고 산 듯 글솜씨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 편지를 썼던 사람들의 당시 나이는 편지가 쓰인 날짜나 내용으로 유추해 봤을 때 십 대에서 이십 대 정도였을텐데, 지금의 십 대 이십 대와 비교해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어른스러운 문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글이라는 것도 불과 몇십 년의 흐름에 따라 이리도 분위기가 변할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웠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간직하고 있던 서신 하나하나를 흡사 문학작품을 읽는 마음으로 읽어나가게 되었다. 엄마가 남긴 이 편지들을 읽는 동안만큼은 이것들이 나에겐 김유정 작가의 <봄봄>이자, 현진건 작가의 <운수 좋은 날>이었다.
편지를 모두 읽은 후, 나는 우리 엄마가 내가 아는 친척분들과 주고받은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따로 분리해 두었다. 이 편지를 썼던 발신자들에게 자신이 과거에 썼던 편지들을 되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들을 읽으며 느꼈던 뭉클함과 반가움을 편지를 썼던 당사자들은 더욱 생생히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오래도록 간직해 오던 많은 추억거리들을 보며 과거를 회상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자정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주 깔깔 웃다가 엉엉 울다가 혼자 완전 모노드라마를 찍고 난리가 났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분명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다. 나는 그동안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 스스로 결핍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일삼았지만, 오늘로써 드디어 알겠다. 나도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것을. 왜 나는 그동안 사랑에 목마른 사람인 것처럼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가족들과 나를 떠나간 사람들을 미워하고 원망했을까? 그래, 분명 안 좋은 순간들도 있긴 했다. 그리고 이제까지는 안 좋은 과거에만 목매달며 거기에 생각의 초점을 맞추고 살아왔다. 그 결과 나는 어떻게 되었나? 하지만 이제부터 나는 달라질 것이다.
나는 앞으로 좋은 추억들만 회상할 것이다.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사는 건 이제 지긋지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