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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Oct 11. 2023

11. 족욕을 하면 뻣뻣했던 내 마음도 흐물흐물

- 족욕하기

최근에 무작정 밖으로 나가 걷기 시작해서 그런지 요즘 종아리가 너무 뻐근하고 뭉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괜히 발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스트레칭을 해보기도 하고, 손으로 종아리를 주물러보기도 했다. 또, 유튜브에서 종아리 스트레칭을 한참 검색하며 나도 아이돌 종아리를 가지고야 말 것이라며 포부를 다져보기도 했다. 아, 허벅지는 탄탄해지고 싶어도 종아리는 매끈해지고픈 이 모순적인 삶이여. 걷는 건 좋지만, 종아리 알은 절대 생기고 싶지 않다.



그러다 문득 족욕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한창 매일 저녁마다 했던 족욕이 꽤나 괜찮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는 혹여 수족냉증에 도움이 될까 싶어 족욕기까지 사용하며 열심히 족욕을 하던 때가 있더랬다. 그런데 언젠가 뻘겋게 달아올라 뜨끈해진 발의 온기를 느끼며 다 쓴 물을 버리기 위해 족욕기를 화장실로 들고 가다 그만... 그것을 손에서 놓치고야 마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바닥에서 엄청난 굉음이 울리며 물이 사방천지로 흩어졌고, 족욕기의 파편이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아찔함, 그 자체였다. 물범벅이 되어버린 바닥과 플라스틱 조각들이 낭자하던 그 처참했던 '족욕기 파손 현장'에서 순간 나는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눈앞이 새하애지며 이 모든 게 꿈이길 바랐다. 그러나 이내 현실의 참혹함으로 정신이 돌아온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의기소침해져 바닥청소를 시작했다. 분명 족욕을 할 때까지만 해도 좋았었는데... 족욕을 마치고 나서도 온몸으로 퍼지던 그 뜨끈함에 굉장히 만족스러웠는데... 마무리가 잘못되는 바람에 그 모든 것들이 신기루가 되어버린 모양새였다. 그 이 후로 나는 소중한 족욕기를 잃었고 더 이상 족욕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족욕을 다시 시도해 보기로 했다. 일단 전에 발생했던 족욕기 파손 사건으로 인해 집에 더 이상 족욕기가 없으니 아쉬운 대로 화장실에 있는 세숫대야를 이용하기로 했다. 다행히 그것은 내 두 발이 들어가기엔 크기가 충분했다. 족욕을 하기에 앞서 아주 뜨거운 물이 필요했으므로, 일단 커피포트에 물을 꽉꽉 채워 담아 끓이기 시작했다. 커피포트 속 물이 팔팔 끓어올랐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 발에 화상을 입힐 것도 아닌데 굳이 100도씨나 되는 물이 필요한가 싶었다. 그래서 일단 대야에 차가운 물을 먼저 준비해 놓고 그 위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뜨거운 물을 부어주었다. 그러고 나서 15분으로 알람을 맞췄다. 10분은 왠지 부족한 느낌이고 20분은 너무 긴 것 같아서 그랬다. 그리고 기대에 잔뜩 부풀어 대야 속으로 발을 살포시 넣었다.



'으악!'



너무 뜨거웠다. 특히 발가락 이 너무 뜨거워서 아프기까지 했다. 그래서 나는 잽싸게 내 발을 뜨거운 물에서 뺀 뒤, 허겁지겁 차가운 물을 더 추가했다. 그렇다고 물이 너무 미지근해지는 것은 싫었다. 몇 번의 차가움과 뜨거움을 혼합하여 최상의 온도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겪은 후에서야 비로소 내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을 정도의 뜨뜻함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여기에다 내가 좋아하는 향의 에센셜 오일을 한 두 방울 정도 톡톡 넣어주었다.



'오늘의 픽은 페퍼민트 향, 너로 정했다!'



물에 페퍼민트 오일을 넣어주자 코끝으로 쏴한 향이 올라오며 행복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는 게 뭐라고, 어떻게 보면 별 대수롭지도 않은 행위인데 이렇게까지 좋은 감정이 몰려드는 걸까? 족욕을 하는 이 순간만큼은 내 머리와 마음속을 가득 채운 부정적 감정들, 어두움, 우울, 무기력, 초조함들이 조금씩 진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따뜻함이라는 것에는 사람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마법의 힘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욕조 가득 받아진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그며 힐링을 하는 것처럼. 따뜻한 차와 커피 한 잔에 마음의 여유를 느끼는 것처럼. 따뜻한 친절과 따뜻한 말 한마디에 감동을 받는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계속해서 발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느껴보았다. 물이 뜨거워서 그런지 발끝이 찌릿찌릿했다. 온기는 어느 순간 내 신경계를 타고 발끝에서 등줄기까지 뻗어나갔다. 그동안 새까맣게 잊고 지내던 이 신비롭고 노곤한 감정을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게 되어 감사했다.




그러나 물을 데워주는 기능이 있는 족욕기가 아닌 일반 대야에서 족욕을 하는 것이라 그런지 물이 불과 몇 분 사이에 식어 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 대야에서 발을 꺼내고 커피포트에 아직 남아있던 뜨거운 물을 대야에 추가로 부주었다. 물속에서 꺼낸 발을 보니 뜨거움으로 불타는 고구마처럼 붉게 익어버렸다. 샤부샤부로 잘 익은 고기처럼 익은 거 같기도 하고... 그래도 아직 알람이 울리기 전이니 발을 다시 대야 속으로 넣었다. 뜨뜻함이 다시 시작되었다. 역시 겨울에는 등을 지져주어야 맛인 것처럼 발도 이리 지져주니 기분이 포근했다. 등에 열이 오르며 땀이 맺히는 기분이 들어 등을 만져보니 등이 땀범벅이었다. 족욕을 마친 후 샤워까지 하면 정말 뽀송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이렇게 내 몸에 집중을 하는 이 순간이 너무 좋았다. 물이 점점 식어가는 느낌이 들어 나는 또다시 뜨거움을 한 번 더 추가했다.



족욕을 하고 있으니 고질적인 나의 수족냉증과 종아리의 뻑적지근함이 금방이라도 풀릴 것만 같았다. 여기에 추가로 나의 뻣뻣한 마음까지도 흐물흐물 녹아버렸으면 좋겠다. 족욕을 하며 불어버린 발의 각질들이 떨어져 나가 듯, 나의 마음속 나쁜 감정들도 용해되어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를. 이런 생각을 하며 족욕을 마친 물을 하수구로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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